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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토트 설교론

존 스토트 설교론

존 스토트 / 원광연

(도서출판)크리스챤다이제스트·2005-01-15

  • 종교
  • KDC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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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존스토트 설교론 존스토트 설교론 바빙크의 고대 기독교 교리사 차례 서문 6 제1장 설교의 영광: 역사적 스케치 11 제2장 설교에 대한 현대의 반감 49 제3장 설교의 신학적 토대 95 제4장 설교의 가교 역할 143 제5장 연구의 소명 192 제 6 장 설교 준비` 225 제7장 진실함과 열심 282 제8장 용기와 겸손 324 후기 366 서문 어떤 설교자든 다른 설교자들에게 설교에 대하여 설교한다는 것은 경솔하고도 무모한 일일 것이다. 나는 내 스스로 전문가로 자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강단에서 나는 “의 사전달의 실패로 인한 좌절감”에 사로잡히는 때가 많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속 에서는 메시지가 불타오르는데, 내가 느끼는 것은 고사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조차도 다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가 없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라도 실패했다는 마 음이 없이 강단을 내려오는 때가 거의 없고, 거의 언제나 후회의 마음이 생기고, 용서해달라 고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며, 앞으로는 더 잘 할 수 있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도록 그를 바라 보리라 다짐하게 된다. 동시에, 다음 여러 장들에서 그 이유들이 제기되겠지만, 나는 설교가 전도를 위해서도, 교회 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요소임을 믿는 고집스런 신자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의 상황은 설교하는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설교의 필수성이 감소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설교에 대해서는 이미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책들이 씌어졌다. 설교학이나 의사전달 및 관 련 주제들에 대해서 나 자신이 읽은 책만 해도 거의 일백 권 가까이나 된다. 그런데 거기에 한 권을 더 추가한다면, 그것이 과연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본서에 나름대로 특징 이 있다면, 그 주제에 관하여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몇 가지 보충적인 면들을 함께 제시하 고자 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제1장의 역사적 조감을 통해서 필자가 그랬듯 이 설교 사역에 “영광”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리하여 제2장에서 오늘날 설교와 관련된 문제점들을 진지하게 대하게 되기를 바란다. 제5장과 6장에서 연구와 설교 준비에 대해 실질적인 조건을 주고자 했지만, 전달, 화법, 혹은 제스처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경험 많은 설교자의 “조수”로 일하면서 시행 착오를 겪고, 또한 친근한 비평들을 받음으로써 가장 잘 터득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로서는 중요한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았고, 또한 설교의 가장 중요한 비결들이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신학적이요 인격적인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기 도 하다. 그리하여 제3장에서는 “설교의 신학적 토대”를 다루고, 제7장과 8장에서는 설교 자의 성실성, 진지함, 용기, 겸손 등의 인격적인 특징들을 다루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필자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경험과 확신 가운데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설교의 가교(架橋) 역할” 이다(제4장). 진정한 설교는 성경의 세계와 현대 세계 사이의 간격을 좁혀 주는 것이요, 따 라서 두 세계 모두에 똑같이 발을 디뎌야 하는 것이다. 모든 설교자들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고통스러운 갈등을 의식하고 있다. 독자들 중에는 필 자가 수많은 인용문들을 첨가시켰고, 그 인용문 가운데 많은 것들이 오늘날 우리의 상황과 는 동떨어진 지나간 시대에 속하는 저자들에게서 취하였다는 것을 느낄 분들도 있을 것이 다. 