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프롤로그 모든 삶은 특별하다, 더구나 사랑은 한국에서 다문화 가족이라는 용어는 조금 독특하게, 경우에 따라서는 당사자 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사용되곤 한다. 누구는 ‘그냥’ 가족이지만 누 구는 ‘다문화’ 가족이다. 당신은 다문화 가족인가? 다문화 가족이 아니라면 단 일문화 가족인가? 당신은 ‘그냥’ 가족이다. 하지만 ‘그들’의 경우는 달라진다. 그 들은 단일문화 가족인가? 단일문화 가족이 아니라면 ‘그냥’ 가족인가? 아니 그 들은 ‘그냥’ 가족일 수 없다. 굳이 다문화 가족이 ‘되어야만’ 한다. ‘그냥 가족’과 ‘굳이 다문화 가족’, 이런 비대칭적인 이분법에 의한 구분짓기는 제아무리 이타적 행위니 적극적 조치(affirmitive action)니 하는 고상한 용어로 정당화된다 한들, 아주 자명한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다. 다문화는 전적으로 우 리가 아닌 ‘그들’, 곧 내가 아닌 남의 이야기로 제한된다. 우리와는 관계없는 특 별한 사람들만의 독특한 이야기가 다문화로 굳어진다. 그 과정에서 특별한 사 람들의 동질성은 과장되고 실체화된다. 우리는 그것을 고정관념 또는 편견이라 고 부른다. ‘그들’은 문제가 많을 것이다, 고쳐줘야 한다, 가르쳐야 한다, 도와줘 야 한다, 기타 등등. 완고하고 그릇된 일반화와 구분짓기에 근거한 이런 ‘뒷담화’ 다문화가 치명 적인 것은 다문화 가족과 그냥 가족 사이에 강력한 칸막이를 세울 뿐만 아니 라, 다문화 가족 안에도 말 그대로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알 수만큼이나 다 양한 삶과 사랑의 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회피하거나 부정하기 때문이 다. 장애인 화장실을 따로 만들어놓고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이 런 식의 ‘다문화’는 다름을 인정하지만, 기이한 방식으로 인정한다. 우리는 관 대하다. 그들은 내가 일하는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 사무실에 다문화 가족 지원 활동가 들이 모였던 적이 있다. ‘짧은 공부 긴 수다’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자리에 다문화가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 람들이 모였다. 한 활동가가 물었다. “우리 센터에 상담 온 일본인 언니가 있었어요. 남편이 괜찮은 사람인데, 술만 마시면 주사가 심해지고, 때때로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어요. 그래서 그 언니가 고민이 많았는데, 그날도 남편 문제로 상담을 했거든요. 듣다보니 남편이 너무 한 거예요. 그래서 화가 나서 물었어요. ‘그런데 왜 계속 같이 사세요’라고요. 그분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세요” 모인 사람들은 고민하다 한마디씩 의견을 말했다. ‘아직 국적을 취득하지 못 해서’, ‘아이 때문에’, ‘사회적 편견 때문에’, ‘혼자 살 엄두가 나지 않아서’. 활동 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도 그 언니의 ‘진심’을 읽지 못했던 것이다. 활동 가가 말을 이었다. “그 언니 대답에 저도 한순간 먹먹해졌어요, 전혀 예상 밖의 답변이었거든요, 그 언니가 한 말은 딱 한마디였어요.” “남편을 사랑하니까요.” 아마 당신이나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내 혹은 남편, 아니면 애인이 주사 가 심하고, 때론 하지 말아야 할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다. 달래도 보고, 윽박질 러도 보고, 애원해보아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그/그녀 곁을 떠나지 못한다. 왜일까? 아마 우리 혹은 우리의 범주에 포함되는 익숙한 사 람의 상황이었다면, “사랑하니까” 또는 “아직도, 여전히, 너를 사랑하니까”라는 이유를 맞히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중 아무도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 너무나 익숙하고 역설적인 사 랑의 공식을 ‘그 언니’에게만은 적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언니’ 때 문에 우리 모두 마음 아파했고,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울컥울컥 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빤한 사랑의 지평 위에 ‘그 언니’는 없었던 셈이다. ‘그 들이 사랑을? (그들 ‘따위’가) 사랑은 무슨.’ 아마 이것이 우리가 숨기고 싶었던 속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을 사랑의 주체로 보지 못하는 것은 사랑의 일반적인 속성을 조금만 관 찰해보면 더욱 기이하고 억지스럽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이다. 톨스 토이는 말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어디 톨스토이뿐인가. 영화, 드라마, 대 중가요 할 것 없이 사랑은 여전히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삶의 테마다. 