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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의 사유

르 코르뷔지에의 사유

르 코르뷔지에 / 정진국 (옮긴이)

열화당·2013-10-01

  • 예술
  • KDC 6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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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옮긴이의 말 “전해지는 것은 사유뿐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그 끝을 알지 못한 채 현기증처럼 아득하게 사라지는 삶을 사는 동안 서서히 내 머릿속에서 자라났고 만들어졌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것일까. 그는 삶의 끝을 생각하면서 이 마지막 문장을 썼을지도 모른다. 글을 쓰고 몇 주 뒤, 그는 휴가 때면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이 설계한 프랑스 남부 카프 마르탱의 여름 별장 오두막집에 들렀다. 평소처럼 수영을 즐기던 르 코르뷔지에는 1965년 8월 27일 심장마비로 칠십칠 세의 생을 마감하며 지중해의 품으로 영원히 돌아갔다. 그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양의 작업을 하였고 후학들을 위해 모든 걸 자료로 남겼다. 사십 권의 저서(작품집을 포함하면 두 배에 달한다), 수백 편의 논문, 삼만이천 점의 도면, 사백 점의 회화, 칠천 점의 데생, 이 외에 조각, 크로키, 판화, 가구, 카펫 등의 작품이 르 코르뷔지에 재단에 소장되어 있다. 그를 화가로도, 조각가로도, 시인으로도 부를 수 있으나, 장례식에서 프랑스 정부를 대표해서 연설한 앙드레 말로(Andr? Malraux)가 확인해 준 것처럼, 건축가로서 투쟁적 삶을 살았던 그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자신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변화를 멈추지 않았다. 또한 그는 자신의 생각을 체계화할 줄 알았고 그래야 한다고 믿었기에, 르네상스의 대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중단 없는 이론적 성찰을 통해서 건축을 인간과 현실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도약하도록 만들었다. 그가 남긴 예술, 기술, 과학, 인문학, 사회학 등에 관련된 자료들은 전 세계의 건축가와 연구자들의 관심의 대상인 동시에 영감의 원천이고, 앞으로도 중요한 지식의 성과들을 만들어낼 토대로 작용할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가 쓴 이 자그마한 책의 원고는 1965년 7월에 완성되었고, 포르스 비브 출판사의 장 프티에 의해 그 다음 해에 출간되었다. 1966년에는 또 다른 원고가 같은 출판사에서 책으로 만들어졌는데, 바로 그가 본문에서 밝힌 『동방여행』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무려 오십오 년의 시간 차를 가진 최초의 책과 최후의 책을 한꺼번에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1911년 건축 공부를 위해 지중해 연안과 동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기록한 원고를 다시 꺼내 들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십대 초반의 호기심 많은 젊은이의 음성이 『동방여행』을 통해서 생생하게 전해 온다. 특히 서양 문명의 발상지라고 불리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과 파르테논 신전은 그에게 무한한 감동을 선사했고, 이러한 감동은 일생 동안 그의 건축적 사고를 지탱하게 된다. 말하자면 새로운 시대의 건축, 즉 근대건축을 꿈꾸게 한 원동력 중의 하나가 이천 년 전의 고전(古典)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그는 건축이 정신과 진실의 문제라는 결론을 얻었고, 이러한 생각은 칠십대 후반의 나이까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반세기 넘게 이어져 온 일관된 생각, 즉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과는 “사고방식에서 조금도 차이가 없다”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가 바로 그의 마지막 글 「르 코르뷔지에의 사유」이다. 어느 의미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글쓰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생한 사고방식의 간격을 명료해지도록 가다듬어 나가는 과정인 셈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사유’의 프랑스어 제목은 미조포앵(Mise au point)이다. 우리말로는 맞추기, 고르기, 수습, 정리 정도가 되는데, 정신과 진실의 문제를 바로잡는다는 의미에서 제목을 ‘르 코르뷔지에의 사유’으로 번역하였다. 『조정』에는 복잡다단한 일화들이 시간적 순서와는 상관없이 나열되어 있다. 건축가로서의 자부심과 이론적 주장의 정당성을 말하고, 진정한 창조를 위한 건축 공부와 작업 태도에 관한 교훈을 말한다. 미국 뉴욕이나 남아메리카의 도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지는 당시의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희망과 실망이 있었고, 성공과 실패가 있었다. 찬사가 뒤따랐고, 비판이 뒤따랐다. 흔히 르 코르뷔지에의 생애를 전기와 후기로 나눈다. 두 시기의 작품들이 형태적으로 뚜렷이 구별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전기란 일차세계대전 이후 사부아 저택으로 대표되는 근대건축을 완성했던 시기로, 백색 상자의 기하학적 추상성을 강조한 형태의 작품들이 여기에 속한다. 후기란 이차세계대전 이후 위니테 다비타시옹, 찬디가르 행정 수도 등을 실현했던 시기로, 노출 콘크리트로 자유로운 표현성을 강조한 형태의 작품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르 코르뷔지에의 사유』은 이러한 구별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글 어디에도 형태적 변화를 암시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형태는 결과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굳이 변화를 말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감수성에 따른 인식의 변화이다. 그리고 이건 바로 인간에 관한 인식의 변화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르 코르뷔지에의 사유』에서 분명하게 말한다. “인간을 재발견해야 한다.” 말하자면 건축도 그에게는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 중의 하나였다. 그는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인식적 조건들을 탐색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기에 그의 노력이 ‘열린 손’처럼 세상의 화합과 평화를 염원하는 인류애의 수준으로 이어지게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인간은 그만의 관심 대상이 아닐 것이다. 예술을 포함한 학문 전체가 인간을 비켜 갈 수 없고, 건축가들도 오랫동안 형상, 비례, 지각, 무의식 등 수많은 주제들을 다루어 인간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런데 르 코르뷔지에가 인간을 말할 때 전제되는 용어가 있다. 바로 ‘사유’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사유』의 첫 문장을 그는 이렇게 썼다. “전해지는 것은 사유뿐이다.” 사유를 말할 때, 그는 합리적 사고를 하는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그리면서도, 그와 함께 “항구적이며 영원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그린다. 사유는 그러므로 인간으로서의 존재 이유를 넘어 시간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되는 생명력을 나타낸다. 생명력의 근거는, 사유가 철학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고부동의 상징이듯이,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정신과 진실을 보장한다는 데에 있다. 르 코르뷔지에는 사유하는 인간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건축의 생명력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건축은 그에게 모호하고 애매한 대상이 아니라 명확하고 분명한 대상이고, 불확실성의 문제가 아니라 확실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유가 없으면(혹은 아니면), 건축도 없다(혹은 아니다). 나는 르 코르뷔지에를 만났던 아주 특별한 개인적 경험이 있다. 광선과 색채와 형태와 재료가 어우러진 라투레트 수도원의 어느 곳에서 온몸이 전율하고 호흡조차 멈췄던 충격의 순간을 기억하며 지금도 그의 건축 주변을 맴돈다. 얼마 안 되는 분량인 데도 꽤 오래 붙잡고 있었다. 원고를 정성껏 다듬어 주신 편집실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또다시 르 코르뷔지에를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주신 이수정 기획실장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2013년 7월 정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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