인용문들을 첨가시킨 것은 그저 필자가 읽은 것들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을 분이 다. 필자 자신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들을 자유로이 솔직하게 쓰기도 했지만, 그런 것만을 썼 다면 아주 외람된 일이었을 것이다. 설교는 거의 스무 세기 동안 깨어지지 않고 이어 내려 온 교회의 전통이다. 하나님께서 사역에 특별하게 복주신 과거의 위대한 설교자들에게서 배 울 것이 매우 많다. 우리의 현실이 그들의 현실과 다르다 할지라도, 필자가 보기에 그 때문 에 그들의 이상을 함께 나누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또한 독자들 중에는 필자가 다른 의미에서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느낄 분들도 있을 것이 다. 즉, 오늘날의 많은 목사들이 당하는 문제점들을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는 점 말이다. 오 늘날 많은 목사들은 과로와 박봉에 시달리고 있고, 또한 우리의 조상들은 알지 못하던 지 적·사회적·도덕적·영적 압박들을 끈질기게 받고 있다. 그리고 사기도 많이 떨어져 있다. 많은 이들이 외로움과 실망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어떤 이들은 몇 개 부락의 회중들을 섬길 임무를 떠맡고 있기도 하다(남부 인도 교회의 한 장로는 30개 부락을 맡고 있는데 자 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그들을 돌본다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소외받는 도시의 빈민 지역 에서 지도자도 없는 손바닥만한 교인들과 함께 악전고투하고 있기도 하다. 필자가 제시하는 연구와 준비의 기준이 오랜 전통을 지닌 도시 교회에는 적합할 수 있으나 개척 교회의 상황 에는 적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너무나 높은 것은 아닐까? 그렇다. 필자 자신의 경험이 주로 런던의 올 소울즈 교회(All Souls Church)와 또한 다른 곳의 그 비슷한 교회들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집필하는 동안 대부분 그런 교회들을 염두에 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필자는 다른 상황들도 최선을 다하여 기억하고 염두에 두었다. 필자가 전개한 이상들은 물론 구체적인 현실에 적응할 필요가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타당한 진리라 믿는다. 설교자가 현대의 도시 교회의 대규모의 회중에게 설교하든, 혹은 고대 유럽의 마을 교회의 역사가 오랜 강단에 서든, 혹은 활기 있게 쓰임 받았다가 방치된 지 이미 오래 지난 낡은 옛 교회당의 한 쪽 구석에 남아 있는 몇 명의 교인들과 씨름하고 있든, 남아메리카의 오두막에서 빈민들의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든, 아니면 서구 세계의 가정 집에 모인 소그룹에게 비공식적으로 말씀을 전하든 ― 이런 모든 상이한 조건들이 있지만 동일하게 그대로 적용되는 점도 매우 많은 법이다.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동일한 인 간들이 있고, 또한 동일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말씀과 세상을 공부하게 하시 고 그리하여 정직하게 확신과 용기와 온유함으로 다른 이에게 전하게 하신 동일한 부족한 설교자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설교하는 특권이 점점 다양한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필자는 물론 사례비를 받고 전임으로 일하는 목회자를 주로 염두에 두었지만, 팀 사역이 옳다는 것과 그것이 유익 이 많다는 것을 강하게 믿고 있으므로, 팀 사역에 속하여 함께 일하는 여러 부교역자들과 평신도 설교자들도 염두에 두었다. 또한 설교자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그들의 설교를 듣는 자들도 잊지 않았다. 거의 모든 교회에서 목회자와 교인들 간의 관계가 ― 설교자와 회중들 간의 관계가 ― 더 긴밀하고 더 화기애애한 것이 유익할 것이다. 좀더 성경적이며 시대에 맞는 설교를 요구한다면, 목회자들을 행정적인 임무에서 해방시켜서 연구하고 준비하는 일 에 더 시간을 많이 소비할 수 있도록 해 준다면, 그리고 목회자들이 설교의 책임을 진지하 게 감당할 때에 그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마음을 표현해 준다면, 평균적인 정도의 교회도 그 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본서의 집필에 도움을 주신 여러분들 중 몇 분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우선 내쉬 목사님(Rev. E. J. H. Nash)께 감사를 드린다. 그는 필자의 나이 열일곱 살 때에 그리 스도께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셨고, 필자를 양육하셨고, 놀라운 신실함으로 필자를 위해 기도 하셨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맛을 느끼도록 인도해 주셨고, 처음으로 그 말씀을 강해하 는 기쁨의 맛을 보게 해 주신 분이다. 