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대화에 덧붙여 그럼, 현대의 그림은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책은 화가와 미학자가 7일간에 걸쳐 나눈 그림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대화의 초점은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그림에 맞춰 있다. 그림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이들의 구체적인 대화를 통해 명화가 탄생하기까지의 제작 배경과 방법, 그리고 미술사적 의미를 살필 수 있다. 서양 그림을 중심에 놓고, 동양의 그림을 덧붙여 설명하는 방식이 특히 흥미롭다. 동서양 그림의 특성과 감상 방법을 비교하며 이해할 수 있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대화는 1950년대에 머물러 있다. 이 점이 좀 아쉽다. 욕심 많은 독자들은 20세기 현대 그림의 양상에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그들을 위한 보탬 글이다. 대화의 연장선에서 현대 그림의 흐름을 살펴보고, 이미 제시된 감상 포인트를 어떻게 적용해 이해할 것인지 이야기할 것이다. 사실, 20세기의 100년 동안에는 사회ㆍ문화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림의 경우 고전을 부활한 르네상스 이후 500년간의 변화보다 훨씬 다종다양한 변화를 보였다. 내용과 형식의 변화뿐 아니라 개념과 장르조차 완전히 뒤집히거나 뒤섞여버렸다. 그래서 그림의 위기나 종말이란 말도 나왔다. 과연 그렇게 될지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앞의 대화에서 그림의 본질은 색과 형태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벽면이나 종이, 캔버스 같은 평면에 구현되면서 이미지가 탄생하고, 곧 그림으로 완성된다. 이때 이미지는 우리가 보는 세계나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시각화이다. 이미지를 알아볼 수 있으면 구상화, 그렇지 않으면 추상화로 구분한다. 이 둘 중 구상화가 더 흔하고, 우리에게 익숙하다. 15세기에 그려진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20세기 초에 그려진 피카소의 「게르니카」도 똑같이 구상화다. 이미지가 어떻게 그려졌느냐에 따라 르네상스 그림, 입체주의 그림이라는 이름으로 달리 부를 뿐이다. 물론 차이는 분명히 있다. 전자는 금세 여인의 아름다운 미소를 느낄 수 있는 사실적인 구상화인데 반해, 후자는 한참 보고 나서야 전쟁의 공포를 느낄 수 있는 추상에 가까운 구상화다. 이 둘만 놓고 보더라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앞의 대화에서도 언급되었지만, 현대 그림은 마네와 세잔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시각화의 대상과 그것을 재현하는 방식을 새롭게 전환해 그림에 대한 인식과 조형성의 영역을 확장한 혁명가였다. 마네는 고전 그림이 취했던 신화ㆍ종교ㆍ영웅에 대한 기록을 포기하고 삶의 현장을 화폭에 담았으며, 세잔은 고전적인 재현을 멈추고 대상을 해체해 평면화했다. 이들은 사회적인 주제와 조형의 실험이라는 혁명을 통해 현대 그림의 방향을 제시했다. 일본의 미술도 현대 그림의 출범에 기여했다. 강렬한 색채와 과감한 구도가 특징인 우키요에는 모네, 고흐 등의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그로테스크한 원시미술은 고갱과 피카소의 종합주의와 입체주의의 탄생을 도왔다. 이와 함께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새로운 매체의 등장과 시민 사회의 발전도 그림의 혁신을 부추겼다. 특히 그림보다 뛰어난 재현 능력을 가진 사진 기술의 등장은 화가들을 긴장케 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도록 했고, 이내 사진술로는 불가능한 형태 왜곡이나 색채 조화로 독자적인 특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야수주의, 표현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추상주의 그림이 연달아 탄생했다. 그런가 하면 사진술을 적극 활용한 그림도 나타났다. 피카소나 브라크는 사진을 캔버스에 붙여 입체주의를 발전시켰고, 워홀은 유명 스타나 상품 사진을 인쇄해 팝아트를 출범시켰다. 또한 마르셸 뒤샹은 「모나리자」의 사진 위에 수염을 그려 다다이즘을 개시했으며, 척 클로즈는 초상사진을 엄청난 배율로 확대해 극사실주의를 이끌었다. 사진의 힘을 빌려 형상을 왜곡하는 마술을 부린 것이다. 이들과는 달리 아예 사진의 효과를 철저히 배제한 화가들도 있었다. 칸딘스키나 몬드리안 등의 추상화가들이었다. 이들은 사진이 재현할 수 있는 형상 자체를 거부했다. 제아무리 사실적으로 그린다 해도 결국 평면을 벗어날 수 없는 가짜 이미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형상을 그리는 대신 조형에 필요한 기본적인 선과 색만으로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명암법과 원근법으로 형상을 재현했던 고전 그림의 전복이었던 것이다. 추상화는 칸딘스키가 1908년 화실에 거꾸로 걸린 풍경화를 보고 감탄해 그리기 시작한 것에서 출발했다. 