그중에 서도 사람들이 경배하고 우러러보는 사랑이 있으니 바로 경계를 뛰어넘는 사랑 이다. 나이와 신분, 언어와 종교, 계층과 진영, 심지어 삶과 죽음, 종의 경계까지 를 넘나드는 사랑. 우리는 그런 사랑에 감동하고, 한번쯤은 그런 사랑을 꿈꾸기 도 한다. 그러한 사랑이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고 쩌릿하게 흔드는 까닭은 ‘조건 없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어떤 논리로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어떤 차이도 사랑 의 장애물이 될 수 없는, 말 그대로 사랑 자체가 목적인 지고지순한 사랑인 탓 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다문화 가족이야말로 숭고한 사랑의 아이템 서너 개쯤 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는 커플들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말이 안통한다. 출신 민족도 다르다. 배우자가 장애가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만난 지 며칠 혹 은 몇 주 만에 결혼하기도 한다. 재혼 삼혼도 드물지 않다. 그들이 넘나든 경계 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그들의 사랑은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 걱정과 염 려의 대상이다. 의심되거나 부정된다. 사랑의 영역에서 그들은 완벽히 열외다. 그냥 가족과 다문화 가족은 그처럼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는가? 그들의 다 름을 바라보는 방식이 굳이 예외적인 관대함의 주체로서의 우리와 예외적인 사 랑의 객체로서의 그들이라는 계서적인 이분법의 형식을 취해야만 하는 것일까 다문화 가족이 살아가는 방식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같이 동일한 것일까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노, 노, 노, 네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었 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지은이들의 생각은 이렇다. ‘모든 삶은 특별하다. 하물 며 사랑은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당신의 삶이 예외일 수 없듯이 한국의 다 문화 가족의 사랑과 삶도 당연히 예외가 될 수 없다. 모든 삶과 사랑은 특별하 다는 면에서 공통적이다. 평등하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내가 빠진 뒷담화 다문화’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로서 의 레알 다문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해 보기로 했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지은이들은 말 그대로 ‘다’문화적인 삶을 살고 있다. 가 족의 구성이 다채롭고, 태어난 곳과 사는 곳도 다르다. 음식·종교·의상·언어· 젠더·육아 등 삶의 요소마다 공통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단일한 전통도 없다. 그렇지만 지은이들은 자신들을 다문화 가족이라기보다 ‘지구 가족’이라고 부 르기로 했다. 한 커플을 제외하면 모두 한국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것이 첫 번 째 이유이고, 이들의 삶이 (한국식 다문화 용법으로부터 과잉 계몽된) 우리가 기대 하고 믿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 두 번째 이유다. 이 책의 주인 공들은 어떻게 사는가? 어떻게 사랑하는가 광균(여광균)은 뉴욕 롱아일랜드에 산다. 광균과 앤(Ann)은 태평양 한가운데 에 있는 하와이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고 가족이 되었다. 광균네는 언제나 시 끌벅적하다. 세 개의 언어, 세 개의 문화를 가진 3대가 모여 살기 때문이다. 그 의 장인·장모는 여전히 정열적으로 일하는 타이완 출신 이민자이다. 타이완 계 미국인 아내 앤은 NGO 활동가이다. 그들의 두 자녀는 스스로를 ‘Korean, Taiwanese, and American(한국인, 타이완인, 그리고 미국인)’이라고 생각한다. 이 들 가족에게는 없는 게 많다. 광균은 수년간 중국에서 연구활동을 한 인류학자이지만 아직 학위가 없다. 그는 집도 없고, 결혼반지도 없고, 트렌디한 옷도 없다. 미국, 타이완, 한국 중 한 곳에 깔끔하게 소속되는 단일문화도 없다. 지시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 는 미래를 향한 내비게이션도 없다. 그래도 행복하다. 매일 아침 온 가족이 눈 을 맞추고, 사랑의 주파수를 재조준한다. 이들에게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 는 이 가족만의 스타일이 있다. 광균네의 일상은 매순간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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