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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국왕의 능행 연구

조선후기 국왕의 능행 연구

이왕무

민속원·2016-07-05

  • 408쪽
  • 사회과학
  • KDC 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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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머리말 지금의 서울 시청 광장은 여가를 즐기는 시민과 푸른 잔디가 어우러지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덕수궁 앞의 수문장 교대식을 시작으로 계절마다 시민들을 모이게 하는 이벤트가 성대하게 거행되고 있습니다. 불과 30년 전만해도 이곳 광장에서 국가 공식 행사가 의례적으로 거행되었다고 말하기에는 상전벽해라는 용어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필자의 눈에 보이는 시청광장은 60년대 존슨, 70년대 닉슨과 카터, 80년대 아프리카 등의 수반 및 한국 대통령들의 카퍼레이드가 펼쳐지던 공간으로 남아 있는 기억이 더 강합니다. 제가 종로의 광교에 거주하던 시절에 외국 대통령의 방한 카퍼레이드가 벌어지면 꼭 길에서 환영을 하다가 주워오던 종이 성조기가 지금도 눈에 선할 정도입니다. 당시에는 국빈의 카퍼레이드처럼 도심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행렬도 없었으며, 국가 의례만큼 대중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는 행사도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사례는 오늘날 매년 영국에서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2016년 6월 10일 런던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탄신을 축하하기 위해 버킹엄 궁의 근위기병들이 열병식장으로 행진하여 연례적인 탄신 퍼레이드인 패전트리(pageantry)를 거행하였습니다. 여왕의 생일은 4월 21일이지만 국가적인 공식 탄신 행사는 보통 6월의 주말에 열렸습니다. 특히 금년은 여왕의 보령이 90세인 해로 영국 전국이 경사롭게 여겼습니다. 여왕은 부군과 왕자들을 대동해서 식장에 도착한 뒤 버킹엄 근위병들을 인스펙션하고 군악대의 열병을 지켜본 뒤 궁으로 돌아갑니다. 여왕과 근위병들의 화려한 제복과 의장들이 빛나는 장엄한 의례가 펼쳐지는 곳에는 영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들까지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영국 왕실 근위병의 상징인 붉은색과 검정색 제복에 털모자를 착용한 기병과 보병들이 질서정연하게 여왕을 정점으로 군악대의 연주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권위적이고 위압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전통적이면서 유대감을 느끼게 만드는 공동체적 일치감을 줍니다. 근위병이 왕실만을 호위하는 상징적인 의장부대가 아니라 100회 이상 영국의 정치외교상의 이권이 걸린 전장의 선봉에서 전투에 참가한 정예부대이며 장교와 하사관들은 몇 대에 걸쳐 입대한 자들이 많은 것이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전근대적이고 시대에 뒤쳐진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왕조시대 의례에 충성하도록 하는 것일까요? 더욱이 공화 정치체제를 지향하는 시민들이 여왕과 왕실의 퍼레이드에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대 인류 사회가 물질문명의 진화를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고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이 미래의 대안이라고 호평하고는 있지만, 과거로부터 사람들에게 각인된 무의식적 기억이 재구성 내지는 한순간에 변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보여주는 사례일 것입니다. 사회구성원들의 생활양식이 된 의례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발생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사실 이점이 제가 조선시대 국왕의 幸行, 陵幸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에 임하게 된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조선의 국왕들이 개국 초부터 말기까지 도성의 내외에서 행행 儀禮를 依例的으로만 거행했다고 보는 것에 역사적 의미를 찾고자 한 것입니다. 자칫 국왕들이 수백 년간 지루하도록 유사한 의례를 반복적으로 거행한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늘 존재하면서 그냥 해야만 하는 일상의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야말로 그 사회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류역사에서 조선왕조처럼 단일 왕실가족이 장기간 통치체제를 유지한 사례가 거의 없는 것을 감안한다면, 조선왕조의 통치체제에서 근간을 이루었던 의례 및 그 중에서도 행행 의례에 대한 연구는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왕조 전 시기를 걸쳐 행행 의례처럼 지속되고 유지되었던 왕실 및 국가의례는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국왕이 왕조의 수반으로 국가적 행사를 주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조선왕조는 유교를 국교시하여 국왕과 지배층은 물론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 이념을 생활의 덕목으로 실행하고자 했습니다. 