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그해 11월 중순, 단풍이 금강산과 설악산에서 내려와 남쪽에서 물들어 갈 때 나는 뚜벅뚜벅 길을 나섰다. 전남 순천에서 한 달 정도 일을 끝내고 순천만을 기점으로 길을 나선 것이다. 열차와 고속버스 직행버스와 택시를 이용하여 하차, 목적지 주변에서 길을 모르면 묻기도 했다. 차량이 없으면 뚜벅뚜벅 걸었다. 그 때 온 세계에 코로나가 창궐하여 육지와 바다. 하늘이 막혀 있던 시절, 터미널에서 노선 변경으로 공백이 심해 몇 시간 기다려 교통을 이용해야 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중 제일 좋았던 기억은 열차나 버스 창가에 앉아 마음껏 넓은 평야와 산을 바라보며 느끼던 푸근함, 자연은 찌든 마음을 정화하기에 충분했다. 따사로운 햇볕에 눅눅한 마음을 펼치면 들려오던 산과 들의 여유로운 속삭임… 길을 가다 힘들면 바위에 걸터앉아 비취빛 하늘에 뭉실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막연하지만 어떤 희망을 그려보기도 했다. 인생은 흐르는 물과 같았고 떠가는 구름 같았다. 끝없이 갈망하는 욕구의 중심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삶의 무게 그리고 생각한 것처럼 뜻이 관철되지 않는 한계에서 만족이란 의미는 아름다운 것이었다. 멍에에서 돋아나는 몽이의 흔적을 지우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은 누구나 똑같은 일상인 듯했다. 이따금 나타나는 강과 바다, 계곡을 바라보며 비몽사몽 졸음에서 편안했던 의식은 또 다른 세계의 황홀한 접경이었다. 글을 쓴다는 이유로 유랑의 길을 떠났지만 신념으로 뿌리내린 철학과 이상은 근면과 성실을 요구하기도 했다. 공허한 낭만을 경계하며 노력만큼 얻지 못해도 묵묵히 살아가는 시골 분들에게 부끄러움도 일었다. 내면의 사치스런 물음에 예술이 땀 흘리며 살아가는 생명의 본능 위에 존재할 수 없다는 한계도 느꼈다. 허구적인 감성이라면 흙을 일구며 사는 진실이 돋보일 것 같았다. 남해는 맑고 깨끗했다. 어둠 속에 닿은 작은 도시에는 미국마을과 독일마을이 있었다. 추적추적 늦은 가을비가 내리고 비를 맞으며 걷던 이색도시, 미국마을 불 켜진 카사비앙카 카페는 단아했다. 마시던 커피에 녹아들던 교향곡이 은은 했던 기억, 그리고 중년 여인이 작품인 듯 벽에 걸어 논 정물화에선 살아온 과거만큼 고독이 고여 있는 듯 했다. 일차적으로 목적한 뚜벅이 여행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피곤하고 나른한 몸을 한적한 공간에 눕히고 일어나 지장성지 용문사에서 나는 명상에 잠겼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시작하자고. 이제 가자, 나의 처음 보금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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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하늘과 바다의 향연 남해 미국마을 14 수련 16 두 얼굴의 영상 17 작은 슬픔 18 그리움 19 산사의 언덕 20 물결 소리 21 등대 22 들녘 23 겨울꽃 24 동행 26 촛불 28 항구 30 새벽 눈 31 파도 32 불꽃 34 화해 36 천년화 38 눈부신 바다 40 산 42 2~6부 생략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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