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안톤 체호프 선집을 내면서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완성자가 이태준(李泰俊. 1904~?)이라고 한다면, 러시아 단편소설의 완성자는 안톤 체호프이다. 이태준과 체호프는 작품에서 구성과 문체, 주인공, 분위기를 강조한다. 그래서 두 작가는 삶의 한 단면, 한 상황을 미완결의 구조 속에 녹여낼 뿐만 아니라,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또한 두 작가는 일상적 삶을 사는 평범한 주인공들을 통해, 소외되고 주변부로 밀려난 주인공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형상화한다. 문학의 자율성과 예술성을 항상 염두에 둔 두 작가는 ‘현실 문제’를 분위기 창출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그래서 분위기를 통해 삶과 현실에 대한 내밀한 암시를 드러내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어쩌면 192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독자들이 친근하게 체호프의 작품들을 애독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은은한 향기와 여운, 물이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움을 지닌 체호프의 예술세계는 사회적·역사적 변혁을 모색함과 동시에 새로운 예술형식을 탐구한 우리 근·현대문학 작가와 지식인에게는 하나의 ‘뜨거운 상징’으로 각인되는 것이다. 총 5권으로 구성된 《안톤 체호프 선집》은 일반 독자들에게 체호프를 제대로 알리자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체호프 연구자들 다수가 ‘체호프 예술세계의 현대성’을 심도 있게 조망하는 작업을 하기에 앞서 꼭 완수해야 할 과제로 《안톤 체호프 선집》 발간을 꼽았던 것도 또 다른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기획단계에서부터 야기된 문제가 우리 번역자들을 끝까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작품들만 골라서 번역할 것인가? 아니면 이미 번역되었지만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들을 포함해서 번역할 것인가? 5명의 번역자들은 여러 가지 현실 사정을 감안해 절충적 입장을 택했다. 그러고 나서 국내외에서 발간된 체호프 작품집들을 꼼꼼히 조사하면서 각 권에 실릴 작품들을 선정하는 데에만 꼬박 1년을 고스란히 바쳤다. 우리나라에서 체호프 작품의 번역·소개는 주로 초기 단편소설들 일부와 후기 단편과 중편소설들 일부 그리고 4대 희곡에 한정된 채, 중복해서 번역 소개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세계 전체를 조망하면서 개별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맹점을 극복하기 위해선 ‘작고 간편화된 출판물(신문 등)’에 발표된 체호프의 초기 단편소설들과 ‘두꺼운 문학잡지’에 발표된 체호프의 후기 단편과 중편소설들 그리고 다른 희곡들을 두루 아우르는 번역 ·소개가 절실히 요구된다. 그래서 1권은 거의 전체가 이전에 번역되지 않은 초기 작품들을 중심으로 번역했다. 그리고 나머지 2-5권에는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들을 원문에 충실하게 다시 번역함과 아울러 번역되지 않은 작품들도 추가했다. 한편 《안톤 체호프 선집》 역자들 다수가 지적한 중요한 사항은 의역을 감행하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점이었다. 그래서 우리 5명의 역자들은 지나친 의역으로 원문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는 점을 피하고,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자고 의견을 모았다. 제1권에 실린 작품들은 거의 전부가 초기의 체호프가 ‘짧은 시간에 써 내려간’ 유머러스한 단편들이다. 그 동안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일 것이라는 통념 때문에 전혀 손을 대지 않던 작품들을 번역했다. 소개된 단편들은 1882년부터 1885년 사이에 체호프가 신문에 발표했던 것으로,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의 초기 창작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들이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전체적으로는 단편소설 장르에 속하지만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 독자에게 그리 친숙하지 않은 스?까(сценка. 일정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이 있는 에피소드가 짤막하게 극화되는 형식의 장르), 하찮은 이야기мелочишка, 유머 잡록юмористическая смесь 등의 형식을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런 형식들은 유머러스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체호프에 의해 선호되었다. 제2권에 실린 작품들은 주로 1883년부터 1887년까지 발표된 초기 산문들이다. 이 시기 체호프 작품의 화자는 사건과 주인공을 조정하는 작가-화자로 등장한다. 하지만 1880년대 중반 무렵부터 그의 작품들에서는 사회 문제를 폭로하는 서술이 증가하게 된다. 이때부터 주인공과 주인공-화자의 말이 작품의 전면으로 등장하게 된다.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은 위의 두 가지 서술방식에 걸쳐져 있다. 