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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면

점선면

차봉희 (옮긴이)

열화당·2008-04-10

  • 예술
  • KDC 6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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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소개의 말 이 책은 ‘바우하우스 총서(Bauhaus-BŸcher)’ 제9권으로, 1926년 뮌헨의 알베르트 랑엔 (Albert Langen)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총서는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와 모 홀리-나기(L‡szl— Moholy-Nagy)가 편집한 것이다. 1928년에는 이 책의 제2판이 출간되었 고, 1947년에는 힐라 폰 레베이(Hilla von Rebay)가 번역하여 뉴욕 비대상회화미술관 (Museum of Non-Objective Painting)에서 ‘Point and Line to Plane’이라는 제목으로 출 간된 바 있다. 책이 출간될 당시 칸딘스키가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이 저서는 베른 �O플리츠 (Bern-BŸmpliz)의 벤텔리(Benteli) 출판사에서 1952년 제4판으로 출간되었던 그의 또 다른 저서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ber das Geistige in der Kunst)』와 유기적인 연속성을 지니는 것이다. 바로 그 책의 출간 때에 썼던 나의 소개말은 본질적으로 이 책의 서문에도 똑같이 해당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몇 가지 구체적인 사항만을 언급하는 것으로 그치겠다.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가 이론적인 사고와 관련해서 씌어진 것이라면, 『점·선·면』은 주로 칸딘스키가 1922년부터 바우하우스에서 부여받은 과제에 근거하여 쓴 것이다. 그는 모스크바에서의 활동을 통해서 이 과제를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예술 아카데미의 교수와 성인들의 교육을 위한(소련에서 1946년까지) 인민회의 교육부 예술분과 의 회원으로서 칸딘스키는 1918년 예술문화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리고 1920년에는 모스크바 대학의 교수로 임명되었고, 1921년에는 예술학을 위한 아카데미를 창설하여 이 아카데미의 부원장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그는 그후 곧 러시아를 떠났다. 왜냐하면 문화 부문에 대한 러 시아 정부의 정책 방향이 자유로운 예술활동을 불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후 1922년 6월 그는 발터 그로피우스에 의해서 바이마르에 있는 국립 바우하우스의 교수로 초빙되었다. 『점·선·면』의 내용은 그 당시 칸딘스키가 바우하우스에서 학생들에게 줄곧 강의해 온 이론의 대부분을 요약한 것이다. 이 책은 ‘회화적인 요소의 분석을 위하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이 부제는 보다 폭넓게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내용은 여러 면에 서 회화적인 영역을 훨씬 넘어서 있으며, 형태의 기본요소에 관한 강의에서 칸딘스키가 직 접 강의했던 형태화(Gestaltung) 일반에 관한 문제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1925년 마이스터들이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를 폐쇄하고 데사우(Dessau)로 이전하기로 결 정했을 때, 칸딘스키도 행동을 같이하여 데사우의 바우하우스에서 활동을 계속했다. 그의 육 십 세 생일과 『점·선·면』의 출간, 그리고 발터 그로피우스가 설계한 바우하우스 새 건 물의 개관, 이 세 가지가 같은 해에 이루어졌다. 이 데사우 시대에 칸딘스키는 줄곧 교장 대 리직을 맡았고, 발터 그로피우스가 물러나자 한네스 마이어(Hannes Meyer)에게로 관리권이 넘어갔으며, 그후 다시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헤(Ludwig Mi‘s van der Rohe)에게로 넘 어갔을 때에도 그는 이 직책을 계속해서 맡았다. 1933년 데사우의 바우하우스는 나치 정부 에 의해 문을 닫게 되었지만, 그후 미스 반 데어 로헤에 의해 1933년까지 베를린에서 사립 학교로 존속했다. 이 최후의 시기에도 칸딘스키는 바우하우스에서 활동하던 초창기 시절과 변함없이 계속 영향력있는 위치에서 활동했다. 베를린의 학교가 문을 닫게 된 직후, 칸딘스 키는 파리로 이주했다. 『점·선·면』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대체로 십 년 동안 바우하 우스에서 가르친 기초이론의 강의와, 그가 지도했던 자유화(自由畵)를 연구하는 마이스터 아 틀리에인 ‘자유화 학급(freien Malklasse)’에서 강의했던 내용이 기본 바탕을 이루고 있 다. 