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앙드레 지드, 나는 고발한다 옮긴이의 글 아프리카를 10여 번이나 여행했던 것을 보면, 지드는 꽤 아프리카를 좋아했던 것 같다. 1893년 10월, 1차 아프리카 여행을 떠난 그는 작열하는 태양과 때묻지 않은 자연을 만끽하고 돌아왔다. 프랑스 남부 위제스 출신의 법학 교수 아버지와 북부 루앙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프로테스탄트 가정의 엄한 규율 속에서 자란 지드에게, 아프리카 여행은 그야말로 온갖 얽매임과 구속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맛보게 해주었다. 1895년에는 어릴 적부터 사랑해 온 외사촌 누이 마들렌 롱도와 마침내 결혼하여 아프리카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1923년에는 다시 리오테 제독의 초청을 받아 모로코를 여행했다. 얽매임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욕망은 끊이지 않아, 1925년 7월에는 다시 자신의 책과 재산을 팔아 조카 마르 알레그레와 함께 콩고로 떠난다. 콩고 여행은 이듬해 6월 초까지 계속되었는데, 그 여행에 대해 기록해 놓은 내용의 일부가 바로 이 『콩고 여행』(1927)이다(나머지 일부는 차드에서 돌아올 때의 여행기록으로, 1928년에 출판된 『차드 여행』에 수록되어 있다). 콩고행 아시아호 선상에서 잠시 사념에 젖는 그에게, 그 여행은 그의 인생에서 일어난 다른 중요한 사건들처럼 운명적인 것이었다. 비록 몇 개월 전부터 이 여행에 대한 강한 열망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는 했지만, 내가 원했다기보다는 오히려 거역할 수 없는 어떤 운명에 의한 불가피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내 인생의 모든 주요 사건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여행이 ‘나이 들어 실천에 옮겨진 젊은 시절의 한 계획’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이 여행을 결심했던 것은 내 나이 스물일 때였으니, 벌써 36년 전의 일이다. 콩고로 향하게 만든 그 ‘불가피한 운명’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36년 전 엘리 알레그레로부터 받은 영향을 말한다. 지드의 어머니는 아들의 신앙생활 지도를 위해 당시 목사였던 엘리 알레그레를 가정교사처럼 붙여준다. 지드보다 다섯 살이 많았던 그는 하지만 곧 아프리카로 선교활동을 떠난다. 그리하여 그는 1889년 콩고로 향하게 된다. 당시 콩고에 있던 바로 그 엘리와의 편지교환은 스무 살의 꿈 많은 청년에게 콩고 여행에 대한 강렬한 소망을 품게 했다. 36년이 지난 지금, 즉 1925년 8월 5일 콩고로 향하는 배 위에서 쓴 엘리에게 보낸 편지는 그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지금 카메룬 앞 바다를 항해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동하며 선생님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시아호의 선상에 선생님이 함께 있다면! 모레면 로페즈 갑과 포트겔탈에 도착할 것입니다. …… 그 모든 이름들에는 선생님에 대한 추억이 깊게 배여 있습니다. 그 이름들은 얼마나 많은 세월을 내게 동경하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는!) 놀라울 정도로 여행이 아주 순조롭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선생님이 그곳에서 나보고 한번 오라고 했던 그 당시에 (여행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그는 이미 50대 중반이었다. 하지만 이 여행은 쉽게 실현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천만다행히도 그의 오랜 꿈을 실현하는 데 촉매 역할을 해줄 한 ‘구세주’를 만난다. 마르셀 드 코페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마르탱 뒤 가르와 친하게 지내던 사이로 아프리카 식민지의 행정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지드는 뒤 가르를 통해 코페(그는 후에 뒤 가르의 사위가 된다)를 알게 되는데, 코페는 그 두 작가 친구를 아프리카로 초대했으면 하는 마음을 품는다. 그는 마르탱 뒤 가르에게 이렇게 편지를 쓴다. “언젠가 지드와 함께 이곳에 한번 오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제 소원 하나가 이루어지겠어요.” 용기를 얻은 지드는 마침내 콩고 여행을 결심한다. 코페는 지드의 결심이 조만간 실천되도록 돕기 위해 프랑스 식민지 장관에게 편지를 쓴다. 마침내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답장을 본국으로부터 받은 코페는 다시 지드에게 즉각 전한다. ‘현지의 경리부에서는 지드 일행에게 식비를 지급할 것, 프랑스령 적도아프리카 총독은 지드 일행에게 여행에 필요한 금액을 지불할 것, 군화와 우의와 말안장 등도 함께 지급할 것’. 