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태어난 이후 진정한 인생이 시작되는 시점까지 ‘소리 없이 이루어지는 은밀한 준비 과정’보다 더 신비스러운 것은 없다. 사람은 열두 살이 되기 전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 그러나 아기 예수와 성면聖面의 데레사 성녀의 경우에는 1897년 9월 30일, 그녀가 24세 9개월의 나이에 리지외의 가르멜 수녀원 병실에서 폐결핵으로 숨을 거두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인생이 시작되었다. 동시대의 프랑스 작가 샤를 페기는 “한 인간의 운명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의 토양, 시대, 출신 가문에 의해 결정되며, 조상들과 출신 고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과 그 역사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아무도 외딴 섬처럼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 데레사도 천사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 아니었다. 노르망디 땅에서 태어난 데레사는 조상이나 고향 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온 세상이 리지외의 데레사 성녀를 기리고 찬양하게 되기 훨씬 전에, 프랑스의 알랑송이라는 작은 도시에 데레사 마르탱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살고 있었다. 데레사 역시 ‘소리 없이 이루어지는 은밀한 준비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아이였다. 부모 중 한 분이라도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따라갔다면,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성녀’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데레사의 아버지인 루이 마르탱은 1823년 8월 22일 보르도 지역의 군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아비뇽, 스트라스부르 등 군부대의 주둔지를 전전하는 생활을 하면서, 마르탱은 저절로 군인 가족의 생활에 익숙해졌고, 영화로웠던 나폴레옹 시대에 대한 기억과 향수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부친은 나폴레옹의 백일천하 때 국왕의 군대에 소속되어 있었고, 왕정복고 시대에는 장교로 복무하다가 1830년 퇴역하여 알랑송에 정착했다. 루이 마르탱은 성격이 꼼꼼하고 논리적이며 혼자서 사색하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인내심과 꼼꼼함을 요구하는 시계공이 되고 싶어 했고, 어려서부터 그 기술을 배웠다. 그러다 22세가 되었을 때 더 고독한 삶을 꿈꾸게 되었다. 그는 수도자가 되려고 성 베르나르도 수도원을 찾아갔으나, 라틴어를 배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 후 파리에 잠시 머무르다가 알랑송으로 돌아와 시계공으로 살아갔다. 부모님과 함께 퐁뇌프 거리에 거주하는 8년 동안, 일, 기도, 독서, 낚시(그의 유일한 취미였다.), 성당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교제, 이런 것들을 하며 수도자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했다. 오른 지방의 중심 도시인 알랑송은 그 당시 13,600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작은 지방 도시로, 고요하고 평온한 삶을 좋아하는 젊은이가 지내기에 더없이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그곳은 특산물로 알랑송 레이스가 유명했는데, 이는 프랑스 전 지역뿐만 아니라 쇠퇴해 가던 프랑스 제국을 요란스러운 사치로 은폐하려던 파리의 상류 사회에서 특히 인기가 많았다. 데레사의 어머니 젤리 게랭은 1831년 12월 23일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바그람 전투에 참여한 적이 있고, 헌병대에서 복무하다가 은퇴했기 때문에 군인 가족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젤리 게랭의 아버지는 1844년에 은퇴하여 알랑송 시내에 있는 도청 청사 맞은편의 생블레즈 거리 36번지에 정착했다. 형제들 중 유독 자신에게만 냉정하게 대하는 어머니와 엄격한 아버지 아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젤리 게랭은 언젠가 남동생에게 이런 글을 써 보냈다. “나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은 마치 수의처럼 어둡고 우울했단다. 어머니는 널 무척이나 예뻐하셨지만, 나에겐 너무 엄하셨어. 어머니는 좋은 분이셨지만, 나를 따뜻이 감싸 주지는 못하셨지. 그 때문에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받았는지 모른단다.” 어머니는 약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던 남동생 이지도르와, 젤리 게랭의 언니이며 젤리 게랭과는 친구처럼 각별한 사이였던 엘리즈에게 사랑을 쏟아 부었던 것이다. 젤리 게랭은 평생 이 두 형제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녀가 쓴 편지들을 읽어보면, 걱정이 많고 우울한 듯하면서도 생기발랄한 성격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녀는 일에 대한 열성, 굳건한 신앙심, 밝고 긍정적인 사고, 유머 감각까지 갖추었다. 