대상이 명확하지 않아도 감동이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러한 칸딘스키의 추상화는 보링거(Wilheln Worringer, 1881~1965)의 “예술은 존재하는 세계의 현상과 관계없이 추상 충동으로 이뤄진다”는 주장에 힘입어 발전했다. 즉흥적인 감흥으로 색채와 형태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내면세계를 드러낸 칸딘스키의 ‘뜨거운 추상’에 이어, 미술공예운동의 기수였던 몬드리안은 금욕적이고 절제된 형태와 색으로 수직·수평의 비대칭적 화면을 구축한 ‘차가운 추상’을 발표했다. 이러한 추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한 유럽 화가들에 의해 미국으로 옮겨갔고, 드 쿠닝, 클라인, 로스코, 폴록 등의 화가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들은 유럽의 입체주의와 모더니즘 예술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몬드리안의 차가운 추상을 발전시킨 색면 추상과 칸딘스키의 뜨거운 추상을 발전시킨 액션페인팅을 선보였다. 이러한 추상표현주의 그림은 좀더 절제된 미니멀리즘 그림으로 발전해 1960년대를 풍미했다. 루이스, 스텔라 등은 형태와 색을 극도로 단순화해 화면을 구성했다. 되돌아보면 1910년 이후 무려 60여 년간 추상화가 유럽과 미술을 휩쓴 것이다. 물론 이 시기에 추상화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표현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모더니즘 양식이 출몰했고, 이들 양식을 완전히 뒤엎는 다다이즘도 등장했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처럼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뒤샹은 대량생산된 남성용 소변기를 전시장에 갖다놓고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곧 작가가 직접 제작하지 않은 물건(오브제)이라도 의도가 있는 것이면 예술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개념미술과 설치미술, 퍼포먼스 같은 오브제를 이용한 미술이 현대 사회를 장악했다. 실제로 영국의 젊은 미술가인 데미언 허스트가 상어를 독극물이 담긴 수족관에 넣은 작품이 생존 작가 중 가장 비싼 140억 원에 팔렸다. 사물과 작품의 구분이 없어지고 만 것이다. 오늘의 미술은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로 규정한다. 글자 그대로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이다. 모더니즘은 작가의 개성이 강조된 후기인상주의 이후부터 추상주의까지의 다양한 양식을 일컫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모더니즘의 양식은 물론 과거의 고전 양식까지도 흡수해 작가의 내면세계와 사회에 대한 인식을 시각화한다. 따라서 이전의 양식처럼 내용과 형식의 구분이 없고, 서로 뒤섞인 형식을 띤다. 내용과 재료, 기법이 무제한으로 뒤섞인 ‘혼성모방’ 자체가 포스트모더니즘인 것이다. 그렇다고 오늘의 미술에 포스트모더니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고전 양식의 구상화가 살아 있고, 형식미를 추구하는 모더니즘과 추상화도 상존한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감상 방법도 제각각이다. 평면에 입체적인 오브제를 더한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은 입체 조형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평면에 영상을 투사한 그림 역시 시간의 흐름을 중시한 영상 미학의 시각에서 감상할 필요가 있다. 이때의 그림은 영상의 배경이나 보조수단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평면이 중심인 그림인 경우, 앞의 대화에서 언급한 감상법들이 여전히 유효함을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되짚어보자. 서두에 제시된 감상 포인트 가운데 첫번째는 작품의 의도idea였다. 이것은 고전 그림이든 현대 그림이든 동등하게 중요하다. 의도가 없다면 예술 작품으로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상화나 포스트모더니즘 회화는 이런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추상화의 경우 내용이나 의도를 파악하기보다 조형ㆍ미학적인 의도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 그림은…
목차펼치기접기
차례 1일째 그림을 감상하는 다양한 방법 그림의 기본, 데생 2일째 데생, 그림의 진실게임 3일째 데생의 반, 빛과 색 구도, 눈을 즐겁게 하라 4일째 그림의 혁명, 빛과 색 엑조티시즘, 낯선 것에 대한 끌림 5일째 다시 빛과 색 색가, 안정을 주는 열쇠 개성, 상상을 위한 열쇠 6일째 그림의 한계 형식, 그림을 보는 열쇠 그림과 사회 내용과 형식의 딜레마 7일째 회고와 전망 후기-‘그림에 관한 어느 대화’, 그 후 해설-그럼, 현대의 그림은 어떻게 볼 것인가? 김이천/미술평론가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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