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낮은 데를 향해서 치열하게 움직인 카메라 1955년 우연히 접하게 된 스타이켄의 『인간가족The Family of Man』은 내 인생을 크게 바꾸어놓았습니다. 그 책의 갈피에는 생명력으로 꿈틀거리는 감동적인 사진들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마치 오래 전부터 기다리던 소식을 접한 것처럼 그 사진 속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앞으로 내게 닥쳐올 일의 희미한 서막임을 감지했습니다. 내 사진 작업은 그때의 감동으로부터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날 사진의 중심 테마가 대부분 인간에 관한 것이듯 나 자신 또한 일관되게 ‘인간’을 다루어 왔습니다. 나와 50년을 함께 해온 카메라는 항상 낮은 데를 향해서 치열하게 움직였습니다. 그 카메라 앞에는 소외된 이웃들이 서 있었지요. 사진은 인간의 삶을 밝히는 작업입니다. 나는 늘 지금 내가 찍고 있는 사진을 통해서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내 목소리가 세상 사람들 마음에 도달하리라 확신했습니다. 사진의 생명력은 논리 이전의 감동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때문에 나의 사진은 항상 휴머니즘에 입각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전하는 진실한 이야기’를 민중들에게 전하는 책임과 사명, 이것이 내 사진의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난과 불평등 그리고 소외의 현장을 담은 내 사진은 ‘배부른 자의 장식물적 소유물’이 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가난하고 누추한 삶의 진실을 사랑하는 나는 호화주택에서 사치스럽게 생활하는 졸부들에 비해 가난한 서민의 진실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나 역시 사진가의 길을 가면서 의식주를 해결하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사진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많은 좌절과 절망을 겪기도 했지요. 더욱이 사회고발적인 측면을 강조한 사진 때문에 유신과 군사독재 시절에는 국가권력으로부터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진은 나를 찾아주었습니다. 나는 사진만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다고 믿고 사진에 나를 송두리째 맡겼습니다. 많은 이들이 지나가는 말로 ‘사진은 왜 찍어, 돈도 안 되는데’라고 말했지만 지금까지 돈을 위한 사진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내 인생에 오직 하나 행운이 있었다면, 내가 팔리지 않는 사진에 미칠 수 있었던 점입니다. 이는 모두 가난한 서민들이 내 곁에 있었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살아 움직이는 그들의 지난한 삶에 공감하며, 함께 아파하고 슬퍼할 수 있었던 것, 그들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나는 앞으로도 오직 현실을 직시하는 것으로 내 사진작업의 생애를 걸 생각입니다. 우리 시대의 진실을 살펴온 나의 사진에 담긴 그러나 지금은, 아니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수많은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고마운 마음을 드립니다. 감히 말하자면 나의 사진 작업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나는 이 세상 끝까지 가난하고 소외 받은 이들과 함께 살다가 죽을 것입니다. 나는 새로운 체험을 할 때마다 그 체험 속에 들어 있는 어떤 핵심적인 의미 같은 것을 발견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나는 사진의 가치를 내가 사는 동안 겪은 체험에 두고 있으며 실제로 그 체험에 의존해왔습니다. 이번에 엮어내는 책을 통해 나는 새로운 감동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시인 조은 씨가 내 사진에 새로운 생명력의 입김을 불어넣어준 것이 그것입니다. 조은 씨는 내가 미처 사진 속에서 발견해내지 못했던 것들, 소소하지만 살아 있는 의미들을 하나하나 호명해서 불러내주었습니다. 시인이 이 삶에 대해서 어쩔 수 없이 가지는 순구한 애정을 통해 조은 씨는 내 사진에 새로운 빛깔과 향기와 이름을 선사해주었습니다. 한번도 만나지 못한 시인과 내가 사진과 글을 통해 이처럼 애틋한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퍽 감동스럽습니다. 조은 씨가 내 사진에 입힌 글들은 이 책을 보는 독자들로 하여금 내 사진 속의 인물에게, 그 공간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가게 해줄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모두가 축복된 일입니다. 2004년 9월 최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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