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기독교의 본류를 찾아서 머리글 오늘날 한국사회는 지성의 위기입니다 한국은 사상 유례가 없는 물질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정신문명이 물질문명의 발달을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지체 현상이 나타나는 대표적 국가입니다 무한 경쟁에 지친 청년의 자살율과 국가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노인의 자살 율 세계 1위가 그것을 실증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크게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인문학 운동’이 그에 대한 한 처방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인문학 운동이, 박정수의 노들야학과 성공회의 인문학 강좌가 소외계층의 자존을 세우는데 기여하고 있고, 박성준 등의 인문학 강좌가 이 시대의 지성인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소수입니다 대부분의 인문학 강좌는 산업과 소비에 기여하는 보조학문으로 전락하여 생산의 창의성, 감성광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신뢰증진 등에 기여되기를 기대하는 학문이 되었고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인문학 강좌가 전국의 기업, 방송, 백화점, 문화센터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운동은 ‘인간성 성찰’에 그 어떤 기여도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을 상품화하고 자본주의의 물질 속에 매몰시키고 있습니다 인문학은 한결같이 ‘인간성(humanity)’탐구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휴머니즘’은 중세시대에 종교의 억압으로부터 해방하려는 의미로 르네상스에 의해 태동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은 이 휴머니즘은 계몽주의와 합리주의를 거쳐 19 세기에 태동한 하나의 정신사조입니다 미셀 푸코는 휴머니즘은 결국 지식체계에 불과하다고 역설 합니다 한국은 이 혼돈의 시대에 다시 인문학 강의 등으로써, 휴머니즘을 강조하여 지난 10 년간 한국의 ‘인간성(humanity)'이 발돋음 했는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한국은 인간이 생산의 보조수단으로 전락하여 비정규직 근로자가 양산되고, 인간성의 상실로 인해 가정이 해체되고 있습니다 서구는 지난 100 년 동안 문학과 영화 속에서 기독교를 조롱하면서 그렇게 기독교는 몰락하여 갔습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사회로부터 조롱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로 교회의 문제를 현상학적으로 접근하여 직제나 체재를 개선해보려고 하는 여러 책들이 출간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입니다 보다 근본적인 신학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기현상이 보입니다 팔백만 그리스도인 중에 유사 기독교의 그리스도인이 삼백만 명입니다 그리고 기성교회에는 젊은이들이 떠나고 있는데 유사기독교에는 젊은이가 모입니다 그것은 무한 경쟁에서 지친 젊은이들이 기성교회에서 희망을 보지 못하고 일탈과 피안의 천국을 설교하는 유사 기독교에서 위로를 얻으려는 경향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오래지 않아 거기에서 절망하리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듯이 불을 보듯 뻔 합니다 아무튼 유사기독교가 이렇게 기승을 부리는 것은 기성교회가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읍니다 신학은 인간학이라는 포이어바흐의 성찰에 동의를 하든지 안하든지를 불문하고, 신학이란 결국에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를 묻는 학문입니다 즉 인간의 자세에 대한 물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신학계와 교회가 그 일에 충실 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젊은이들이 인문학 열풍에, 특히 동양의 여러 고전에서 지성의 갈증을 풀고 있고 또한 여러 음악 콘서트와 그 인문학 강좌에서 위로와 희망을 얻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는 이들과 경쟁하려 해서는 안 되고 이러한 문화운동을 장려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기독교의 진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역설적이게도 신본주의가 인본주의보다 얼마나 인간의 존엄과 인류의 화해를 보여주고 있는지를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망가져가고 있는 데는 대형교회가 일등공신이라면 설교강단이 이등공신 쯤 됩니다 필자는 몇 해 전에 가벼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있을 때 한 보험사원으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필자가 신학 책을 읽고 있으니까 목사인가를 물은 후에 하소연을 합니다 아내의 성화로 교회에 나간지가 삼 년 정도 되는데 목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또 하려고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무엇을 주장하려는 것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매주 비슷한 이야기인데 집에 가면서 무슨 말을 들었나 생각해 보려고 하면 맨 날 들은 같은 이야기뿐이라는 것입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교회는 계속 나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대졸출신의 젊은이가 이러하니, 그래서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서 인문학 강좌로 자리를 옮깁니다 성경이 동양고전보다 깊이가 없습니까? 