칸딘스키가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와 『점·선·면』 이 두 저서를 쓰는 동안과 1926년 이래 썼던 논문들은, 『칸딘스키: 예술과 예술가에 관한 에세이(Kandinsky: Essays Ÿber Kunst und Kunstler)』(벤텔리 출판사, 제2판, 1963)라는 평론집에 수록되어 있다. 특히 오늘날 우리에게 특별한 가치를 느끼게 하는 점은, 이 획기적인 이론들이 이 분야를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자료로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체예술(具體藝術, die konkrete Kunst)은, 그 범위에서는 눈에 띌 만큼 크게 신장했지만 그 깊이에서는 별다 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여기엔, 구체예술이 발생 당시처럼 그 존재와 표현 가능성으로서 의 인정을 얻기 위해서 투쟁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사실과, 또한 수많은 젊은 화가들이 기초적인 철저한 준비도 없이 호응해 왔다는 사실에 그 부분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다 시 말하면, 이 새로운 유형의 예술의 내적인 구조, 정신과 이념 등을 인식하지 않은 채 오직 외적인 형식요소들만을 근거로 하여 인식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회화의 세계를 탐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으로서는, 위대한 예술가이며 사상가인 사람이 자 신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쓴 저서보다 더 나은 것은 없을 것이다. 취리히와 울름에서 1955년 1월 막스 빌(Max Bill) 이 책의 제4판에 즈음하여, 오늘날 우리 시대의 회화에 미친 칸딘스키의 영향이 눈에 띄게 커졌다는 사실을 여기에 언급해 두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 책에서 거듭 언급되고 있는 칸딘스키 자신의 이론들이 뜻하는 의미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이러한 영향은, 칸딘스키가 대상적인 형태로부터 색채의 해방을 불러일으켰던 그의 초창기 낭만적 표현파적 시대의, 다시 말해 그가 새로운 구조화(Neu-Strukturierung)를 창조하기 이전의 작품들에서 온 것이다. 한편 소위 ‘앵포르멜 회화(informelle Malerei)’의 대표자들은 칸딘스키가 시도 했던 색채의 해방이 조형예술적인 수단의 새로운, 자율적인 구조화와 정리작업을 위한 출발 점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앵포르멜 회화’는 회화의 발전을 위해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취리히에서 1959년 막스 빌 내가 편집한 칸딘스키의 평론집 『칸딘스키: 예술과 예술가에 관한 에세이』는 제2판이 1963년 벤텔리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칸딘스키가 쓴 서른네 편의 논문들이 수 록되어 있으며, 이로써 그때까지 출간된 그의 글들이 이 출판사에서 하나의 포괄적인 삼부 작으로 보완되었다. 취리히에서 1963년 11월 막스 빌 1926년 제1판 서문 이 조그만 책에 언급되어 있는 사상들이 나의 글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와 유기적인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해 두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 아닐 것이다. 나 는 일단 시작한 이상 그 방향으로 계속해 나갈 수밖에 없다.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던 당초에 보덴호(湖)의 골다흐(Goldach)에서 삼 개월을 지내는 동안, 나는 그 당시에 아직 확정되지 않은 이론적인 사고와 실제적인 경험 등을 체계화하는 데만 거의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하여 아주 광범위한 이론적인 자료가 완성되었다. 거의 십 년 동안 이 자료에 손대지 못한 채 지내다가, 최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다시 검토 해 볼 여유를 얻게 되었으니, 이 책은 그 결과 태어난 하나의 시론(試論)인 셈이다. 예술학은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하므로 의식적으로 연구 주제를 좁혔지만, 이것은 철저 하게 논급하는 동안에 회화의 한계를 넘어 결국에는 예술 일반에 관한 한계마저도 벗어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여기선 다만 몇 가지 지침, 즉 종합적인 가치를 고려한 분석적인 방법 을 제시해 보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바이마르 1923년 데사우 1926년 칸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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