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책을 내면서 궁예가 세운 나라, 태봉은 24년간 존속하였다(895∼918년; 이 기간 동안 이름은 몇 차례 바뀌었지만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시대를 따라 이 나라의 이름을 일단 태봉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 태봉의 역사는 14년간 유지되었던 대한제국보다는 길지만(1897∼1910년), 견훤이 세운 후백제의 48년보다는 훨씬 짧다(889∼936년). 그나마 대한제국은 조선의 수백 년 된 역사적 정통을 고스란히 계승하였을 뿐 아니라 고종과 순종이라는 두 황제가 대를 이었고, 후백제 역시 견훤과 신검 부자가 대를 이어 통치하였다. 그러나 태봉은 궁예 당대로 멸망하고 말았다. 이러한 점에서 태봉은 한국 역사상 가장 단명하였던 국가라고 해도 좋다. 이처럼 단명하였던 나라 태봉과 그 나라의 국왕 궁예를 우리가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신라의 왕족 출신으로 중이 되었던 궁예는 891년에 북원(강원도 원주시)의 세력가였던 양길의 휘하에 들어가면서 정치적 야심을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하였다. 그 이듬해 양길의 군사 100여 명의 지원을 받아 주천(강원도 영월군) 등지의 공략에 나섰던 궁예는 894년에는 명주(강원도 강릉시)를 점령하면서 무리를 3,500명으로 키웠고, 그 이듬해인 895년에는 후고구려를 세우고 스스로 왕임을 선포하였다. 변방에서 공식적 활동을 시작한 뒤 불과 5년 만에 중앙의 역사무대 한 가운데에 우뚝 서게 된 것이다. 견훤은 889년에 후백제의 왕임을 자칭하였다고 하므로 궁예의 건국은 견훤보다는 6년 정도 뒤지지만, 전성기 때 궁예의 영역은 삼한 지역의 3분의 2에 미칠 정도로 선발국 후백제를 압도하기도 하였다. 한편 국왕이 된 뒤 궁예는 자신이 미륵불임을 자처하고, 그가 다스리는 나라를 미륵의 이상세계로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우리 역사상 정치적 군주가 자신을 부처라고 주장한 것은 궁예가 유일하고, 국왕을 신격화하면서 신정적 전제주의를 직접적으로 추구한 국가 역시 태봉이 유일하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무자비할 정도로 과감하였기 때문에 후대의 역사가들, 특히 유교적 이념에 충실하던 역사가들은 그를 ‘폭군’이라는 고정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말았다. 그러나 불만과 모순에 가득 찬 당대의 현실을 이상사회로 개혁하고자 애쓰던 그의 모습은 ‘정사正史’보다는 설화나 전설 속으로 녹아들어가 민중 속에서 그 생명력을 면면히 이어가게 되었다. 실제 궁예를 내쫓고 태봉을 멸망시킨 고려까지도, 이 나라의 이름이 말해주듯이 일정 부분 궁예와 태봉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하였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고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이 볼 때, 비록 짧은 기간 명멸하고 말았지만 궁예와 태봉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면으로 역사적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즉 궁예의 건국을 도우거나 지지한 세력은 누구였고, 태봉을 이끌어간 통치체제와 사상적 기반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으며, 정통 역사기록 이외에도 적지 않게 남아 있는 궁예와 관련된 각종 유적이나 민간전승들은 얼마만큼의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느냐는 문제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궁극적으로는 태봉이라는 국가가 한국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의의는 과연 무엇이냐는 점으로 귀착될 수 있다. 실상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관심이 있었다. 