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사막의 여왕이 재물을 가득 실은 대 상隊商을 거느리고 북쪽으로 떠나 한 왕과 그가 섬기는 유일신에 게 조공을 바쳤다는 이야기. 여왕이 왕에게 정복당한 후 그에게 받 은 선물을 잔뜩 싣고 자기 나라로 돌아간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믿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거짓? 진실은 이야기꾼이 지어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재물 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값진 것이었고, 비밀은 더 충격적이었 다. 사랑과 배신 모두 더 격정적이고 더 파괴적이었다. 사랑…. 그것은 황량한 사막의 태양 아래 쪼그라든 껍데기 같은 단어. 그 진액은 모래 사이로 다 빠져나간 지 오래다. 여왕이 다녀 간 황량한 길을 다니는 이들에게 내 이야기도 그와 같을 테고, 거 기 찍혔던 내 발자국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 같으리라. 산들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다나 와디의 물도 내 이야기는 하지 않고 비옥한 주변 땅만 적실 것이다. 사막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흙은 물에 쓸 려 무심히 제 갈 길로 가리라. 이 모두가 차라리 자비다. 한때 사람들은 좁은 바다 건너, 거대한 신전 기둥들을 내 이름 을 따라 빌키스(달의 딸)라고 불렀다. 이곳 서쪽에 있는 궁전의 기 둥들은 또 다른 내 이름을 따라 마케다(불의 여인)라고 불렀다. 그 들에게 여사제이자 부족들을 통합한 자 구실을 했던 나의 이름은 내 왕국의 이름과 같은 ‘사바’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는 그 들이 ‘스바’라고 부르는, 향신료 나는 땅의 여왕이었다. 그들은 나를 창녀라고도 불렀다. 역사 기록자들은 물론 나름의 이야기를 할 것이고, 사제들의 이 야기는 또 다를 것이다. 정복에 집착하는 세계에서는 남자들의 이 야기들만 살아남고, 침실과 부엌을 넘어서는 여자들의 행동은 남 자들의 그늘을 벗어난 경우에만 기억된다. 그리고 이런 여자들은 악명을 얻는다.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고, 이들의 삶은 향이 타버리듯 진실이 금세 잊혔기 때문이다. 여왕들의 처지는 더 만만찮다. 온순함이라는 호사를 누릴 형편 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큼 강한 여왕의 경우, 그녀의 야망이나 권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난감함이 기록에서 드러난다. 사제들은 신이 내린 질문들을 광적으로 좇아가 는 여자들을 도무지 참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여자들의 이야기는 이들이 간음을 저질렀다고 상상하며 부러워하는 이들이 내뿜는 의 분의 불길로 검게 그을린다. 이들은 유혹자, 매춘부, 이단자가 된다. 나는 이 모두에 해당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이것들과 전혀 상 관없는 인물이기도 했다. 나의 모습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졌다. 바다 건너 사바에는 지금쯤 산비가 그쳤을 테고, 다나 와디의 거센 물은 동틀 녘에 들판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몇 달 있으면 북 쪽의 상인들이 향신료와 금을 구하기 위해 배를 타고 사바로 들어 올 테고… 그들을 보낸 왕의 소식을 전해줄 것이다. 나는 몇 년째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렇다, 들려줄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 만약 내게서 진실을 듣고 싶다면, 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나는 여왕이 될 마음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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