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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집주상설 論語集註詳說 상(上)

논어집주상설 論語集註詳說 상(上)

박문호 (지은이), 성백효 (옮긴이)

다운샘·2021-02-10

  • 594쪽
  • 188×257mm
  •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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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에 대하여이 책은 호산(壺山) 박문호(朴文鎬) 선생의 ≪사서집주상설(四書集註詳說)≫을 국역하고 주해한 것이다. 호산은 헌종(憲宗) 12년(1845년) 충청도 회인현(懷仁縣) 눌곡리(訥谷里)에서 한담(閑潭) 박기성(朴基成)의 아들로 태어나 1918년 72세에 별세한 조선조 말기의 성리학자이다. 호산은 그의 호이며, 또 다른 호는 풍산(楓山)인데 말년에는 늙은 나무꾼이라는 뜻으로 노초(老樵) 두 글자를 뒤에 덧붙였다. 자는 경모(景模)이고 관향은 영해(寧海)이다. 호산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11세에 어당(峿堂) 이상수(李象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당은 원래 경기도 양주(楊州) 분이셨는데 청주와 회인으로 내려와 후학들을 양성하였다. 어당의 선조는 인물성동(人物性同)을 주장하는 낙학계(洛學系)였으나, 어당은 인물성이(人物性異)를 주장하는 호학(湖學)을 따랐다. 이 때문에 호산은 자연 호학계 학자가 되었다. 호산은 말년에 눌곡리에 풍림정사(楓林精舍)를 짓고 강학하였는데 별세 후 여기에 제향되고 있다. 호산은 ≪사서집주상설≫ 외에 주자의 ≪시경집전(詩經集傳)≫과 ≪주역본의(周易本義)≫, 채침(蔡沈)의 ≪서경집전(書經集傳)≫까지 상세히 설명하여 무려 39책이나 되는 방대한 양의 ≪칠서주상설(七書註詳說)≫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사서가 중심이고 그 중에서도 ≪논어집주상설≫이 백미(白眉)라 할 것이다. 서문도 범례도 모두 ≪논어집주상설≫을 기준하였으며, 다음으로는 ≪맹자집주상설(孟子集註詳說)≫ 그리고 ≪대학장구상설(大學章句詳說)≫과 ≪중용장구상설(中庸章句詳說)≫로 이루어졌다. 이 상설은 주자의 집주를 상세히 설명함은 물론이고 대전본(大全本)에 실려있는 제가(諸家)들의 설까지 요약하여 소개하였으며 주자의 음훈(音訓)은 물론이요, 우리나라 언해(諺解)의 현토(懸吐)와 해석까지도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였다. 또한 퇴계(退溪)와 율곡(栗谷), 사계(沙溪)와 우암(尤菴), 남당(南塘)과 농암(農巖) 등 우리나라 선현들의 설까지도 뽑았고, 자신의 견해까지 아울러 반영하였다. 주자 집주에 대한 해석은 종종 있었지만 이처럼 한문 문법에 맞게 해설한 책은 우리나라는 물론이요, 중국과 일본에도 일찍이 없었다. 다만 음훈은 원음(原音, 고음(古音))을 위주하여 지금과 맞지 않는 것이 종종 보이는 점과 호산이 참고한 자전(字典)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는 점이 아쉽다. 우리나라 성리학자들은 퇴계를 중심으로 하는 남인학파와 율곡을 중심으로 하는 기호학파, 그리고 율곡학파에서 분파된 호학(湖學)과 낙학(洛學)이 각기 다른데, 학자들이 하나같이 자기 학파의 학설이 주자(朱子)의 본의에 부합하는 진정한 진리라고 생각하였다.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을 가장 존숭한 호학계의 호산도 성리설이 나오는 부분에는 으레 호학계의 설에 입각하여 장황한 설명을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호산이 이 상설을 완성한 후 남들로부터 많은 비방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호산전서(壺山全書)≫ 책6 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세속 사람들이 모두 나를 학자라고 지목하면서 훼방하고 또 학자 중에 나를 비방하는 것은 두 가지 일이 있으니,≪칠서주상설(七書註詳說)≫과 후성영당(後聖影堂)이 이것이다. 나의 의견으로 창안하여 한 평생의 심력(心力)을 다해 늙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성하였으니, 훼방이 오는 것을 어찌 따질 것이 있겠는가.”