흔히 예술적 완성도에서 후기 작품들에 비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체호프의 초기 작품들은 성숙한 후기 걸작들의 맹아萌芽라는 측면에서 그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2권에 실린 작품들이 그러한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제3권에 실린 작품들은 체호프의 후기 작품세계가 열리는 1888년을 기점으로 해서 나온 산문들이다. 이 후기 산문들은 초기 유머 단편들과는 다른 배경과 분위기를 담고 있다. 초기 작품들이 일상을 배경으로 해서 우스꽝스러운 상황과 기지 넘치는 장면을 통해 독자들의 웃음을 유도하고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는데 역점을 두었다면, 여기에 번역된 후기 작품들은 초원과 바다라는 자연을 배경으로 인생의 의미와 고독, 인간과 자연, 고통받는 인간 영혼 등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다. 제4권에 실린 작품들은 주로 체호프의 후기 산문들이다. 체호프의 초기 작품세계와 후기 작품세계를 이어주는 〈적〉을 필두로 해서, 후기 작품세계의 대표적인 중·단편소설들을 골고루 담았다. 4권에 수록된 작품들은 대개가 주인공의 (내면)세계에 나타난 ‘일상적 삶의 세계와 자아의 충돌과 화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고, 인간-삶(현실)-관념의 상호작용으로 빚어지는 ‘주인공의 자아의 다양한 양상’을 변주해서 보여주고 있다. 제5권에 실린 작품들은 체호프의 희곡들이다. 일반 독자에겐 조금 낯선 〈이바노프〉와 이젠 우리에게 아주 친숙해진 〈갈매기〉와 〈바냐 외삼촌〉이 실려 있다. 이 희곡들은 ‘체호프 드라마 예술의 새로운 경향’과 더불어 ‘체호프 드라마 시학의 현대성’을 깨닫게 해주는 중요한 작품들이다. 이 희곡들을 읽으면서 체호프와 그의 희곡 작품들에 대한 평가가 어째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체호프의 예술세계가 지금, 이시대를 사는 우리와 ‘소통의 한 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안톤 체호프 선집》 총 5권에 수록된 작품들에서는 체호프의 입장이 완결되지 않고, 저자의 목소리로 많은 것들이 조정되고 해결되지 않는다. 이것은 체호프 작품들이 가지는 대화성과 양면성, 미완결성, 열린 체계와 열린 결말, 다의미성과 애매성으로 연결된다. 종국에는 텍스트와 기저텍스트 차원에서 드러나는 이 같은 예술적 특성들이 체호프의 작품들을 현재의 시공간에서 늘 새롭게 인식하는 주요한 기반이 된다. 뿌쉬낀이 짜 놓은 러시아 문학이라는 ‘외투’를 고골이 조각을 대어 때우거나 꿰매었다면, 체호프는 깁고 누비기도 하면서, 세탁까지 해버렸다. 이 같은 ‘체호프의 외투’에는 전통과 혁신, 계승과 단절이 항상 공존하고 있다. 따라서 체호프의 현대성은 예술 텍스트의 내부로부터 우리의 삶에 걸쳐져있는 ‘그 무엇’이자, 늘 새롭게 엄습해오는 ‘그 무엇’이다. 《안톤 체호프 선집》을 읽는 독자들이 이 모든 것을 몸소 느끼길 소망한다. 총 5권의 《안톤 체호프 선집》 발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 범우사 윤형두 사장님과 윤재민 부사장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선집을 발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시고, 어려운 고비 때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고려대학교 고일 교수님과 출판사와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신 청주대학교 정종진 교수님께도 감사드린다. 아울러 지지부진한 번역작업에도 불구하고 인내로 일관하며, 생경한 러시아 인명과 지명을 껴안고 시름한 편집부 마희식님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강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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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안톤 체호프 선집을 내면서 9 명절의 고역 19 개와 인간의 대화 27 부농의 둥지 32 일자리가 없어서 40 메모 50 마슬렌니짜의 풍속 규범 53 결혼 시즌에 즈음하여 - 마담뚜의 수첩에서 56 어느 이상주의자의 추억으로부터 58 인생은 아름다운 것! 66 니노치까 - 소설 69 그녀는 갔습니다 79 일반교양 - 치과학의 최종결론 83 에디슨과 나의 담화 - 우리 특파원으로부터 92 두 명의 신문기자 -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 96 벽 103 피장파장 108 감옥에 갇힌 경비병 - 스?까 118 꿈 - 크리스마스 이야기 127 결혼에 필수적이고 불가결한 서문 138 돈지갑 140 손님 - 스?까 146 성스러운 소박함 - 단편소설 155 연극이 끝나고 난 뒤 - 스?까 167 결혼하려는 남자들을 위한 지침서 - 비밀스럽게 177 관리들의 업무 메모 186 나의 ‘그녀’ 189 외교관 - 스?까 191 콘트라베이스와 플루트 - 스?까 201 바보 지식인 - 스?까 212 게으름뱅이들 223 신참 작가들을 위한 지침서 - 축하선물(우체통을 대신해서) 232 익사자 - 스?까 240 최면술장에서 248 제목을 고르기 어려운 이야기 254 재판정에서 생긴 일 258 시골 의사 선생님들 263 망한 일 - 보드빌 같은 사건 275 작품론 : 유머와 풍자문학의 백미 285 연보 306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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