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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의 국제정치

사행의 국제정치

하영선 이헌미 (엮은이)

아연출판부·2016-09-24

  • 418쪽
  • 사회과학
  • KDC 3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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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책머리에 이 책의 시작은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가을,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서지실에서 하나의 공부 모임이 조촐하게 시작되었다. ‘18세기 지성사 연구회’라는 이름으로 발족한 이 모임은, 1차 자료와 이론적 분석틀이 결합된 거시적 한국 외교사 연구를 목표로 삼았다. 그 배후에는 이용희 교수 이래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면면히 이어진, ‘한국적 국제정치학’의 지적 전통이 존재했다. 21세기 세계 정치의 변화 속에서, 역사의 성찰을 통해 미래 전략을 발굴하려는 실천 의지의 산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 나라의 경험과 시각에서 한국 외교사를 서술하기 위해 조선 시대 한문 사료와 씨름하는 작업은 지난했다. 무엇보다 시간 대비 생산성이 턱없이 낮았다. 연구 평가 기준이 가파르게 정량화되는 추세 속에서 어리석다면 어리석고, 무모하다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진과 한국 외교사 전공 국내 박사들이 여기에 의기투합하였다. 수지 안 맞는 기나긴 공부가 시작된 것이다. 초창기 18세기 지성사 연구회는 토요일 오전에 세미나를 하고 때로는 점심도 생략한 채 바삐 헤어졌다. 모임의 주축인 한국 외교사 전공자들이 국책 연구원에 취직한 직장인이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해외 유학파가 우대받는 대한민국의 학문 풍토에서, 한국 외교사를 전공한 국내 박사들은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취직한 사례가 많다. 이들이 주말 시간을 쪼개어 공부 모임에 참석한 데에는, 못다 이룬 한국 외교사에 대한 열정과 공부에 대한 갈증이 컸다. 그런 점에서 이 모임은 18세기 후반, 출신 성분의 한계로 출셋길이 막힌 덕분에 시대적 주류 패러다임을 뛰어 넘어 ‘북학’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게 된 백탑파와 닮은 것도 같다. 따라서 18세기 지성사 연구회의 본격적인 독회가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등 북학파 인사들이 청나라에 다녀와 남긴 기록인 연행록에서 출발한 데에는 운명적인 구석이 있다. 조선 후기 사대교린 문서집 ??동문휘고??를 함께 공부하면서, 연구회 멤버들은 외교사와 지성사를 매개할 중범위적 자료가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국제정치학자로서 우리의 관심이 구조적 격변기 국가 전략과 정책 결정자의 인식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명청 교체기 조선 지식인과 관리들의 시무(時務) 인식을 1차 사료를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조선 시대 중국 사행(使行) 기록인 조천록과 연행록이 여기에 부합하였다. 그리하여 연구회에서는 2004~2006년에 걸쳐 민족문화추진회의 ??연행록선집??과 박지원의 ??열하일기??, 홍대용의 ??연행기??를 일독하였다. 이어서 2007~2008년에는 동아시아 전통 질서와 조공체제에 관한 구미, 일본, 중국, 국내 연구 문헌을 읽었다. 이론적 서술과 가설 설정을 하는 데 필수적인 작업이었다. 이러한 기초 작업 뒤 2009~2011년에는 시기별로 대표성 있는 인물을 뽑아 당대의 한중 관계 인식을 사행 기록 중심으로 분석하는 개별 주제 프로포절이 진행되었다. 연구회를 2011년 ‘연행록 연구회’로 개칭하였고, 2012년 11월,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아 동북아역사재단의 후원으로 중국 학자 4명을 초대하여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때 발표한 논문들이 수정 작업을 거쳐 이번에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동북아연구총서로 결실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긴 여정의 산물이다. 분기별로 연구 실적을 닦달하는 논문 대량 생산의 시대에, 우리 연구회의 느린 속도를 항변할 길은 없다. 다만, 우리는 사료에 나오는 지명을 직접 밟아보고자 부족한 연구회 살림을 쪼개고 각자 비용을 추렴하여 답사 여행을 다녔다. 2006년 북경, 열하, 심양 답사를 필두로, 2007년에는 사라진 유구(琉球) 왕국, 지금의 오키나와를 방문했고, 2009년에는 큐슈에 다녀왔다. 2013년에는 송대 이래 청에 이르기까지 세계 첨단 기술 산업의 꽃이었던 청화 백자의 본산 경덕진(景德鎭)을 찾았다. 