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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관계사

중한관계사

쑹청유 외 (지은이), 전홍석 (옮긴이)

일조각·2012-10-20

  • 역사
  • KDC 349.1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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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현대편 중한관계사 쑹청유 외 지음 전홍석 옮김 글쓴이 서문_ 중·한 양국, 적대국에서 우호국으로의 변천 50년 역사 회고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50여 년이 흘렀다. 1995년 세계 각국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반反파쇼전쟁 승리의 50주년을 기념하기까지 반세기의 전후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이 50년 역사의 중·한 관계사를 되돌아보면 ‘세사창상世事滄桑’과 ‘변화극렬變化劇烈’이라는 두 마디가 떠오른다. 중국과 한국은 대치에서 화해로, 화해에서 수교로 관계의 발전을 거듭하여 적대국에서 우호국으로의 변화를 겪었다. 역사는 인물과 사건의 동향, 변화, 발전의 궤적에 대한 기록이다. 전후 중·한 관계사 내지는 현대 중·한 관계사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현대 중·한 관계사의 발자취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지난 50년 동안 이루어진 중요한 인물의 활동과 사건의 역정을 추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근대 역사상 중국과 한국 두 나라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될 때까지 불타는 적개심으로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에 공동으로 대항하면서 두터운 우정을 맺었다. 그러나 일단 공동의 적이 타도되자 국제 반파쇼 진영이 분열되어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전시협력 체제를 대체했다. 중국 내에서도 국國·공共 양당이 서로 갈라져 물과 불처럼 서로 용납하지 못했고 ‘쌍십협정雙十協定’의 먹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장제스蔣介石는 내전을 일으켰다.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이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을 각각 점령함에 따라서 삼천리강산이 남북으로 갈라져 두 쪽이 되고 말았다. 또한 정치 파벌들이 곳곳에서 일어나 내부 분쟁이 끊이질 않았다. 그 혼란이 격화되어 불굴의 애국지사 김구金九가 불행히도 희생을 당하는 등 한반도의 통일은 더욱 복잡한 국면으로 치달았다. 그러던 중 남쪽에서는 1948년 8월 이승만李承晩을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大韓民國 정부가, 북쪽에서는 같은 해 9월 김일성金日成을 수상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이 수립되었다. 원래 미국과 소련이 분할, 점령했던 38도선이 마침내 군대가 지키는 강력한 국경선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중국에서는 1949년 10월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톈안먼天安門 성루城樓에서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의 탄생을 선포했고, 그해 12월 대륙에서 패배한 장제스가 타이완臺灣으로 철퇴撤退했다. 이로써 국·공 양당은 타이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지속적으로 대치하게 되었다. 냉전의 확대와 그에 따른 냉전 특유의 국제적 편 가르기 논리에 의해 중국과 한국은 동서의 적대 진영에 각기 분속分屬되어 상호 간 시비와 한계의 구별을 분명히 했다. 1950년 6월, 조선전쟁이 발발했다. 북측 군대는 서울을 점령하고 대구와 부산까지 밀고 들어가 한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그해 9월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가 한반도 중간 부분을 차단하는 전술로 미군을 지휘해 인천 상륙을 감행하자 전쟁 형세는 단번에 돌변했다. 미국과 한국의 군대는 대대적으로 반격하여 평양을 재빨리 점령하고 전쟁의 불길을 압록강까지 지폈다. 10월 마침내 중국이 항미원조抗美援朝(북한을 돕고 미국에 맞섬─옮긴이)를 위해 군대를 진군시켰다. 양측 군대는 5차례에 걸친 전역戰役의 격전을 치르며 38도선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중·조군은 미국 등 16개 국가로 조직된 연합국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한편 중국군과 한국군 사이에도 3년간의 혈전이 전개되었다. 지난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본 군국주의에 저항하던 우방이 이제 서로 반목하는 원수가 되었던 것이다. 전쟁의 상처는 극히 참담했다. 1953년 7월, ‘정전협정’이 체결되자 전쟁은 진압되었다. 하지만 이후 20여 년 동안 중·한 양국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불공대천의 원수로 여전히 대치를 지속했다. ‘정전협정’의 이행을 둘러싼 투쟁, 동중국해 해사海事 충돌, 한국의 베트남 파병, 일본과 한국의 국교 정상화, 동중국해 대륙붕 개발, 이승만과 박정희朴正熙의 한국 내 민주 인사에 대한 탄압 등의 사태는 모두 양국이 말이나 글을 통해 공방전을 벌이는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 동북아 정세의 변화는 중·한 관계의 전기轉機를 마련해주었다. 1972년 2월에서 7월까지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의 중국 방문, 중·일 외교 관계의 회복, 한반도 남북대화의 개시와 같은 큰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한국은 남방 ‘해양 외교’와 서로 호응하는 북방 ‘대륙 외교’라는 새로운 방침을 추진하면서 대중對中 관계 개선에 주력했다. 1979년 중·한 양국은 홍콩을 통한 간접무역을 시작했다. 1978년 중국은 10년간의 동란과 2년간의 방황(문화혁명과 화궈펑華國鋒의 양개범시론兩個凡是論―옮긴이)을 마무리하고 대규모의 경제 건설과 개혁개방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마오쩌둥의 결정과 지시는 모든 것이 옳다는 ‘양개범시론’을 폐기하고 중국특색사회주의의 청사진을 그렸다. 