이 책의 부록으로 길게 제시한‘참고문헌 목록’이 그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도 이제 이 책을 새롭게 만든 이유는 궁예와 태봉에 관한 여러 문제를 단편적인 주제로서가 아니라 상호 종합적으로 연관을 지으면서 입체적으로 검토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책의 구성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즉 1부에서는 궁예세력의 형성과 건국, 몰락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주로 문헌자료에 의한 전통적인 역사연구의 방법으로 검토해보고, 2부에서는 불상이나 성곽 등과 같은 각종 유물과 유적, 민간설화와 아울러 문학이나 영상작품을 통하여 그려진 궁예의 자취와 모습을 분석하였다. 또 각각의 주제들을 다루면서 새로운 학설을 제시하기보다는 기왕의 연구성과를 세밀히 검토하고 충분히 섭렵하여 누구라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자 하였다. 다시 말해 이 책이 궁예와 태봉에 관한 최초의 충실한 개설서이자 앞으로의 본격적인 연구를 위한 종합입문서와 같은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이 책은 태봉 철원 정도 1100주년을 맞아 강원도 철원군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태봉국 역사문화유적 학술조사 연구용역보고서』(2006)를 토대로 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12명의 필자들은 이 책을 내면서 엮은이의 의도에 맞추어 여러 차례의 토의 과정을 거치면서 새롭게 원고를 다듬어 주었다. 이러한 노력에 대한 평가는 학계와 독자들이 내려주겠지만, 엮은이로서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협력해준 필자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또 보고서에 이어 이 책을 내도록 허락해준 철원군의 정호조 군수와 태봉국철원정도기념사업회에도 감사한다. 한편 한림대학교 대학원의 김태욱 씨의 헌신적인 노력이 아니었으면 이 책의 발간은 아마도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또 저마다 다른 필자들의 개성을 충분히 살리면서도 전체적인 조율을 이루어낸 일조각 편집부에도 역시 깊게 감사한다. 2008년 7월 엮은이 김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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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책을 내면서 5 머리말 10 1부 궁예와 태봉, 건국에서 몰락까지-역사와 정치 그리고 문화 1장 궁예의 세력 형성과 건국 19 출신 19 ┃ 출가와 승려 생활 21 ┃ 반란군 가담과 자립 24 ┃ 철원 진출과 도읍 설정 29 ┃ 송악 천도와 건국 33 2장 태봉의 중앙정치기구 37 마진 시기, 광평성체제의 성립과 호족연합정권 38 ┃ 태봉 시기, 광평성 체제의 변화와 신정적 전제주의 43 3장 태봉의 종교와 사상 56 궁예왕과 미륵신앙 57 ┃ 궁예왕과 유교적 정치이념 61 ┃ 궁예왕과 풍수도참설 68 4장 궁예정권의 영토확장과 영역변화 75 궁예의 초기 활동지역 76 ┃ 양길 휘하에서의 활동지역 79 ┃ 송악 도읍기의 영토확장 82 ┃ 마진 시기의 영토확장 83 ┃ 태봉 시기의 영역 85 5장 태봉의 대외관계 93 태봉 대외관계의 실상 94 ┃ 태봉 대외관계의 성격과 평가 104 6장 태봉의 정치적 지향과 유산 112 마진·태봉 시기 궁예의 정치적 지향 113 ┃ 왕건의 고려 건국과 궁예의 정치적 유산 120 2부 태봉의 자취를 찾아서-유물과 유적 그리고 전설 1장 철원 지역 성곽의 성격 133 철원 지역 성곽의 현황 134 ┃ 궁예와 철원 일대의 성곽 153 2장 철원 월하리 유적의 조사 결과와 성격 검토 161 월하리 유적의 위치와 주변 현황 162 ┃ 월하리 유적의 조사 내용 163 ┃ 월하리 유적 관련 문헌기록의 검토 177 3장 태봉 지역 불교미술에 대한 시고 184 태봉시대 불교미술의 성격 185 ┃ 태봉 지역의 불교조각 188 ┃ 중부 지역 불교조각의 새로운 요소와 그 의의 201 ┃ 태봉 이후의 불교조각, 궁예미륵 203 4장 전설에 나타난 궁예왕 210 문헌전설에 나타난 궁예왕 211 ┃ 구비전설에 나타난 궁예왕 214 5장 문학·영상작품에 그려진 궁예왕과 태봉 229 문학작품에 그려진 궁예왕과 태봉 230 ┃ 영상작품에 그려진 궁예왕과 태봉 236 맺음말 247 주 259 관련연표 277 참고문헌 281 찾아보기 295 이 책을 쓴 사람들 302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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