조선왕조 이전인 삼국시대 이래로 집권세력은 유교를 정치의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유교의 기본적인 덕목에서 체제를 유지하고 정당화 시킬 수 있는 禮治라는 개념을 적극 도입했습니다. 예치는 의례라는 구조로 정리되어 시행되었습니다. 의례의 기본 구조는 吉禮, 嘉禮, 軍禮, 凶禮, 賓禮라는 오례로 분류되어 국가와 사회의 주요한 행사에서 시행되었습니다. 오례에서 국왕이 주재하는 행사에는 반드시 행행 의례가 나타났습니다. 오례에서도 국왕이 제사를 주재하는 길례에 행행이 집중되었으며, 그 대표적인 행행으로 국왕이 선대 능침에 행차하는 능행이었습니다. 조선후기로 갈수록 능침이 증가했고, 부왕에게 직접 보위를 받지 못한 국왕들이 생부와 생모를 追崇하며 조성한 園廟까지 추가되어 능행이 더욱 잦아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조선후기에 국왕의 능행이 증가했음에도 그 절차와 과정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른 병장기와 의복의 차이는 나타났지만, 능행의 진행 절차인 의례는 세종대에 정비한 五禮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조선말기까지 유지되었습니다. 국왕의 행렬이 능침에 도달하는 陵幸路를 보더라도 수백 년간 동일한 도로와 교량을 이용하였고, 호위병들은 언제나 같은 장소에서 시위를 하고 이동했습니다. 그럼에도 단 한 번의 국왕 危害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국왕의 능행이 거행되면 도성 내외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행렬을 觀光하고 즐기는 君民一致적인 모습이 연출되기까지 했습니다. 왕조사회 구성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던 국가의 공식적인 기념일이었던 것입니다. 필자는 의례의 기능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 구조 안에 젖어든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의례가 시작될 때는 낯설고 어색하여 효용성이 떨어지는 존재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차수가 쌓이면, 의례는 前例에서 典禮로 변모하면서 때가 되면 반드시 거행해야 하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변모한다는 논리입니다. 사회의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통치자의 정치적 구조에 수용되는 것입니다. 의례를 창출한 자가 그것의 기능을 처음부터 기획했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왕조국가 구성원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매개체로 존재했던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儀禮는 依例的으로 반복되고 지속되는 성격을 지녔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의례의 가치를 일상에 내면화시키게 만드는 기능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의례의 특성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왕조의 국왕들은 능행을 비롯한 다양한 행행을 수시로 거행하였습니다. 그들은 구중궁궐에만 거주하던 닫혀진 권력이 아니었습니다. 국왕들은 가능한 도성 내외를 다니면서 민정을 살피며 왕조국가의 인민들을 慰撫하는 열린 통치를 지향하였습니다. 능행은 그 자체가 효도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국왕이 자신의 효심을 대중에게 공식적으로 알리는 의례였습니다. 조선왕조 국가의 국시라고 할 수 있는 유교에서 강조하던 효와 정확히 일치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국왕의 능행은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다지는 정치적인 행위이면서 왕조국가의 통치 이념을 반복적으로 자각시키던 고도의 통치술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왕조국가에서 국왕이 하는 일은 모든 것이 정치적이면서 통치와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국왕은 왕실가족과 관료집단의 단속에서부터 일반민들의 생활 보장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이미지를 비추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국왕이 威儀를 드러내는 능행에서 비추어지는 모습은 화려한 복장과 깃발, 눈부신 병장기만이 아니라 그 의례를 거행하고 수용하는 사람들이 모두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 내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양차의 대 전란을 치른 조선후기의 국왕들이 통치를 굳건히 하고 왕조의 永續性을 유지하기 위해 능행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으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시점에서 볼 때, 과연 우리가 유지하고 물려줄 국가의 의례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필자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여러 선학의 질정을 바라는 마음에서 감히 단행본을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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