‘후성영당’이란 주자(朱子)를 공자 이후의 성인이라 하여 후성으로 추존, 정사(精舍)의 뒤에 주자의 영정을 모시고, 호산이 평소 존숭(尊崇)하던 율곡(栗谷)과 우암(尤庵), 남당(南塘)을 배향하여 이분들의 위패(位牌)와 영정을 모시고, 매년 주자의 생일인 음력 9월 15일과 졸일(卒日)인 3월 3일에 제생들을 거느리고 석채(釋菜)의 예를 행한 다음, 강회(講會)를 연 일을 이른다. 호산의 에 의하면 이것은 56세인 광무(光武) 5년(1901) 신축년의 일인데, 그 전해에 ≪논어집주상설≫이 완성되었고, 그 다음해에 ≪맹자집주상설≫과 ≪대학장구상설≫, 그리고 ≪중용장구상설≫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호산은 ≪대학≫의 ‘혈구(絜矩)’에 대해서는 남당의 설을 비판하였으며, 율곡학파였지만 명덕(明德)을 기(氣)로 보지 않고 리(理)로 보았다. ≪칠서주상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호산의 서문을 보면 알 수 있으며, 더 자세히 알려면 유정기(柳正基)씨가 쓴 ≪호산박문호전서(壺山朴文鎬全書)≫의 해제를 참고하기 바란다. 본인은 14년 전 해동경사연구소를 설립한 즉시 연구원들과 이 ≪사서집주상설≫을 강독하면서 현토하고 초벌 번역을 하였다. 이것을 보완하여 출판하려 하였으나, 기회를 얻지 못해 옛 상자에 버려두었다. 그 후 고려대학교에서 국가의 지원으로 이 ≪칠서주상설≫을 전부 국역한다는 소식에 몹시 기뻤다. 그러다가 작년 가을 고려대학교에서 1차적으로 출간한 ≪논어집주상설≫ 번역본 10책을 얻어보니, ≪주자대전(朱子大全)≫과 ≪주자어류(朱子語類)≫, 호산이 대전본을 축약한 부분까지 찾아내어 주해해서 가히 상설(詳說)에 상역(詳譯)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 첫째 현토가 되어 있지 않았다. 호산은 관본 언해의 잘못된 현토와 해석을 종종 지적하였는바, 현토를 하지 않으면 이것을 밝히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예전 강독할 적에 논란하였던 곳을 보니, 교감과 주석에 소략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중략)…본인이 위에서 고대에서 나온 ≪논어집주상설≫에 대해 몇 곳의 문제점을 지적하였지만 번역을 하다보면 오류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또한 한문의 문리가 부족하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오역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물론 역자가 완벽에 완벽을 기해야 하겠지만 독자들은 이것을 널리 이해해 주기 바란다. 더구나 이 국역본은 대전본의 축약된 부분을 대전본과 일일이 대조하지 못하고 주석도 소략하며 문장과 체제도 통일되지 못한 것임을 솔직히 고백하며 강호 제현의 양해를 구한다. 현재 인문학이 고사할 위기에 처해있고 한문책은 더더욱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처럼 방대한 책을 개인이 국역 출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고려대학교에서는 국가의 지원을 받아 여러 명사들이 총동원되어 작업하는 만큼 앞으로 더욱 좋은 책이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 독자들은 본인의 국역본이 미흡하다고 여겨질 경우 이 책을 참고하기 바란다. -역자의 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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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집주상설 상 목차화보 3간행사 7발간사 9추천사 11《사서집주상설(四書集註詳說)》의 출판을 축하하며 13이 책에 대하여 15일러두기 20논어집주상설(論語集註詳說)칠서집주상설서(七書集註詳說序) 23독논어맹자법 상설(讀論語孟子法詳說) 29논어집주 서설 상설(論語集註序說詳說) 33서설 상설(序說詳說) 35학이 제일(學而 第一) 57위정 제이(爲政 第二) 121팔일 제삼(八佾 第三) 179이인 제사(里仁 第四) 241공야장 제오(公冶長 第五) 287옹야 제육(雍也第六) 349술이 제칠(述而 第七) 419태백 제팔(泰伯 第八) 485자한 제구(子罕 第九) 531[부록] 책 속에 보이는 인물 정보 587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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