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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전후'

두 번째 '전후'

권혁태 (지은이), 조경희, 정종현, 장세진, 임성모, 차승기, 임경화, 김예림, 고영란, 심정명, 권혁태 (엮은이), 조경희

한울엠플러스·2017-06-15

  • 347쪽
  • 153×224mm
  • 역사
  • KDC 913.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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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책머리에 일본의 ‘전후(?後)’라는 말에는 특유의 난해함이 있다. 이 말은 ‘전쟁 종결 후’라는 문자 그대로의 뜻을 벗어나, 어느새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이 미국과 밀월 관계를 맺으며 이루어낸 민주주의, 평화주의, 경제성장이라는 질서와 가치 전반을 가리키게 되었다. 일본 사회는 오랫동안 ‘전후’ 질서의 과실을 향유해온 한편, 미국으로부터 주어진 평화와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취해왔다. 패전과 미군 점령이라는 부정적인 초기조건은 일본 사회에 일종의 자아의 뒤틀림을 낳았다.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각’을 지향하는 극우 세력도, 이념으로서의 전후 민주주의를 계승하는 리버럴 세력도 이와 같은 ‘전후’의 모순을 묵인하고 서로를 지탱해왔다. 요즘 우파는 ‘전후’를 극복의 대상으로, 리버럴은 되돌아가야 할 ‘행복’했던 시대로 보고 있지만, 좌우할 것 없이 일본의 ‘전후’ 이야기는 패전과 점령이라는 ‘뼈아픈 경험’과 그 경험을 딛고 일어선 ‘성공’의 틀에 가두어졌다. 이 메타적 맥락은 현재까지도 매끄러운 ‘전후’ 이야기의 핵심 요소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일본의 ‘전후’에는 아시아가 없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도 일본을 논할 때 ‘전후’라는 말을 종종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이유로 일본에서의 용법을 그대로 옮기는 것에는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1945년 식민지에서 해방되었으면서도 전쟁을 종결시키지 못했던 한반도의 위치에서 바라볼 때, 과연 일본의 ‘전후’는 어떤 모습인가. 우리는 ‘전후’라는 말을 통해 ‘전후’를 둘러싼 일본과 아시아의 시간차·온도차를 드러내고 그 불협화음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책을 만든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전후 일본 세미나 팀’은 애초부터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지속적으로 세미나를 진행해왔다. 첫 번째 연구 성과인 ??전후의 탄생: 일본, 또는 조선이라는 경계??(2013)에서는 주로 1950년대에 초점을 맞추어, 일본의 ‘전후’라는 제도가 식민지 조선의 사상(捨象) 혹은 소거(消去)와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성립되었음을 밝히고자 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일본의 사상과 담론, 제도와 일상이 소거된 흔적으로만 존재하는 ‘조선’을 가시화함으로써, 식민 제국의 과거를 봉인했던 전후 일본의 자화상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이어서 기획된 ??주권의 야만: 밀항, 수용소, 재일조선인??(2017)에서는 전후 일본의 주권의 핵심이자 은폐된 시공간인 ‘오무라(大村) 수용소’에 초점을 맞추어, 조선인 밀항자 관리를 통해 국가 시스템을 만들어간 일본의 ‘전후’와, 탈국경의 삶이 구조화된 한반도의 ‘해방 후’ 사이의 낙차를 대조적으로 조명했다. 일본의 ‘전후’ 이야기에서 지워진 조선의 흔적을 찾아내고 과거를 봉인하는 장치로서의 수용소를 포착한 우리가 다음으로 주목한 것은, ‘전후’ 시스템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자본주의적·냉전적 모순의 심화와 유착, 그리고 이를 둘러싼 아시아 혹은 제3세계와의 갈등과 적대의 경험들이다. ??두 번째 ‘전후’: 1960~1970년대 아시아와 마주친 일본??은 이 같은 공동 연구의 세 번째 성과물이다. 먼저 제목에 있는 ‘두 번째’라는 대목에 대해 부연해야 한다. ‘전후’라는 말은 대상이 되는 시기적 범위가 넓을 뿐만 아니라, 그 맥락에 따라 의미·내용이 변하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 구분할 때 ‘전후’는 1945년 8월 15일 이후의 역사를 체제로서의 전후는 1956년, 일본 경제기획청이 ‘전후가 끝났다’고 선언한 바로 그 시기에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가리킨다. 