그 다음, 친히 모루가 되어 필자로 하여금 자신의 모든 설교의 기술들을 연마하도록 해 준 올 소울즈 교회의 오래 참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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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스토트 설교론 존스토트 설교론 바빙크의 고대 기독교 교리사 차례 서문 6 제1장 설교의 영광: 역사적 스케치 11 제2장 설교에 대한 현대의 반감 49 제3장 설교의 신학적 토대 95 제4장 설교의 가교 역할 143 제5장 연구의 소명 192 제 6 장 설교 준비` 225 제7장 진실함과 열심 282 제8장 용기와 겸손 324 후기 366 서문 어떤 설교자든 다른 설교자들에게 설교에 대하여 설교한다는 것은 경솔하고도 무모한 일일 것이다. 나는 내 스스로 전문가로 자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강단에서 나는 “의 사전달의 실패로 인한 좌절감”에 사로잡히는 때가 많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속 에서는 메시지가 불타오르는데, 내가 느끼는 것은 고사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조차도 다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가 없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라도 실패했다는 마 음이 없이 강단을 내려오는 때가 거의 없고, 거의 언제나 후회의 마음이 생기고, 용서해달라 고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며, 앞으로는 더 잘 할 수 있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도록 그를 바라 보리라 다짐하게 된다. 동시에, 다음 여러 장들에서 그 이유들이 제기되겠지만, 나는 설교가 전도를 위해서도, 교회 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요소임을 믿는 고집스런 신자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의 상황은 설교하는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설교의 필수성이 감소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설교에 대해서는 이미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책들이 씌어졌다. 설교학이나 의사전달 및 관 련 주제들에 대해서 나 자신이 읽은 책만 해도 거의 일백 권 가까이나 된다. 그런데 거기에 한 권을 더 추가한다면, 그것이 과연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본서에 나름대로 특징 이 있다면, 그 주제에 관하여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몇 가지 보충적인 면들을 함께 제시하 고자 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제1장의 역사적 조감을 통해서 필자가 그랬듯 이 설교 사역에 “영광”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리하여 제2장에서 오늘날 설교와 관련된 문제점들을 진지하게 대하게 되기를 바란다. 제5장과 6장에서 연구와 설교 준비에 대해 실질적인 조건을 주고자 했지만, 전달, 화법, 혹은 제스처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경험 많은 설교자의 “조수”로 일하면서 시행 착오를 겪고, 또한 친근한 비평들을 받음으로써 가장 잘 터득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로서는 중요한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았고, 또한 설교의 가장 중요한 비결들이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신학적이요 인격적인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기 도 하다. 그리하여 제3장에서는 “설교의 신학적 토대”를 다루고, 제7장과 8장에서는 설교 자의 성실성, 진지함, 용기, 겸손 등의 인격적인 특징들을 다루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필자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경험과 확신 가운데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설교의 가교(架橋) 역할” 이다(제4장). 진정한 설교는 성경의 세계와 현대 세계 사이의 간격을 좁혀 주는 것이요, 따 라서 두 세계 모두에 똑같이 발을 디뎌야 하는 것이다. 모든 설교자들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고통스러운 갈등을 의식하고 있다. 독자들 중에는 필 자가 수많은 인용문들을 첨가시켰고, 그 인용문 가운데 많은 것들이 오늘날 우리의 상황과 는 동떨어진 지나간 시대에 속하는 저자들에게서 취하였다는 것을 느낄 분들도 있을 것이 다. 인용문들을 첨가시킨 것은 그저 필자가 읽은 것들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을 분이 다. 필자 자신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들을 자유로이 솔직하게 쓰기도 했지만, 그런 것만을 썼 다면 아주 외람된 일이었을 것이다. 