루이 마르탱과 마찬가지로 젤리 게랭도 한때 수도자의 삶을 꿈꾸었다. 그녀는 알랑송에 있는 오텔디외 수녀원을 찾아갔지만 거절당했다. 그 후 알랑송 레이스 직조 기술을 배워, 언니의 도움을 받아 시내에 가게를 냈다. 기술이 뛰어났고 열심히 일한 덕분에 사업은 크게 번창했다. 수도자 생활을 꿈꾸었으나 거절당한 두 사람, 35세의 시계공과 27세의 레이스 직공은 만나게 되었고, 짧은 약혼 기간을 거쳐 1858년 7월 13일 알랑송의 노트르담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퐁뇌프 거리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지만, 처음 열 달 동안은 오누이처럼 지냈다(루이 마르탱이 먼저 제안했고, 젤리 게랭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다 고해 신부의 충고를 듣고 부부는 생각을 바꿨고, 1860년부터 1873년까지 이 가정에서 아홉 명의 아이가 연이어 태어났다. “난 아이들이 너무 좋아요. 아이를 낳으려고 세상에 태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말이에요. 하지만 이제 곧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겠죠. 이번 달 23일에는 마흔 한 살이 되니까요. 이제는 할머니 소리를 들을 나이죠!” 막내인 데레사가 태어나기 일 년 전쯤 젤리 게랭이 쓴 글이다. 그러나 아홉 아이 중에 다섯 명의 딸아이만 살아남았다. 당시에는 영아나 어린이 사망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건강이 좋지 않았던 마르탱 부인이 1876년에 유방암 불치 판정을 받았고, 망설임 끝에 아이들을 유모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15년 동안, 이 가정에서는 아이가 출생하고 사망하는 일이 되풀이됐다. 사내아이 둘, 여자아이 둘이 그들의 곁을 떠나는 것을 가족들은 지켜봐야 했다. 그 중에는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던 다섯 살짜리 엘렌도 있었다. 이에 대해 마르탱 부인은 이렇게 썼다. “그 아이를 떠나보낸 뒤로 그 애가 너무나도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답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아이들에게는 아직도 내가 필요해요. 그 아이들 때문에 저는 하느님께 몇 년이라도 더 이 세상에 머무르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내 곁을 떠나간 두 사내아이도 많이 그립지만, 엘렌을 잃은 슬픔이 더욱 큰 것 같아요.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아이, 나이에 비해 조숙하고 영리했던 아이였어요. 요즘도 그 아이 생각이 한 순간도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네요.” ‘1870년 전쟁’이 터지고 그로 인해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프로이센 병사 아홉 명이 이 집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밤잠을 잊고 부지런히 일한 부부의 노력으로 사업은 점점 더 번창했으며 마르탱 가족은 어느덧 작은 지방 도시의 중산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마르탱 씨는 시계공 일을 그만두고 아내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 시기에 생블레즈 거리로 이사를 했는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찾는 데레사 성녀의 집이 바로 이곳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마르탱 부부는 가족의 행복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가족 모두가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큰딸 마리, 늘 발랄하고 쾌활하며 어머니와 가장 친하고 어머니에게 믿을 만한 말 상대가 되어 주던 둘째 딸 폴린, 이 둘은 르망에 있는 성모 방문 수녀회의 기숙 학교로 떠난다. 두 아이는 이모인 도지테 수녀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으며 행복한 학교생활을 했다. 이모는 아이들의 행동이나 학교 성적에 관한 소식을 집으로 전하곤 했다. 방학을 맞아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온 집안이 축제 분위기가 되었고, 방학이 끝나 학교로 돌아가는 날에는 집안이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다. 별다른 재능이 없고 자주 잔병치레를 했던 ‘가엾은 레오니’가 어머니의 유일한 걱정거리였다. 데레사 바로 위의 언니 셀린은 씩씩하고 ‘당찬’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데레사와 가장 각별한 사이였던 셀린은 데레사에게 평생 친구 같은 언니였다. 