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역자 해제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통합의 미학으로 ‘청기사(Der Blaue Reiter)’라는 이 낭만적이고 경건하고, 또 귀족적인 동시에 전투적이기 도 한 이름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들은 20세기 현대예술의 불규칙하고도 혼란스러운 태동을 포착하고 그 산고를 함께하며 새로운 탄생을 널리 선포했던 선구자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청기사가 하나의 단체였던 것은 아니다. 청기사는 1912년에 발간된 예술연감(藝術年鑑)의 제목이었는데, 그 편집진이 1911년 10월 전위적인 전시회를 조직하고 책 제목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책과 전시회 둘 다를 가리 키는 이름이 되었다. 사실 전시회에 출품한 예술가들 대부분이 연감의 필진이었기 때문에 전시회와 책은 하나의 신념, 하나의 원칙이 각각 다른 형태, 다른 미디어로 표현된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연감 『청기사』는 새로운 예술을 향한 묵시록적인 열정과 신념 그리고 기 대감으로 가득 찬, 그야말로 ‘현대예술의 신약성서’라 불릴 정도로 20세기 예술사에서 가 장 중요한 미학적 강령문으로 알려져 있다. ‘청기사’라는 이름으로 두 번의 전시회가 개 최되었고, 연감도 2호가 계획되었지만 결국 1912년 1호 출간이 실제 활동의 전부였음을 감 안할 때, 청기사가 거둔 성과와 명성은 그만큼 더 놀랍다. 청기사는 일차대전 발발 직전, 현대예술운동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던 독일의 뮌헨에서 탄 생했는데, 당시 이곳에는 이미 뮌헨 신예술가동맹(Neue Knstlervereinigung Mnchen, 1909)이 결성되어 있었고, 청기사의 핵심인물인 러시아 출신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 Kandinsky) 역시 여기에 합류하고 있었다. 당시 동맹은 심하게 분열되어 있었는데, 칸딘스 키와 몇몇 동지들은 새로운 기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동맹을 탈퇴해 좀더 개방적인 노선을 형성했다. 칸딘스키는 진작부터 새로운 시대, 새로운 문명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으로 들끓던 당시 유럽 도처에서 나타난 여러 예술 분야의 혁명적 변화들을 서로 연결짓는 연감을 출간 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격정적인 문장력을 지닌 화가 프란츠 마르크(F. Marc)가 합류하면서 그러한 아이디어는 마침내 실현될 수 있었다. 『청기사』의 ‘실체’는 사실 칸 딘스키와 마르크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함께 작업할 동료들을 그때 그때 유동적으로 선택 했다. 말〔馬〕을 좋아한 마르크, 기사(騎士)라는 문화적 모티프에 심취해 있던 칸딘스키, 두 사람 모두 푸른색을 좋아했다. 그들이 뒤뜰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즉흥적으로 떠올린 이름 ‘청기사’는 어떤 하나의 명확한 뜻으로 정의될 수 있는 개념이라기보다는, 막연하면서도 총체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일 때 오히려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예로부터 유럽인들이 기사와 연결시켜 온 귀족적인 감성, 그리고 낭만주의 이래 정신적 충만을 향한 동경으로 상징되는 푸른색의 감정 등, 청기사는 이렇게 물결이 퍼져 나가듯 듣는 사람의 마음속에 과거와 미래 의 불투명한 방향을 향해 끝없는 연상운동을 일으킨다. 연감 『청기사』의 미래예술 기획 역시 체계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유토피아적이며, 그래서 미완성인 듯한 인상이 강하다. 『청기사』의 성공과 위상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당대 예술 이론의 체계적인 결정판으로 간주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감 『청기사』는 그 구성부터 본질적으로 개방적인데, 이는 『청기사』 편집진의 편집원칙이자 예술철학, 또한 그들이 예언하고 발견한 현대미학의 기본 명제들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총 열아홉 편의 글과 백마흔다섯 컷의 도판〔이 책에는 제2쇄에만 실린 그림 한 컷(p.73), 호화장정본에 실린 그림 두 컷(pp.6-7), 전시회 포스터(p.244), 부록으로 칸딘스키의 『청기 사』 표지 시안 세 컷(pp.257-259)과 출판 홍보 포스터(p.260)까지 모두 백쉰세 컷이 실려 있다〕, 세 편의 악보로 이루어진 이 책의 구성을 보면 그 편집체계가 참으로 독특해서 당 시에는 더할 나위 없이 파격적이며 전위적이었고,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산만하다고까지 할 것이다. 