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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낯선 나라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

데이비드 로웬덜 지음/김종원 (옮긴이), 한명숙 (옮긴이)

개마고원·2006-05-20

  • 역사
  • KDC 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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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서문 과거는 도처에 존재한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생각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인식 가능한 선례들을 가지고 있다. 유물, 역사, 기억들이 인간의 경험을 가득 채우고 있다. 과거의 특정한 흔적들은 궁극적으로 사라지겠지만, 집합적으로는 소멸되지 않는다. 기념되든 거부당하든 주목받든 무시당하든, 과거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 과거는 신중하고도 실체적인 수많은 환기행위 속에 침투해 있다. 어떤 미국 사람에게 1980년대의 풍경은 마치 ‘잠행성 유산’―망사르드(mansard) 지붕(이중 경사의 지붕으로 하부는 상부보다 물매가 가파르다:옮긴이)을 인 목골조의 쇼핑 플라자들, 사적지, 민속촌, 역사 보존 지역들의 벽돌 모양을 그대로 살린 부쳐 블록(butcher block, 명암 줄무늬로 된 쪽매붙임의 두꺼운 합판:옮긴이) 장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의 환상에 빠져 있는 어떤 사람은 “우리는 선조들을 얼떨떨하게 만들 만큼 보존기술을 발전시켜왔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 현대인들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박제기술에 몰입한 결과, 요즘에는 모든 것들이 죽기 전보다 죽은 후에 더 생동감 있어 보인다.” Dennis, Cards of Identity, p. 165. 예전에는 손꼽을 정도로 몇 안 되는 박물관이나 골동품 가게에서나 볼 수 있던 역사적 장식물이 이제는 나라 전체를 장식하고 있다. 혁명의 유물에서부터 아우슈비츠에서 나온 물건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념물이 소중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골동품은 이제 지난날의 무상함을 받아들이고 있다. 계보학에 쏟는 열의는 헤일리의 『뿌리』에서부터 모르몬교 선조들의 소급적 개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오랫동안 뿌리를 상실한 채 살아왔고 최근에는 미래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된 미국인들은 집단적으로 과거를 돌아보는 데서 안락함을 느끼고 있다. 역사적인 마을이나 구역들은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져버린 사람들에게 친근하고 위안을 주는 풍경을 지닌 고향 대용품”으로 기능하고 있다. Fortier, Fortress of Louisbourg, p. 19. 영국으로 이주해간 어떤 미국인은 집단 정체성이 비교적 빨리 뿌리 내린 국민에게도 비슷한 경향이 있음을 간파했다. 영국의 자연 보호론자들은 디즈니의 영향을 받은 역사를 경멸하면서, 오래된 교회에서부터 옛 시골 마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을 보호하고, 대서양 너머로 유출된 문화유산을 애석히 여기면서 과거의 영광을 통해 현재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곤 한다. 최근 유럽의회가 워털루역 이름이 나폴레옹 전쟁에 대한 불행한 기억을 계속 떠올리게 하므로 이름을 바꾸자고 제안했을 때, 영국인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프랑스인들이 웰링턴의 위대한 승리를 끊임없이 기억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반박했으며, 또 넬슨 기둥과 트라팔가 광장, 블레넘 궁전을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표시했다. ‘British refighting Battle of Waterloo',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29-30 Sept. 1984, p. 1. 옛날 영화, 옛날 의상, 옛 음악, 전통 요리법이 도처에서 유행하고, 노스탤지어는 온갖 물건을 시장에 내놓는다. 전통과 복고풍이 건축과 예술에 풍미하고 있다. 학생들은 지방사를 연구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기억들을 조사한다. 대중매체에는 역사소설이나 옛날이야기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렇게 불려 나온 과거는 대부분 현재의 작품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아무리 양심껏 보존하고 아무리 진심으로 복원한다 해도, 그리고 지나간 시간 속에 아무리 깊이 침잠해 들어간다 해도, 그때로 되돌아간 삶은 지금의 우리의 삶과는 아주 다른 존재방식과 믿음에 기초한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차이가 바로 과거가 지닌 매력 중에 하나다. 