설교는 거의 스무 세기 동안 깨어지지 않고 이어 내려 온 교회의 전통이다. 하나님께서 사역에 특별하게 복주신 과거의 위대한 설교자들에게서 배 울 것이 매우 많다. 우리의 현실이 그들의 현실과 다르다 할지라도, 필자가 보기에 그 때문 에 그들의 이상을 함께 나누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또한 독자들 중에는 필자가 다른 의미에서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느낄 분들도 있을 것이 다. 즉, 오늘날의 많은 목사들이 당하는 문제점들을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는 점 말이다. 오 늘날 많은 목사들은 과로와 박봉에 시달리고 있고, 또한 우리의 조상들은 알지 못하던 지 적·사회적·도덕적·영적 압박들을 끈질기게 받고 있다. 그리고 사기도 많이 떨어져 있다. 많은 이들이 외로움과 실망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어떤 이들은 몇 개 부락의 회중들을 섬길 임무를 떠맡고 있기도 하다(남부 인도 교회의 한 장로는 30개 부락을 맡고 있는데 자 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그들을 돌본다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소외받는 도시의 빈민 지역 에서 지도자도 없는 손바닥만한 교인들과 함께 악전고투하고 있기도 하다. 필자가 제시하는 연구와 준비의 기준이 오랜 전통을 지닌 도시 교회에는 적합할 수 있으나 개척 교회의 상황 에는 적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너무나 높은 것은 아닐까? 그렇다. 필자 자신의 경험이 주로 런던의 올 소울즈 교회(All Souls Church)와 또한 다른 곳의 그 비슷한 교회들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집필하는 동안 대부분 그런 교회들을 염두에 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필자는 다른 상황들도 최선을 다하여 기억하고 염두에 두었다. 필자가 전개한 이상들은 물론 구체적인 현실에 적응할 필요가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타당한 진리라 믿는다. 설교자가 현대의 도시 교회의 대규모의 회중에게 설교하든, 혹은 고대 유럽의 마을 교회의 역사가 오랜 강단에 서든, 혹은 활기 있게 쓰임 받았다가 방치된 지 이미 오래 지난 낡은 옛 교회당의 한 쪽 구석에 남아 있는 몇 명의 교인들과 씨름하고 있든, 남아메리카의 오두막에서 빈민들의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든, 아니면 서구 세계의 가정 집에 모인 소그룹에게 비공식적으로 말씀을 전하든 ― 이런 모든 상이한 조건들이 있지만 동일하게 그대로 적용되는 점도 매우 많은 법이다.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동일한 인 간들이 있고, 또한 동일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말씀과 세상을 공부하게 하시 고 그리하여 정직하게 확신과 용기와 온유함으로 다른 이에게 전하게 하신 동일한 부족한 설교자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설교하는 특권이 점점 다양한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필자는 물론 사례비를 받고 전임으로 일하는 목회자를 주로 염두에 두었지만, 팀 사역이 옳다는 것과 그것이 유익 이 많다는 것을 강하게 믿고 있으므로, 팀 사역에 속하여 함께 일하는 여러 부교역자들과 평신도 설교자들도 염두에 두었다. 또한 설교자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그들의 설교를 듣는 자들도 잊지 않았다. 거의 모든 교회에서 목회자와 교인들 간의 관계가 ― 설교자와 회중들 간의 관계가 ― 더 긴밀하고 더 화기애애한 것이 유익할 것이다. 좀더 성경적이며 시대에 맞는 설교를 요구한다면, 목회자들을 행정적인 임무에서 해방시켜서 연구하고 준비하는 일 에 더 시간을 많이 소비할 수 있도록 해 준다면, 그리고 목회자들이 설교의 책임을 진지하 게 감당할 때에 그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마음을 표현해 준다면, 평균적인 정도의 교회도 그 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본서의 집필에 도움을 주신 여러분들 중 몇 분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우선 내쉬 목사님(Rev. E. J. H. Nash)께 감사를 드린다. 그는 필자의 나이 열일곱 살 때에 그리 스도께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셨고, 필자를 양육하셨고, 놀라운 신실함으로 필자를 위해 기도 하셨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맛을 느끼도록 인도해 주셨고, 처음으로 그 말씀을 강해하 는 기쁨의 맛을 보게 해 주신 분이다. 그 다음, 친히 모루가 되어 필자로 하여금 자신의 모든 설교의 기술들을 연마하도록 해 준 올 소울즈 교회의 오래 참아온…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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