한국은 박정희 집권 시기에 이미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룩해 동아시아 신흥공업국가와 지역 공동체 반열에 올라 동중국해를 뛰어넘는 한 마리의 용으로 부상했다. 중국 통치 방침의 전환과 경제 건설의 세찬 물결은 외자와 선진 기술의 도입을 절실히 요구함은 물론 중국 시장의 문호를 활짝 열었다. 한국은 당시 산업 전환 시기에 진입해 있었기 때문에 해외에 노동 밀집형 산업을 이전할 수 있는 여력을 보유했고, 하이테크hightech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신규 시장과 활동 영역을 개척할 필요가 있었다. 이처럼 두 나라의 강력한 경제적 상보성相補性은 양국이 대립을 해소하고 외교 관계를 수립할 수 있는 거대한 가능성을 조성했다. 또한 세계 정세의 변화, 특히 중국과 미국이 가까워짐에 따라서 소련의 기세등등한 공세에 대처해 객관적으로 중·미·일이 호응하는 전략적 삼각관계가 형성되었다. 한반도의 남북 양측이 점차 자주평화통일로 나아가는 추세가 날로 분명해지는 것도 중·한 양국의 화해와 수교를 위한 국제환경을 마련했다. 이런 흐름은 현실적으로 양국 외교 관계의 가능성을 가속화했을 뿐만 아니라 그 전망을 밝게 만들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우발적인 사건, 오히려 악재나 비극적이라고 할 만한 사건들이 뜻하지 않은 작용을 하게 되었다. 1983년 5월, 중국 민항기가 한국으로 나포되어 중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같은 달 중국 민항국장 선투沈圖가 이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비행기로 서울을 방문해 예절 바른 환대를 받았다. 그는 한국을 방문한 첫 번째 정부 측 인사가 되었다. 양측은 항공기 납치 사건 처리에 대한 비망록에 조인했다. 그해 9월 1일, 항공 노선을 일탈한 대한항공 여객기 한 대가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어 승무원과 260여 명의 탑승객이 전원 사망하는 재난을 당했다. 9월 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담화를 발표해 이 참사에 대한 놀라움과 유감을 표시했으며 중국 여론도 희생자들에게 선의와 동정이 넘치는 보도를 아끼지 않았다. 마땅히 항공기 납치와 항공기 격추 사건의 장본인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문책과 질책이 가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한 양국이 아직 정상적인 외교 관계도 맺지 못한 특수한 상황 속에서 도리어 이 두 사건의 처리 과정을 통해서 양국 관계는 해빙을 향한 최초의 메시지를 은연중에 드러내게 되었다. 그 밖에도 일본 군국주의를 비판하고 일본 문부성의 역사 교과서 왜곡을 규탄하는 과정에서 양국의 인사들은 많은 공감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양국 정부의 외교 활동에서도 자연스럽게 서로 간의 보조를 맞출 수 있었다. 오랜 추위 끝에 잠시 날씨가 온화해지기는 했지만 진정한 봄날이 대지에 찾아들고 얼음과 눈이 녹아내리기까지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983년 8월, 한국 측에서 민항기 납치범을 서둘러 석방하고 범죄자의 타이완행을 승인한 행위는 중국 측의 강력한 불만과 엄정한 항의를 불러왔다. 중국 신문 지상에 실린 한국 관련 기사는 여전히 학생들의 반정부 투쟁, 대규모의 노동운동이나 내각 개편을 비난하는 등의 소식들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교과서에서는 여전히 중국은 ‘적대 국가’로 분류되었다. 그렇지만 양국의 냉각되고 단절된 국면을 타개하고 중·한 관계 정상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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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글쓴이 서문 ─ 중·한 양국, 적대국에서 우호국으로의 변천 50년 역사 회고 / 5 옮긴이 서문 / 21 제1부___ 풍운의 조화 29 1장 광복 초기의 흥분과 희망 / 31 2장 강대국의 개입과 한반도의 남북 분단 / 47 3장 신중국의 외교 방침과 동북아시아 양대 진영의 대치 / 63 제2부___ 대치 시대 75 1장 3년간의 혈전 / 77 2장 바다를 낀 대치 시대의 설전 / 97 3장 1950∼1960년대 중·한 대치의 국제요인 / 126 제3부___ 전환점 137 1장 1970년대 초반 국제 정세의 변화와 한국의 대응 / 139 2장 한반도 정세의 새로운 동향―남북대화의 시작 / 150 3장 한국 경제의 비약과 중ㆍ한 정부의 정책 조정 추세 / 165 제4부___ 최초의 접촉 183 1장 중·한 접촉을 촉진한 환경과 조건 / 185 2장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 속에서 공감대 발견 / 196 3장 우발적인 사건이 뜻밖의 계기가 되다― 최초 중·한 정부 측 대표의 긍정적인 접촉 / 213 제5부___ 교류 경로의 확대 231 1장 중·한 경제개발 전략의 상호 선택 / 233 2장 중·한 경제무역 협력 관계의 급속한 발전 / 246 3장 체육경기와 국민교류의 붐 / 259 4장 문화교류의 유대를 만든 사람들 / 267 제6부___ 중·한 국교 수립 281 1장 남북 고위급 회담과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 283 2장 수교협상 / 294 3장 중·한 수교 / 304 4장 중·한 수교 의미의 구현―한반도 핵 위기 해소의 전후 사정 / 315 제7부___ 쌍무 관계의 획기적인 발전 329 1장 경제무역 관계의 급속한 발전 / 331 2장 전방위적 문화교류와 협력 / 344 3장 정부와 민간 차원의 상호 빈번한 방문 / 353 맺음말___ 21세기 동북아 국제구도와 중·한 관계 369 미주 / 385 주요 연표 / 399 참고문헌 / 429 후기 / 431 용어_찾아보기 / 433 인명_찾아보기 / 443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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