만약 과거가 단순히 현재의 반복에 불과하다면 과거를 동경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의 렌즈를 통해 과거를 보고 기념할 수밖에 없다. 하틀리(L. P. Hartley)의 『중개인 The Go-Between』은 이렇게 시작된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 그곳에서 그들은 다르게 행동한다.” 실로 그들이 다르게 행동했다는 것이 이 책의 기본 관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최근에 획득된 관점이다. 역사의 대부분 동안 사람들은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시기의 사건이라 할지라도 그 당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언급하면서 과거를 현재와 거의 구별하지 않았다. 19세기까지도 역사적 과거에 대해 견해를 피력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현재와 비슷한 것으로 생각했다. 역사의 드라마는 삶과 풍경의 중요한 변화들을 기록했지만, 인간의 본성은 항상 불변하는 것으로 가정되었고 사건들도 항상 똑같은 열정과 선입관에 의해 작동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노스탤지어로 고상하게 포장될 때도, 혹은 적극적인 진보 주창자들에 의해 폄하될 때조차도, 과거는 낯선 나라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나라의 일부로 여겨졌다. 그리고 사건 기록자들은 가정된 유사성을 반영하는 직접성과 친밀감을 가지고 지나간 시간들을 묘사했다. 이러한 시각은 두 가지의 특별한 결과를 가져왔다. 현재의 기준에서 벗어난 과거는 미덕의 증거로 찬사를 받거나 타락의 징표로 비난받았다. 그리고 과거 상황들은 현재의 관심사와 관련이 있어 보이고 비교도 가능해 보였기 때문에, 역사는 유용한 표본의 원천으로 기능했다. 또한 현재와 비슷한 용어로 설명된 과거는 왜 일들이 그렇게 발생했는지를 설명하는 데 적합했다. 역사가 창조주의 위대한 계획이나 자연의 법칙에 따라 쇠퇴하든 진보하든 관계없이, 그 패턴은 돌이킬 수 없고 변경할 수도 없으며 보편적인 것이었다. 간혹 에라스무스처럼 혜안을 갖춘 사람들은 역사적 변화가 과거 상황과는 전혀 다른 현재를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착오에 대한 인식은 지배적인 욕구나 전망과 어긋났다. 18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유럽인들은 과거를 상이한 영역, 다시 말해 다른 나라이면서도 독특한 역사와 개성을 갖춘 낯선 땅의 집합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과거는 비교를 통해 교훈을 제공하던 역할을 점차 그만두게 되었지만, 현재를 정당화하고 찬양하는 유산으로 소중히 다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과거의 새로운 역할은 공동체의 정체성, 연속성, 염원의 상징인 기념물을 복원하고 유물을 보호하는 관심을 고조시켰다. 3세기에 걸쳐 고대의 원형은 지식과 법을 지배하고 기예를 가르쳤으며 유럽 문화 전반을 고양시켜왔다. 고대는 모범적이고 유익했으며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물질적인 잔존물은 대부분 경시되거나 파괴되었다. 건축가와 조각가들은 고전기 유물의 약탈과 소실을 막기 위해 그것들을 보호했다기보다는 자신들의 작품을 위해 그것들을 발굴하는 경향이 더 많았다. 예술 후원자들은 고대 유물의 파편들을 수집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가치관에 맞는 새 작품을 주문하는 쪽에 관심이 더 많았다.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보존은 호고적이고 변덕스럽고 우연적인 추구 개념에서 벗어나 국가 차원의 프로그램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20세기에 이르러서는 나라마다 약탈과 쇠락으로부터 자기 나라의 문화유산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과거의 상이함에 대한 인식이 과거의 보존을 촉진했다면, 보존행위는 그 상이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어제는 공동체 의식의 원천으로 존중받는 한편 위험에 처해 있는 귀중한 원천으로 소중히 다루어지면서 점점 더 오늘과 달라져갔다. 그러나 과거의 유물과 잔재들에는 점점 더 오늘의 모습이 새겨진다. 우리는 단조롭고 불행한 현재와 대비되는 이국적인 과거를 상상할지 모르지만, 현대의 도구를 가지고 과거를 주조하고 있다. 과거는 그 특징이 오늘의 기호에 따라 만들어지고, 그 생소함은 그 흔적에 대한 우리의 흔적 보존방식에 의해 길들진 낯선 나라다. 보존은 과거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심화시키지만, 그것의 창조적 활용을 방해했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중심이 되는 성서적·고전적 전통들에 관해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알고 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에 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선조들은 단일한 고대와 일체감을 지니고 있었고 그 파편화된 자취들은 자신들의 창조물의 모형이 되었다. 우리의 수많은 이국적인 과거들은 유물로서 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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