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머리말 조금씩 펼쳐지는 신비 어머니는 잠시 사진을 쳐다보다가 얼른 고개를 돌렸습니다. 주름진 두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저는 어머니 쪽으로 몸을 기울였고, 어머니는 천천히 제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어머니는 독실한 유다인으로서, 가톨릭 사제를 아들로 둔 것이 얼마나 큰 신비인지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한 해 전인 1973년 늦은 여름의 일이었습니다. 요하네스버그 북부의 교외 지구인 파크타운 노스에 위치한 어머니 집 거실에 함께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늘 좋아하던 난로 앞 안락의자에, 저는 가까운 소파에 앉아 있었습니다. 벽에는 갓 사제품을 받은 제가 수단을 입고 금색 무늬가 새겨진 성경을 든 모습의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제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내보라고 권했습니다. 유다교와 가톨릭 신자 모두가 제 삶을 분명 독특하게 여기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슬프게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것은 제 신앙에 대해 계속 간직하고 있던 내적 갈등의 표지였습니다. 생전에 누구에게도 자신의 바람을 말한 적이 없던 어머니는 결국 저를 설득하길 포기했지만, 우리가 함께 앉아 있던 그 순간이 씨앗을 뿌린 셈이었습니다. 제 생애를 기록으로 남기라고 권한 사람은 어머니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세인트 빈센트 농학교를 떠난 뒤에도 오랫동안 연락하고 지낸 친절한 교장 토마시아 수녀님 역시 이따금 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전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수녀님은 프리토리아의 신학교에서 제가 힘겹게 성장해 가는 것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습니다. 그 신학교에서 사제 교육을 받는 최초의 청각 장애인으로서 저는 혼자 공부할 수 있도록, 그리고 저만의 배움의 길을 찾도록 허락받았습니다. 그곳에서의 제 체험에 관한 글들을 쓴 수녀님은 뒤에 제게 그 글을 발판 삼아 좀 더 내용이 충실한 글을 써 보라고 권했습니다. 여러 해 뒤, 제가 요하네스버그 지역에서 사목하던 1985년에 그 글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남달리 성실하고 헌신적이었던 아일랜드 도미니코회의 마네스 수녀님으로, 당시 제 개인 비서였습니다. 그 글을 찾은 수녀님은 제 활동을 다룬 신문 기사와 기록을 몰래 모았습니다. 1995년에 그분이 세상을 떠난 후 그 글 모음을 찾을 수 없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기사들과 사건들을 제 기억 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제 생애와 활동의 흔적들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것에 감동한 저는 제 이야기를 해 보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처음에는 젊은 시절의 제가 경험한 영적 여정이 너무나 가슴 아팠기 때문이었고, 나중에는 사십대의 청각 장애인 사내가 시력마저 잃을 처지에 놓여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다시 제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한 것은 1996년, 세계에서 유일하게 청각 장애인만을 가르치는 대학교인 미국 워싱턴의 갤러뎃 대학교Gallaudet University에 중국인 청각 장애인 몇 사람을 인솔해 갔을 때였습니다. 저는 동료들이 리더십 교육을 받아 마카오의 자기들 공동체에 전하도록 돕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게 감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계획은 예기치 않은 일로 좌초되었습니다. 오른쪽 다리에 혈전증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의사들은 완치될 때까지 마카오로 돌아가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조언을 따르기로 하고 제가 소속된 구속주회Redemptorists에서 운영하는 구속주 대학Holy Redeemer College 내의 수도원에서 지냈습니다. 그 무렵, 제가 걸작으로 꼽는 《청각 장애인들의 유산: 이야기로 읽는 미국 농역사Deaf Heritage: A Narrative History of Deaf America》의 저자인 잭 개넌Jack Gannon 박사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제가 충분히 오래 기다렸다고, 이제 제 영혼에 뿌려진 씨앗들이 싹을 틔울 시간이라며 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한다고 저를 설득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요양 기간을 이용해 도서관의 조용한 지하실에서, 과거를 더듬고 옛 기억과 제 생각을 가다듬어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큰 도전이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책을 쓴다는 말입니까? 귀가 안 들리는 제가 영어로 글을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고, 제 시력이 타자기로 원고를 작성할 만큼 버텨 줄지도 의문이었습니다. 예전에 어머니가 언급했던 것처럼 전기 작가에게 맡길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어렵더라도 제가 직접 쓰고 싶었습니다. 잭 개넌이 책을 엮는 기초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한 당시 남아프리카를 잠시 떠나 갤러뎃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던 대부 로버트 시몬즈는 제가 마음의 제약을 이기고 쓰고자 하는 내면의 본능을 따르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는 영어에 도움이 필요하면 자신이 도와줄 것이고, 제가 시력을 완전히 잃으면 자신이 제 구술을 듣고 원고를 작성하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그 이후 눈이 완전히 멀었기 때문에 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 책을 쓸 수 없었을 것이고, 제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길 바랐던 어머니의 소망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난 3년 동안, 저와 수화에 능한 출판사 편집자와 제 안내 통역자는 촉각 수화tactile sign language와 지화finger spelling, 컴퓨터와 이메일에 쓰는 점자를 번갈아 이용해 가며 지칠 줄 모르고 작업했습니다. 거의 날마다 이메일을 교환하고 수없이 발품을 팔아야 하는 길고도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 이야기를 전부 다 했습니다. 제 인생은 조금씩 펼쳐지는 신비 같습니다. 어머니가 제 영혼에 뿌린 작은 씨앗들이 제가 살아오며 했던 여러 여정을 통해 자라났습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시기에,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경험한 신앙의 여정, 삶의 여정, 사목의 여정이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마음속에 저마다 독특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속적으로 제게 용기를 북돋아 준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기 위해, 그리고 제 마음을 풍요롭게 채워 주고 제게 용기를 주신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신뢰에 감사하기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진심으로 바라건대, 이 책이 교파와 종교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재미있고, 제 여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저마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며 자신만의 여정을 할 때 이 책에서 용기와 지혜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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