이에 고무된 지드는 그 나름대로 어떤 ‘임무’를 자신에게 부여해줄 것을 제안하기 위해 식민지 장관에게 편지를 보낸다. 여행 도중, 제가 지나는 …… 지역들의 부족(그들의 종교, 풍속, 작업 환경의 변화, 보건 상태 등)과 자원, 그리고 그 활용을 위한 개선책에 관하여 전문적인 연구저술로 보고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 제안은 받아들여진다. 그리하여 지드는 보고서 작성 및 조언이라는 ‘공적인 임무’를 띠고 옛 가정교사였던 엘리의 아들 마르와 함께 대망의 콩고 여행길에 오른다. 영화를 하던 마르는 지드의 비서 자격으로 동행했는데, 프랑스에서의 여행 준비 등 그의 역할은 아주 컸다. ‘보고서 작성’ 아이디어도 그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렇게 해서 떠난 콩고 여행은 하지만 이후 지드의 인생에 가히 ‘운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인생에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점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 여행은 50대가 되도록 미학이나 모럴의 천착에만 주로 열심이었던 지드에게 애타심이나 휴머니티, 나아가 사회문제에까지 눈을 돌리게 해준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심심풀이로’ 여행을 하고 있던 그에게, 식민지에서 접한 몇몇 비인간적인 현실은 자기반성을 불러일으켰으며 나아가 타인의 존재와 불행에 대해 눈뜨게 만들었다. 콩고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부조리한 식민지 정책이 야기하는 폐단과 지배자의 피지배자에 대한 비열한 억압과 수탈 구조를 목격하게 된다. 그의 눈에 비친 식민지 원주민들은 ‘짐승 같은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말하는 것이었다. 실상을 ‘떠벌리는’ 것이었다. 식민국 대회사 직원들이 식민국의 행정관과 결탁하여 벌인 한 비인간적인 체벌 행위는 그를 결정적으로 바꿔 놓는다.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밤비오의 그 ‘무도회’(체벌을 가리킴) 이야기가 저녁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자주 이야기되는 것처럼, ‘원주민들은 프랑스의 점령 이전이 지금보다 더 불행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이제 설득력이 부족하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피할 수 없는 책임을 떠안았다. 내 마음은 지금 불만과 원망으로 가득하다. 나는 지금 운명이려니 하며 체념을 하기에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몇 가지 일들에 대해 알고 있다. 어떤 운명의 여신이 나를 이렇게 아프리카로 떠밀었는지? 도대체 나는 무엇을 추구하기 위해 여기에 왔는지? 나는 조용히 살아왔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알게 되었다. 그러니 말을 해야 한다. 이전에는 타인을 설득하는 일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삶 역시 그런 식이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자신의 글을 통해 기대했던 것은, 현재를 변화시키는 것보다는 후세의 영혼들을 영속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변했다. 현재의 문제 역시 그에게는 중요하다. 현실의 이해와 참여는 이제 그에게 ‘운명적인’ 테제가 된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내 말이 들리게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줄곧, 나는 내 말이 들리게 하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말을 해왔다. 오래 남기를 바라는 단 한 가지 욕심에서 후세의 사람들을 위해 항상 글을 써왔기 때문이다. 곧 소멸되어도 좋으니, 목소리가 즉각 대중에게 미치는 저널리스트들이 부럽다. 지금까지 나는 거짓 도로 표지판들을 믿고 돌아다녔던 것 같다. 나는 이제 그것이 아무리 끔찍한 것일지언정, 숨겨진 것을 알아내기 위해 무대 뒤편으로 파고들리라. 내가 의심하고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바로 그 ‘끔찍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지드는 식민지에서 본 그 ‘끔찍한 것’들을 폭로하고 고발한다. 당시까지만 해도 누구 하나 선뜻 언급하기를 꺼리던 식민지의 끔찍한 실상에 대한 폭로와 고발은 프랑스 사회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의회는 1928년 ‘대회사 조사 위원회’를 발족했으며, 식민지 장관은 또 식민지 장관대로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다. 지금까지 순전히 나르시시즘적인 삶을 살아 온 지드는 그 여행이 계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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