가끔씩 노르망디의 시골 마을로 소풍을 가고, 가까운 시골 마을 스말레로 떠나 유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기도 하고, 리지외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외삼촌 가족을 찾아가고, 기차를 타고 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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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추천의 말 • 5 머리말 • 13 데레사의 가족 관계 • 26 차례 • 30 제 1부 예수의 아녜스 원장 수녀에게 보낸 글 제1장 알랑송 (1873~1877) 하느님께서 더 좋아하시는 것들 • 45 하느님의 자비심 • 47 엄마의 편지 • 51 언니들 • 55 사랑하는 셀린 언니 • 58 나의 성격 • 61 나는 모두 선택한다 • 68 장난꾸러기들 • 71 이 세상 모든 것이 내게 미소를 지었다 • 72 제2장 뷔소네, 우리 집 (1877~1881) 엄마의 죽음 • 76 폴린 언니가 내 엄마가 되다 • 79 리지외, 나의 학교 • 81 아빠의 사랑 • 83 성모 성월 • 87 첫 고해 • 91 축일과 주일 • 93 따뜻하지만 엄격한 교육 • 97 예언적 환시 • 101 베일에 가린 얼굴 • 103 트루빌 • 106 금빛 물이랑 • 107 제3장 고통스러운 세월 (1881-1883) 기숙 학교 시절 • 110 놀이 • 112 잘 우는 아이 • 115 셀린 언니의 첫영성체 • 118 폴린 언니가 집을 떠나다 • 120 이상한 병 • 126 폴린 언니의 착복식 • 129 외삼촌과 외숙모 • 133 동정 마리아께서 내게 미소 지으시다 • 135 내가 겪은 괴로움 • 139 제4장 첫영성체 - 기숙 학교에서 (1883~1886) 성화와 독서 • 144 큰 성녀가 된다는 것 • 145 사랑의 행동 • 147 피정 • 152 사랑의 결합 • 156 성모님께 봉헌하다 • 158 고통에 대한 열망 • 161 견진성사 • 162 꼬마 박사 • 165 용한 의사의 비유 • 167 세심증 • 171 파피노 부인 • 172 마리아의 자녀 • 175 트루빌에서의 휴가 • 179 내 방 풍경 • 181 마리 언니가 가르멜에 들어가다 • 187 제5장 크리스마스의 은총 이후 (1886~1887) 장군의 걸음 • 190 크리스마스의 은총 • 192 프랑지니, 나의 첫아이 • 195 《준주성범》과 아르맹종 신부 강론집 • 198 망루에서 • 203 다급한 부르심 • 206 내 임금님의 작은 꽃 • 210 외삼촌의 반대 • 213 기적이 일어나다 • 216 가르멜 총장 신부님의 반대 • 219 주교님을 찾아가다 • 224 바이외에서 • 226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 232 제6장 로마로 떠나다 (1887) 내 소명을 깨달았다 • 234 파리 • 238 스위스 • 242 밀라노 • 244 베네치아, 볼로냐 • 246 로레토 • 249 콜로세움 • 251 카타콤바 • 254 바티칸에서 • 256 교황님의 발치에서 • 259 작은 장난감 • 263 아시시 • 267 피렌체 • 270 프랑스로 돌아오다 • 273 작은 공 • 276 세 달 동안의 기다림 • 277 제7장 가르멜 수녀원에서 생활을 시작하다 (1888-1890) 소원을 이루다 • 281 피숑 신부님에게 고해하다 • 285 거룩한 얼굴 • 290 나의 착복식 • 293 나의 임금님의 승리 • 296 아빠의 병환 • 297 고통과 멸시 • 298 작은 덕행들 • 300 결혼 예복 • 304 제8장 서원은 사랑의 봉헌 행위입니다 (1890-1895) 서원식 • 309 베일의 착용 • 312 즈느비에브 수녀님 • 314 유행성 독감 • 319 알렉시스 신부님의 피정 • 323 폴린 언니가 원장 수녀님이 되다 • 325 아빠의 죽음 • 331 셀린 언니가 가르멜에 입회하다 • 332 1895년 6월 9일 • 336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까 • 339 문장에 대한 설명 • 340 제2부 성심의 마리아 수녀에게 보낸 편지 제1장 나의 소명: 사랑 (1896) 예수님의 비밀 • 348 5월 10일에 꾼 꿈, 예수의 안나 원장 수녀님 • 354 모든 성소 • 358 어린아이처럼 • 359 교회의 심장에서 • 361 꽃을 던지다 • 365 작은 새 • 369 하늘의 독수리 • 372 제3부 곤자가의 마리아 원장 수녀에게 보낸 글 제1장 신심의 시련 (1897) 데레사와 원장 수녀님 • 379 작은 꽃 • 382 승강기 • 384 수련자들을 담당하는 책임자가 되다 • 387 첫 번째 각혈 • 389 고해석 • 391 캄캄한 어둠 • 394 나는 싸움을 거부하지 않는다 • 400 소명으로의 부르심 • 402 애덕이라는 것 • 408 예수님처럼 사랑하기 • 411 나의 가장 사랑스러운 미소 • 415 나의 마지막 방법: 도망 • 417 드리세요. 그리고 사로잡히세요 • 420 모든 권리를 포기하다 • 422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내준다는 것 • 427 제2장 여러분이 내게 주신 것들 (1896~1897) 하늘나라의 재산 • 431 작은 붓 • 435 진정한 사랑 • 436 감시자처럼 • 441 내 무적의 무기 • 444 기도 • 447 설탕과 식초 • 452 불완전한 영혼들 • 455 성 베드로 수녀 • 459 고통의 기도문 • 463 나의 첫 번째 형제 • 466 순명으로 글을 쓰다 • 470 두 번째 선교 사제 • 471 오, 예수님, 당신의 말씀들 • 474 저를 이끌어 주소서. 달려가겠습니다 • 478 믿음과 사랑으로 • 482 맺음말 • 484 부록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가 서원식 날 품에 지니고 있던 글 • 510 인자하신 사랑에 바치는 봉헌 기도 • 512 성심의 마리아 수녀가 데레사에게 보낸 편지 • 517 데레사가 성심의 마리아 수녀에게 보낸 편지 • 520 사랑 속에서 죽은 회개한 여인의 이야기 • 524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연표 • 528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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