기독교의 진리가 성현들의 진리보다 깊이가 없습니까? 동양고전과 성현들의 진리가 저수지라면 기독교의 진리는 바다와 같습니다 한국교회를 회복하는 데는 설교강단의 회복이 시급 합니다 인간성(humanity)에 관해 조금 더 이야기 하겠습니다 ‘휴머니티’가 지식체계에 불과하다는 말은 인간의 이성과 학문, 그리고 사상을 통해서는 ‘인간성변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에 관해서 바울에게서 듣겠습니다 바울은 우리 인간은 사상과 학문을 통해 자유를 찾으려 하지만 오히려 그들의 종노릇 할 뿐이라고 합니다(갈라4:3) 그래서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사상과 이성이 줄 수 없는 평화를 예수로부터 찾는다고 합니다(빌립7:4) 그래서 바울은 아테네의 아고라 광장에서 사상가들과 변론 할 때 예수님의 가르침을 포함해서 어떤 사상이나 이론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만을 설교하여 그들로부터 어리석은 자라는 비난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초대교회가 체험했던 ‘영생의 감격’을 오늘 현재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필자는 그동안 기독교가 어떻게 ‘영생’을 주목하지 못하고 도덕적 삶을 추구하는데 치중하는 잘못된 길을 가게 되었는지를 추적 했습니다 유대교의 법 중심주의와 공로를 위한 사랑,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그리스의 선(善)사상이 기독교에 유입된 경로와 그것이 카톨릭에서 어떻게 심화 되었는지를 규명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강조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다른 종교와 사상들과 어떤 차별성을 가지는가를 탐구 했습니다 그러나 아쉽지만 지면 관계로 이 책에 담지는 못 했습니다 후에 ‘자유이야기’로 출간되기를 희망 합니다 그런데 필자는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예수사랑을 규명하는 길을 찾게되었습니다 예수사랑의 빼어남과 독특성은 악의 문제와 악인(죄인)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 있습니다 이점을 밝히려 노력 했고, 예수사랑이 예수께서 세우시고 현재도 진행 중인 하나님나라에서의 동력(動力)임을 설명 했으며 예수사랑을 역사화, 윤리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필자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목사들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이루지 못해서가 아니라 어차피 자기들도 이루지 못하는 길을 신도들에게 그 길을 가도록 가르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결신과 성결,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설교에서 생명과 영생, 사랑과 자유, 정의와 평화의 진리로 설교가 전환되어야 합니다 특히 도덕주의는 기독교를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있습니다 신앙이란 종교성에 있지 않고 인격의 변화에 있다고 설교하는 설교자도 설교의 마무리는 도덕적으로 맺습니다 이러한 도덕주의가 기독교에 얼마나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설교자가 태반입니다 선(善)과 도덕은 강자의 논리이고, 한낱 그리스 정치가들의 구호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고대세계는 물론이고 현대에도 정도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악으로 규정 합니다 따라서 교회가 선(善)과 도덕을 강조하는 것은, 교회가 결국 힘의 논리에 편승하여 기득권 지키기에 나서는 것 일뿐입니다 거기에는 사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설교강단의 회복은 교회가 게토화하는 것을 막습니다 설교의 어려움은 ① 기독교의 진리가 고대와 중세의 개념으로 되어 있어서 오늘의 삶에 적용하여 설명해 내기에 여러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② 기독교의 중심인 예수사랑이 온전히 설교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 문제를 규명하는데 노력을 기울입니다 자우터는 신학의 유효성을 유효거리와 사정거리로 설명 합니다 신학적 진술이 유효거리 개념으로 진술되면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여 교회가 게토화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신학적 진술은 사정거리 개념으로 세상을 향하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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