「정신적 자산」 「독일의 ‘야수파’」 「두 그림」이라는 세 편의 글에서 마르크는 특유 의 짧고 격앙된 어조의 경구체(警句體)로, 새로운 정신적 자산에 대한 독일인의 무관심을 비 난하고 새로운 예술의 탄생을 강조한다. 마르크는 또 드레스덴의 ‘다리파(Die Brcke)’, 베를린의 ‘분리파(Sezession)’, 그리고 ‘청기사’가 포함된 뮌헨의 신예술가동맹을 새로 운 예술을 위한 투쟁의 중심으로 언급하고, 19세기 동화 삽화와 1910년 칸딘스키의 작품을 나란히 배열하면서 둘 다 내면의 세계를 추구하는 공통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화가이자 작가인 다비트 부를류크(D. Burljuk)의 「러시아의 ‘야수파’」는 당시 러시아 예술(계)의 악습과 한계를 독설로 비난하고, 기존의 아카데미즘을 벗어나 새로운 아름다움의 법칙을 추구한 라리오노프, 쿠즈네초프, 곤차로바, 칸딘스키, 야블렌스키, 베레프킨 등을 ‘러시아 야수파(Wilden)’라 부르면서 그들의 예술 법칙을 구체적으로 나열한다. 외젠 들 라크루아(E. Delacroix)의 인용문은 대부분의 예술서가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씌어지 는 바람에 잘못된 개념과 판단으로 이루어진다는 내용으로, 예술가들이 직접 쓴 글을 싣는 다는 청기사의 편집원칙을 웅변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작가이자 미술비평가인 아우구스트 마케(A. Macke)는 「마스크」에서 다양한 예술형식을 비교하면서 형식은 단지 내면적 삶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마케는 일찌감치 비교예술사의 이념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왔으며, ‘다리파’의 ‘진정 예술적인 분위기’와 ‘엄청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듯한 풍요로움’ 을 마르크와 청기사에게 처음으로 일깨워 주었다. 아널드 쇤베르크(A. Schnberg)의 「음악과 텍스트의 관계」는 텍스트의 지배에서 벗어난 순수한 음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었다. 러시아 시인 미하일 쿠즈민(M. Kuzmin)의 시 「봄의 왕관」은 세상만사 속에 은밀히 거하는 하나의 존재에 대한 신비주의적 경건함을 담고 있 다. 프랑스 작가 로제 알라르(R. Allard)의 「회화에서의 혁신의 표시」는 드랭, 브라크, 피 카소가 선봉에 선 입체주의를 혁신적 회화라 변호하고, 프랑스 미술의 정신적인 움직임을 메칭거, 포코니에, 글레이즈, 레제, 들로네, 루오, 마티스, 뒤샹을 중심으로 언급한다. 괴테 (Goethe)의 인용문은, 음악과 달리 회화에서는 검증을 거쳐 두루 통용되는 보편 법칙이 결 여되어 있다고 말한다. 러시아 출신의 작곡가 토마스 폰 하르트만(Th. von Hartmann)의 「음악에서의 무정부상태 에 대하여」는 음악에서 외적인 법칙은 존재하지 않으며, 내면의 소리에 거역하지 않고 내 적 필연성에 따른 모든 작품은 본질적으로 아름답다는 주장을 펼친다. 에르빈 폰 부세(E. von Busse)의 「로베르 들로네의 콤포지션의 수단」은 예외적으로 미술사가가 쓴 글로, 들 로네의 수수께끼 같은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화가의 구성법을 분석해서 보여주고 있다. 칸 딘스키의 「오이겐 칼러 (추도문)」는 칼러를 화가, 시인으로서 추모하고 있다. 레오니드 사 바네예프(L. Sabaneev)의 「스크랴빈의 「프로메테우스」」는 색과 음의 관계를 다루면서 음악과 회화가 통합된 총체예술을 보여준다. 니콜라이 쿨빈(N. Kulbin)의 「자유음악」은 기존의 조성(調性)을 벗어나 확대된 음악적 표현력을 ‘자유음악’이라는 개념을 통해 추구 한다. 칸딘스키는 「형식의 문제에 관하여」에서 형식 문제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에 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고 여러 상이한 형식들이 공존하는데, 중요한 것은 형식 즉 물질이 아니라 내용 즉 정신이라 역설한다. 내적 필연성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칸딘스키 자신의 ‘추상성’과 루소와 아동화의 ‘사실성’은 결국 동등하다는 것이다. 러시아 작가 바실리 로자노프(V. Rozanov)의 「이탈리아의 인상들」에서 발췌한 내용은, 고대예술은 현대예술과 는 달리 비심리적이며 수와 치수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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