그 시간에 연구에 매진하여 책을 한 권 더 쓰는 것도 좋은 일이었겠지만, 가난한 연구회가 끈끈하게 계속될 수 있었던 데에는 동아시아를 주유천하한 답사의 공로가 크다. 이 책은 3부 10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에서 거자오광은 20세기 역사학의 흐름 속에서 조선의 연행록이 주목받게 된 경위와 한중일 학계의 관련 연구사를 밝히고 있다. 그는 중국의 학자들이 중국 중심 역사 해석에서 탈피하여, 풍부하고 상호성 있는 동아시아사 연구로 나아갈 것을 촉구하였다. 나아가, 명청대 중국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조선, 일본, 유구 등의 문헌을 중국 관련 방계 사료로만 취급하지 말고, 동아시아 공동체 구성원들 각각의 고유한 역사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거자오광의 이러한 문제 제기가 한국 학계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간 전통 시대 한국의 대외관계사는 중국, 일본, 미국 등 강대국의 역사 해석에 포섭되어 온 측면이 크다. 그에 대한 반발로 고대사와 중세사까지 민족주의로 재단하려는 부작용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더 많은 우리 측 사료를 발굴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재검토하여 주류 담론을 상대화하는 작업이 요청된다. 나아가, 동아시아 관계사의 필수적인 일부로서 한국 외교사의 목소리와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중국 학계는 동아시아 관계사를 중국 중심으로 서술하고 전유(專有)하는 동향을 일정하게 보여 왔다. 문화적 동질성과 제도의 공유를 근거로 전통 시대 중화체제 속 개별 행위자들의 주체성을 삭제하는 것이다. 역사 서술이 사실의 단순한 확정이 아니라 해석의 투쟁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담론 권력에 일방적으로 포획되지 않을 전략적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책에서 두 명의 중국인 학자들을 제외한 한국 학자들의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각자가 다룬 시기와 초점은 다르다. 1부 2장과 3장은 16세기 말과 17세기 초를 다루고 있다. 2장에서 전재성은 1570년대 허봉과 조헌의 조천록 분석을 통해 조선 성리학자들의 대명 인식을 살펴보았다. 그는 조명 관계에서 문화와 정체성이 중요했다는 기존 가설을 수용하면서도, 중요한 수정을 가한다. 성리학의 전성기이자 사대관계의 전형이라고 하는 16세기 후반에도 일정한 전략적 고려가 병존했으며, 명의 종주국으로서의 자격에 대한 비판과 소중화 의식이 작동했다는 것이다. 그가 제안한 이념적 사대와 전략적 사대, 이상적 중화와 실제적 중화의 개념적 구별은 매우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3장에서 이헌미는 이정구의 사행 기록을 활용하여 1590~1620년대 명청 교체기 조명 관계를 다루었다. 이 논문은 이 시기 조명 간 군사 협력의 성격과 변수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통의 적에 맞선 전쟁이라는 비상 상황에서 각자의 전략적 고려가 1차적으로 중요했고, 양국의 이익은 때로 상충했다. 그러나 조선과 명은 동맹을 방기하거나 교체하는 대신, 문화적 동질성과 사행 제도를 매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동맹을 유지하였다. 조명 관계를 힘이라는 객관적 변수 자체보다 위협?신뢰라는 주관적 인식 변수가 중요했던 동맹으로 해석한 논지는, 조선의 시각에서 중화체제를 모델화하려는 시도로서 의미를 가진다. 2부의 세 편의 논문은 18세기 대표적 연행록들을 다룬 글이다. 4장에서 김봉진은 1760년대 홍대용의 연행록을 중심으로 당대 조선과 청의 화이관을 살펴본다. 이 글에서는 유교 문명의 보편성에 기초하여 화이변태를 인정하는 열린 화이관과, 종족과 자국 문화 우월성을 강조하는 닫힌 화이관을 구별한다. 그는 이러한 화이관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측면에 주목하였다. 조선 소중화론은 원래 열린 화이관에서 도출되었지만, 조선 중기 양란(兩亂)과 명청 교체를 겪으면서 존주론, 북벌론 등과 결합하여 닫힌 화이관으로 변질되어 간다. 홍대용은 이를 비판하고, 연행 경험을 통해 청국의 중화화(中華化)를 인정하는 열린 화이관과 청국 안의 중화를 배우자는 북학론을 발전시키게 된다. 5장에서 하영선, 권민주, 정연은 18세기 청 제국 천하질서의 복합적 성격을 재조명한다. 특히 조선(??열하일기??), 청(??청실록??, ??열하지??), 티베트(판첸라마 전기 ??육세반선백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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