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책을 내며 저성장시대의 도래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1970~1980년대 두 자리 숫자를 기록하던 경제성장률은 2~3%대로 떨어졌고, 2040년이 되면 1%에도 못 미칠 전망이다. 인구 전망 또한 상당히 어둡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견인하면서 계속 늘어날 것만 같았던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17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서고, 2026년이 되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저성장과 고령화가 동시에,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저성장이란 경제적 측면에서 실질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하지만 단순히 경제적 성장의 둔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저출산·고령화가 우리 사회 전반의 활력과 성장 동력을 떨어뜨리고 있으며,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맞이하는 저성장은 소득의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의 도시정책은 1970년대 이래 지금까지 줄곧 고도성장 시스템에 맞게 유지되어왔다. 도시 외곽에서의 대규모 신도시 개발과 개발이익에 근거한 재개발사업, 주택과 공공 인프라의 양적인 공급정책은 고도성장을 뒷받침하는 원동력이자, 고도성장기이기에 가능했던 방식이었다. 하지만 저성장기에는 과거 고도성장기에 가능했던 토지·주택의 양적인 공급 확대와 재개발사업, 공공에 의한 인프라 관리방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 이미 개발이익에 근거해서 추진되던 뉴타운·재개발사업은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으며, 1970~1980년대에 공급된 노후 공공 인프라를 공공의 재정만으로 유지·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로 인한 복지수요의 증가는 도시 재정을 악화시킬 것이며, 사회적·공간적 양극화는 앞으로도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이렇듯 최근 우리 사회 전반에서 감지되고 있는 저성장의 징후와 양상은 도시정책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당면한 현실과 암울한 미래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면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과거 고도성장기의 메커니즘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필자들의 문제 인식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이 책은 지난 1년여 동안 서울연구원 도시공간연구실의 중견 연구자들과 외부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2011년 한국공간환경학회가 출간한 ??저성장 시대의 도시정책??(한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는 현실이 된 저성장의 징후와 양상을 살펴보고, 우리보다 먼저 저성장을 경험한 외국의 대응책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제시하고자 한다. 수차례의 전문가 특강과 필진들 간의 워크숍, 검토회의와 윤독회, 시민 설문조사 등을 통해 저성장에 대한 인식의 폭과 스펙트럼을 넓혀가면서 부문별 정책 이슈와 대응 방향을 마련했다. 이 책은 총 4부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제1부에서는 저성장의 개념과 징후를 살펴보고, 서울의 도시정책 과제가 무엇인지 논의했다. 경제, 주택·부동산, 인구, 재정 등 우리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저성장의 징후와 양상을 검토한 후 한국적 저성장의 특징과 도시정책의 과제를 제시했다. 제2부에서는 우리보다 먼저 저성장을 경험한 외국 대도시의 사례를 검토했다. 산업구조 재편과 통일 과정에서 저성장을 경험한 영국(런던)과 독일(베를린),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저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일본(도쿄)이 저성장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전략과 정책을 구사했는지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제3부는 주택, 재개발, 공공 인프라, 공간구조 등 4개 부문에 걸쳐 저성장기의 도시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계속되어온 규제 완화와 대규모 개발 등 개발수요에 근거한 고도성장기 도시정책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저성장기 부문별 이슈와 변화 전망을 논의하고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끝으로, 제4부에서는 새로운 현실이 된 저성장을 ‘위기이자 기회’로 인식할 것을 제안했다. 고도성장기의 상처를 치유하고 사람 중심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전환해야 할 도시관리의 패러다임과 저성장을 넘어서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제안했다. 저성장시대 도시정책 패러다임의 전환 우리에게 주어진 핵심 과제는 고도성장기에 맞춰진 기존의 도시정책 기조와 시스템을 저성장기에 맞게 어떻게 전환 혹은 연착륙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저성장시대의 도시정책은 규제 완화와 개발이익 등 고도성장기에 가능했던 개발 메커니즘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기제하에서 작동할 것이다. 고도성장기에 맞춰진 기존 도시정책을 저성장기에 맞게 연착륙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도시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신규 개발을 통한 양적인 공급 확대보다 기성시가지의 환경 개선과 관리를 통한 질적 수준 향상이 요구된다. 신도시 개발을 통한 도시의 외연적 확산과 개발이 어려워질 것이므로, 기성시가지 재생을 위한 다양한 수법과 지원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둘째, 저성장기 도시정책은 수요자 특성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 수요자인 시민의 관점에서 도시문제를 파악하고, 시민 개개인의 생활을 중시하면서 과밀 해소와 혼잡 완화, 직주근접 등을 통해 시민들이 생활하기 편리한 활력 넘치는 도시를 지향해야 한다. 셋째, 사회안전망이 충분하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저성장은 사회적·공간적 양극화와 격차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더구나 도시개발 과정에서 토지 소유자의 절대적 권한이 보장되고 개발이익이 사유화되는 사회적 구조하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저성장시대에는 저소득층, 장애인, 세입자,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약자를 배려하는 포용적 도시정책이 필요하다. 넷째, 우리나라는 고도성장 과정에서 유례없이 빠른 도시화를 경험했고, 이 과정에서 경제적 가치 중심의 도시개발과 외형적인 성장을 중시했다. 저성장기 도시정책은 이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사람 중심의 도시 가치를 찾기 위한 노력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사람 중심의 일상적 가치를 중시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저성장을 극복하고 대응하기 위해 고도성장기에 맞추어져 있는 도시 사회 전반의 시스템과 정책을 연착륙시켜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이 책이 저성장시대를 대비하는 우리의 자세와 도시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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