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서문 빈곤에 관한 연구는 사회과학의 가장 근본적인 주제 가운데 하나다. 19세기 이후 현대사회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정책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20세기 사회과학의 발전이야말로 상당 부분 빈곤이라는 거대한 사회악과 싸우는 학자들의 지속적인 노력의 산물이기도 했다. 이 점에서 빈곤을 퇴치하려는 인간의 투쟁은 사회의 진보뿐 아니라 사회과학의 발전에 중요한 촉매제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대학에서는 빈곤에 관한 수업도 충분히 개설되지 않았으며, 체계적으로 정리된 저서와 강의 교재도 부족한 현실이다. 이 책은 사회문제로서 빈곤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빈곤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을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초 지식을 제공할 것이다. 한국에서 빈곤에 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매우 최근의 일이다. 빈곤의 계측도 최근에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김대중 정부가 등장한 이후 1999년에야 ‘빈곤선’을 측정하기 시작했으며, 도시에 농어촌 지역까지 조사 대상이 점차 확대되었다. 한국의 조사연구에서도 영국과 미국에서 만든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의 개념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미국 정부의 빈곤선과 비슷한 최저생계비 계측도 이루어지고 있다. 수년 전부터는 인구 집단별 상대적 빈곤을 측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외에서 만들어진 빈곤의 개념과 이론이 그대로 한국 사회에 적용된 것은 아니다. 1980년대 미국과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신우파의 ‘언더클라스underclass’ 논쟁은 한창 경제성장에 바쁜 한국 사회와는 큰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복지국가가 발전한 나라에서 복지 수급자가 복지 의존welfare dependency에 빠져 근로동기와 근로윤리가 약화된다는 미국 신우파의 주장은 복지가 거의 발전하지 않은 우리의 현실과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2010년 한국에서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무상복지를 둘러싼 논쟁이 대두하면서 복지가 ‘의존의 문화’를 만든다는 보수파의 논리로 둔갑해 한국 사회에 다시 등장했다. 빈곤에 관한 논리는 시대와 장소를 달리할 뿐이었다. 이처럼 빈곤에 관한 담론과 이론은 바로 빈곤정책을 둘러싼 투쟁의 다른 형태다. 역사적으로 보면, 18세기 산업혁명이 처음 시작되었던 시절에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노동의 분업으로 생산성이 향상되면 대중의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빈곤도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19세기 말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급속한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빈곤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는 식량의 증가 속도에 비해 인구가 빨리 증가하기 때문에 빈궁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19세기 영국에 살았던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는 자본주의경제하에서 일어나는 경쟁 때문에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노동자의 궁핍화가 불가피하게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9세기 유럽의 역사가 혁명의 시대가 된 것은 바로 빈곤과 재분배를 둘러싼 다양한 계급과 정치세력의 치열한 대결이 벌어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19세기 말 영국의 빈곤 실태를 본격적으로 조사한 찰스 부스Charles Booth와 시봄 라운트리Seebohm Rowntree는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결핍과 박탈이 만연한 현실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사람이 공존하고 있었다. ‘빈곤선’을 제시한 찰스 부스와 ‘1차 빈곤’과 ‘2차 빈곤’ 개념을 제시한 시봄 라운트리는 당시 세계 최대 부국이라는 영국 사람들의 자존심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1942년에 영국은 ‘베버리지 보고서’를 발표한 후 모든 국민의 ‘최저 생활 기준’을 마련하고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는 국민보험을 시행했다. 이러한 복지국가가 전후 서유럽에 확산되면서 사실상 대부분의 나라에서 ‘절대적 빈곤’이 사라졌다. 그러나 1960년대 영국의 사회학자 피터 타운센드Peter Townsend는 ‘상대적 빈곤’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빈곤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역설했다. 지금도 빈곤선과 상대적 빈곤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애덤 스미스, 카를 마르크스, 찰스 부스, 피터 타운센드 등 빈곤을 연구한 학자 대부분이 영국에 살았듯이, 지금 우리가 쓰는 빈곤에 관한 주요 개념과 이론은 애초에 주로 영국에서 시작되었다가 나중에는 상당수가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20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에서 가장 먼저 빈곤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1980년대 이후 자유시장을 강조하는 경제학이 사회과학을 지배하면서 빈곤은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무책임과 도덕적 쇠퇴의 징후라는 비난이 거세게 일어났다. 자유시장은 안정적이고 경제성장이 유익하다는 믿음은 학문의 차원을 넘어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신우파 정부의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적 교리가 되었다. 그러나 자유시장은 결코 안정적이지 않았고, 특히 2007년 세계 금융시장은 파괴적 재앙을 일으켰다.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은 사실상 미국뿐 아니라 세계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으며, 이는 단순히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체계의 결함으로 보였다. 시장은 효율성을 유지하는 메커니즘으로 보였지만, 실제로 시장은 효율적이지 않았다. 수요와 공급에 관한 이론,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한 투자, 저개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전에 관한 모든 경제학 이론은 거의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동시에 우리는 인간의 노동력과 기계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실업률은 심각하게 증가했고, 시장의 심각한 실패는 경제의 비효율성뿐 아니라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수많은 사람이 실업자가 되었으며, 채무의 늪에 빠졌다. 심지어 경제위기가 발생하기 이전에도 한국 가정의 실질소득은 감소하고, 가계부채는 증가했으며, 빈부 격차는 커졌다. 2013년 1월 기준 한국의 남성 고용률은 69.1퍼센트로 하락하고, 여성 고용률은 46.3퍼센트에 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15~29세 고용률은 39.4퍼센트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결국 국내총생산GDP의 성장률은 상승해도 개개인 삶의 질과 생활수준은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중산층은 급속하게 사라지고, 빈곤층은 급증했다. 한국은 세계적 대기업과 경쟁력이 있는 산업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과실은 최상위층의 부유한 사람들만 누릴 수 있다. 우리의 눈을 세계적 차원으로 돌려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에 없이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다. 산업혁명은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로 확대되면서 인류 역사상 최고 수준의 생산력 발전이 이루어졌다. 또한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이미 세계의 모든 사람이 먹고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된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 곳곳에는 빈곤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굶주리고 있다. 하루에도 10만 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고 있다. 전쟁보다 기아가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가고 있다. 이에 유엔과 세계은행은 해마다 빈곤 실태를 조사하고 빈곤을 퇴치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을 이끌어내고자 하고 있다.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등 주요 학자들이 빈곤과 발전에 관한 중요한 연구를 발표했다. 개인과 사회의 역량을 강화하고, 공적개발원조를 확대하며,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는 이들의 연구는 빈곤과 싸우는 데 중요한 이론적 무기를 제공했다. 외국 학자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빈곤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데 비해, 한국의 사회과학계에서 빈곤은 중요한 주제로 오랫동안 부각되지 못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에서는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 빈곤이 저절로 해소될 것으로 보고 빈곤에 대해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 1960년대 한국에서 급속한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절대적 빈곤은 거의 사라지는 듯 보였다. 한국은 경제기적을 이루었다고 칭송을 받고, 한국의 재벌은 세계로 진출했으며, 1995년 한국은 부유한 국가의 클럽이라 할 수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했다. 경제 성공의 신화에 도취해 마치 한국에서 빈곤이 사라진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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