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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라이프

파크라이프

요시다 슈이치 (지은이), 올긴이: 이영미

웅진씽크빅·2010-03-10

  • 문학
  • KDC 8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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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옮긴이의 말 「파크라이프」는 잘라보기와 내려다보기, 초점 흩뜨리기 등 작가의 다각적이고도 독특한 시각 활용 기법이 유독 돋보이는 작품이다. 물론 이런 기법은 인간의 내면과 외면의 차이, 그로부터 비롯되는 인간관계의 한계와 인간의 근원적 고독을 묘사하고자 한 주제와 절묘하게 맞물리기에 그 빛을 더욱 발한다. 즉, 이러한 다양한 시각적 시도는 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엮어내고 부각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자 수단이며, 이는 곧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다각적인 시선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먼저 잘라보기는 히비야 교차점 지하와 그 일대를 생일 케이크의 데커레이션이라 가정하고 상공에서 한가운데를 가르는 묘사와 다빈치의 부정확한 소묘 가운데 하나라는 ‘인체해부도’ 단면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외형과 내면의 불일치, 즉 밖에서 본 것과 실상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함이며, 타자의 시선이나 판단이 저지를 수 있는 오류를 표현해내기 위한 장치다. 이어서 내려다보기는 공원 상공에 기구를 띄우는 노인의 에피소드와 구릉 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각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대상과의 거리를 확보함으로써 보다 객관적인 관찰을 시도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드러나며, 그것은 곧 대상의 관찰이 결국은 자기 자신의 관찰로 환원된다는 원환적 고리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끝으로 초점 흩뜨리기는 공원으로 들어서는 주인공이 벤치에 앉을 때까지 줄곧 아래만 바라보다가 순간적으로 고개를 쳐들면서 어질어질하고 황홀한 원근감을 즐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공간적인 원근감의 혼란에 빗대어서 바로 앞의 광경을 바라보면서도 과거와 현재,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시공간을 초월한 내적인 시각을 암시하는 방편으로 쓰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제시되는 다양한 시각들은 본다는 것, 더 나아가 안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데, 소설 안에서는 이렇다 할 굴곡 없는 흔하디흔한 일상의 외형적 묘사로만 드러난다. 외형적 묘사에 그치는 까닭은 바로 타자가 이해할 수 있는 내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암시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서로의 구체적인 생활을 파고드는 내용이 아니라 추상적인 화제에서 겉돌 뿐이다. 결국 타자는 늘 외면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외면으로 나타나는 것밖에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인간이 스스로 파악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와는 별도로, 어쨌든 각자의 내면은 존재하며 그 내면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여러 가지 감정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감정은 이따금 타자와 대립하거나 엇갈리기도 한다. 여기에서 바로 인간의 고독이 비롯되는 것이다. 이런 내면의 엇갈림과 대립을 표현해낸 것이 이 책의 또 하나의 수록 작품인 「플라워스」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언뜻 보기에는 이 두 작품의 빛깔은 많이 다를 수 있다. 히비야 공원(파크)을 축으로 담담한 일상(라이프)을 묘사해낸 「파크라이프」와는 달리 꽃꽂이 조형미의 미묘한 뉘앙스와 인간관계, 그리고 꽃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추함을 대비시킨 「플라워스」는 앞의 소설에서는 정중하게 배제시켰던 내면적인 부딪침이 크고 작은 폭발을 거치며 집요하게 그려진다. 직장의 기묘한 선배. 극단 생활을 해가면서 점차 자신의 가치관을 확립해가는 아내와의 관계. 고향에서 함께 지낸 사촌형과의 과거와 현재. 이런 일상이 그려지는 소설 속에서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갈등하고 부딪친다. 주인공 이시다와 직장 선배인 모토아키는 둘 다 아류 꽃꽂이를 하지만, 이시다는 그나마 꽃꽂이의 기초를 알고 그 형태를 따르려 하는데 비해, 모토아키의 경우는 철저한 아류이며 그때까지 쌓여온 화도(花道)의 형태마저 자칫 파괴해버릴 수 있는 방식으로 꽃을 꽂는다. 그런데 규제의 틀을 무너뜨리는 거친 힘이란 늘 어떤 신비로운 매력을 갖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그 사람 자신도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위험한 매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와의 관계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좁힐 수 없는 거리임은 분명하다. 단지 모토아키의 경우는 거리감이라기보다 자신과 상대 사이에 거리 같은 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대책 없는 친밀함 때문에 더욱 당혹스럽다. 그래서 이시다는 그의 인상을 ‘깃털’에 비유하는데, 그것은「파크라이프」처럼 가깝지도 멀지도, 또 결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관계가 아니라, 갑자기 성큼 가까워졌나 싶으면 손바닥을 뒤집듯 휙 멀어져 버리는, 그래서 어떻게 거리를 두어야 할지 곤혹스럽게 만들어버리는 종류의 관계다. 그리고 이것 역시 결코 이해할 수도 수용할 수도 합치될 수도 없는 인간 사이의 벽의 한 양상이다. 때문에 묘사와 표현 방식이라는 면에서는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지만, 두 소설 모두 끝내 알 수 없는 타자의 내면과 인간의 고독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 두 소설은 때로는 냉정하고 우아한 때로는 열정적이고 추레한 인간과 그들의 삶의 양상을 다각적인 시각으로 조망하고자 하는 작가의 꾸준한 문제의식과 의도가 잘 드러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인간은 이따금 자기 자신의 내면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존재다. 따라서 이 작품은 대상을 통한 자기 점검이 늘 필요한 우리에게 자기를 낯설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리라 믿는다.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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