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서문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고 세계적으로 테러리즘이 격화되는 이때, 오존층만큼이나 빨리 시민의 자유권이 사라지고 있는 이때, 전 세계적으로 세 명의 여성 중 한 명이 평생 매를 맞거나 강간을 당한다는 이때 나는 왜 하필 내 배에 관해 희곡을 쓰게 되었을까? 아마 내가 제어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내 배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내 소원이 내 배를 제어하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배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다른 여성들 또한 자신의 배와 엉덩이, 허벅지와 머리카락, 피부 따위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라크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이라든지 그 밖의 중요한 문제들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최근 미국에 거주하는 다양한 인종의 여성들, 남자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삶에서 바꾸고 싶은 한 가지를 꼽아보라는 설문 조사를 했을 때도 대부분이 살을 빼고 싶다고 대답했다. 나도 그 여성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똥배만 들어가면 멋진 여자가 되고, 불안할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사람들에게 보호받고, 인정받고, 칭찬받으며, 소중한 존재가 되어 사랑받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어쩌면 나는 평생 내가 결점투성이에다 불결하고, 사악하고, 죄의식에 사로잡힌 존재라고 느껴왔으며, 내 배는 그런 온갖 자기혐오의 감정을 담고 있는 행낭이거나 주머니였는지도 모른다. 내 배는 내 슬픔과 어린 시절의 상처, 이루지 못한 야망, 표현하지 못한 분노의 저장고였는지도 모른다. 유독성 폐기물 창고처럼 내 배에선 폭발력이 있는 탄도들, 이를테면 선량할 것을 요구하는 유대 기독교, 여자는 조용해야 하며 드러나지 말아야 한다고 명령하는 가부장제, 남보다 돋보여야 한다고 부추기는 소비자 국가(사람은 본래 부족하고 사악한 존재로 태어났는데, 돈을 쓸수록 그것도 많이 쓸수록 나아진다는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같은 가치들이 뒤죽박죽 충돌을 일으켜왔다. 어쨌든 세상이 급격하게 원리주의자들의 진영으로 바뀌고, 다양한 목소리가 줄어들고, 양극화된 상투어들이 난무해진 요즘 내 똥배와 그 안에 담긴 삶을 탐구하는 작업은 그런 위험스런 속박들을 깨뜨려버릴 만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은 를 쓸 때와 사뭇 달랐다. 버자이너(질)에 대한 희곡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걱정이 많았다. 질과 관련된 수치심이 걱정스러웠고, 어둠 속 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도 두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질에게 말을 걸면서 나는 오히려 전 세계 여성들과 그들의 질에 가해지는 폭력이 더욱 걱정스러워졌다. 물론 질에 대한 대단한 찬사도 있었다. 기쁨과 발견, 섹스, 신음 소리 그리고 힘. 나는 나의 질 속으로 귀향한 뒤에 그런 환상을 갖게 되었고, 느긋하게 인생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심각한 자기혐오증이 내 몸의 또 다른 부위로 옮겨간 것이다. 이 책 는 나와 내 ‘완벽하지 않은’ 배에 대한 유별난 집착에서 출발했다. 나는 자기혐오증의 정체를 파악하고 기록하여 근본 원인을 밝혀내려고 애썼다. 속의 여성들과 달리 이 책에서는 나 자신이 가해자인 동시에 희생자이다. 물론 나 자신을 희생시킨 무기는 주변에서 쉽사리 구할 수 있었다. 완벽한 몸매에 대한 기준이 태어나면서부터 내 의식 속에 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화적인 영향력이나 사회적인 압력이 어떠하든 비만에 대한 편견과 끝없는 다이어트, 운동에 대한 집착과 똥배에 대한 근심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나는 잡지를 고르고, 잡지를 보며 이상적인 몸매의 기준을 머리에 새겼다. 게다가 늘씬한 금발 미녀들은 특별한 비결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요즘 나르시시즘보다 더욱 위급한 것은 세계적으로 급속히 퍼져가고 있는 자기비하 열풍이다. 나는 지난 6년 동안 40개국 이상을 여행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번져가는 음흉한 중독을 목격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치약만큼 많이 팔려나가는 피부 미백 크림들. 다이어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여덟 살짜리 딸의 갈비뼈를 제거하는 아메리카 대륙의 엄마들. 비만한 딸은 부모 망신이라며 다섯 살 난 자녀에게 엄격한 요가를 가르치는 맨해튼의 부모들. 끼니를 굶고 구토를 일삼는 중국과 피지, 그 밖의 여러 나라 소녀들. 아시아인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쌍꺼풀 수술에 열광하는 한국 여성들…. 이런 사례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나는 지난 3년간 내 배와 대화를 나눴다. 그 음습한 지하 세계로 들어가 숨겨진 비밀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비벌리힐스의 성형외과 병원, 리우데자네이루의 육감적인 해변, 뉴욕·모스크바·뭄바이의 헬스클럽, 이스탄불·남아프리카·로마의 미용실이 즐비한 번화가에서 만난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극소수를 빼고 내가 만난 여성들은 하나같이 자기 몸에서 적어도 한 군데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한 군데를 고치고 싶어했다. 그 여성들의 화장대 위에는 고치고 감추고 줄이고 늘이고 하얗게 만드는 각종 화장품들이 그득하다. 게다가 많은 여성들이 자기 몸의 약점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밖에 다른 일은 저절로 잘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물론 그런 믿음은 끊임없이 좌절만 안겨줄 선동 구호일 뿐이다. 이 책의 모놀로그에는 헬렌 걸리 브라운이나 이사벨라 로셀리니 같은 유명한 여성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그들의 모놀로그는 그 미인들과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눈 끝에 알게 된 삶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며, 인터뷰 기록은 아니다. 그 밖의 모놀로그는 실존 인물의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쓰였다. 나머지는 내 상상력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 희곡은 우리를 억압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하여 거기에서 자유롭게 해방됨으로써, 세상에서 도망치기보다 세상과 함께 달리고, 슬픔과 고통을 회피하려고 시간과 돈을 낭비하기보다 차라리 세상의 슬픔을 치유하는 데 스스로를 도구로 쓰기 바라는 나의 간절한 기도이다. 여성들 모두 바비 인형이 되기를 거부하고, 실크 사리 속의 뚱뚱한 여성이건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건 뭉툭한 코나 올리브 색깔의 피부, 도저히 손쓸 수 없는 곱슬머리를 가진 여성이건 성형하라는 말에 당당히 ‘아니요’라고 말하기를 바라는 내 소망의 표현이다. 나는 자본주의자의 러닝 머신에서 내려왔다. 이제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완벽하고 날씬한 몸매를 갖지 않더라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한다. 여러분도 자기가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멈추고 나와 동행하지 않겠는가. 나는 평생 땅과 함께 살아오며 자기 몸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는 아프리카의 한 할머니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자신의 뚱뚱한 몸을 자랑스러워하는 인도의 중년 여성에게서 크나큰 용기를 얻었다. 내가 알고 있는 바를 믿으라고 확신을 준 저명한 융 학파의 철학자인 매리언 우드먼(Marion Woodman)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을 뛰어넘으려 하지 말고 자기 속으로 들어가라”고 충고해주었다. 미용사나 잡지 판매상, 성형외과 의사들에게 ‘나는 두렵지 않다’라고 말하라. 여러분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건 상상력과 개성과 은유와 열정이 죽는 것이다. 당당해져라. 자기 몸을 사랑해라. 그리고 함부로 고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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