다만 체제로서의 ‘전후’는 그보다 나중에 성립된다. 1956년에 일본 경제기획청이 ‘전후가 끝났다’고 선언한 바로 그 시기에 체제로서의 ‘전후’가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제1의 전후가 패전 후 혼란기였다면, 제2의 전후는 바로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기반으로 정치·경제적 안정을 이룩한 시기이다. ‘전후’라는 말이 문제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그보다 훨씬 후인 1990년대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걸쳐 진행된 국내외적 변동, 즉 버블 경제와 냉전 체제의 와해, 천황 히로히토의 죽음, ‘55년 체제’의 균열, ‘북핵 문제’의 부상, 역사 문제의 표면화 등으로 인해 전후 질서가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전후’는 요란하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전후’라는 말에는 그 시대적 맥락에서 부각되는 의미가 겹겹이 쌓여 있다. 다시 말해 시간으로서의 ‘전후’, 체제로서의 ‘전후’, 또 담론으로서의 ‘전후’가 서로 중층적으로 얽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말하는 ‘두 번째 전후’란 단지 시간적인 의미에서 1960~1970년대를 뜻하는 것만이 아니라 고도의 경제성장을 거친 일본이 체제로서 완성되는 단계를 가리킨다. 동시에 탈식민의 좌절을 딛고 일어선 아시아 국가와 민중이 다시 일본의 시야에 들어오게 되는 국면이기도 하다. 일본은 1951년 연합국과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을 체결하고 국제사회로 복귀한 후, 1960년대 자본주의의 세계적 고양과 냉전의 심화 과정에서 아시아 국가들과 새로운 파트너십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1965년의 한일국교정상화와 1972년 중일평화우호조약 체결, 1972년의 오키나와의 본토 ‘복귀’ 등은 일본과 아시아와의 정치적 봉합이라는 현실, 그리고 미국이 주도한 새로운 동아시아 냉전 질서하에서 적대적 공범 관계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편 이 적대적 공범 관계에 대항하는 아시아 민중의 반체제운동은 안팎에서 ‘전후’ 시스템을 와해하는 물결을 일으켰다. 베트남 반전운동의 고양,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세계적인 68혁명의 영향은 일본에서도 ‘전공투’를 중심으로 한 청년들의 저항운동으로 이어졌다. 재일조선인과 중국인, 그리고 오키나와인들이 주도한 내셔널리즘의 고조와 반차별투쟁은 일본 전후 민주주의의 기만적 성격을 내파(?破)하는 움직임으로 작용했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일본과 아시아의 상(像)을 구상하려는 사상적 영위가 이루어졌다. 1960~1970년대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과 대안적 운동들은 ‘전후’ 체제의 심화 과정에서 나타난 신체적 거부반응이자 사상적 반격이었다. 다만 이상의 움직임들은 1960~1970년대부터 자리를 잡아간 냉전-국민국가-자본주의라는 복합적 시스템을 뒤흔들기에는 너무나 작은 소수의 로컬 투쟁이었다. 혹은 일본과 아시아 사이에 재생산되는 식민주의적 관계가 여전히 강력한 역사적 구속력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 전후’를 살았던 일본은 진정으로 아시아와 ‘다시’ ‘만났던’ 것인가. 이러한 의문은 이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으로 남아 있으나, 그렇다고 일본과 아시아의 관계에 미리 정답을 준비해둘 필요는 없다. 이 책의 부제를 ‘만남’이 아닌 ‘마주침’이라 한 것은 역사를 어떤 목적의식성을 지닌 연대나 운동의 결과라기보다는, 우발성과 우연성에 의한 조우(encounter)의 지속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관점 때문이다. 알튀세르가 ‘마주침의 유물론’에서 서로 우연히 마주치는 것들이 응고함으로써 역사가 형성된다고 보았듯이, 이 책에서 다루는 1960~1970년대 사건들은 서로의 우발적인 마주침의 흔적들로 볼 수 있다. 그 흔적들이 과연 우리에게 풍부한 역사를 제공해줄 것인지 판단하는 일은 독자의 몫이다. 어쨌거나 현재까지 이어지는 일본과 아시아 간 관계의 불균형과 인식의 비대칭을 생각한다면, 1960~1970년대 아시아와 일본이 마주친 순간들을 포착하고 그 사상적 영위를 발굴하는 것은 필수적인 작업이라고 믿는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었으며 총 9편의 글을 실고 있다. 각 장의 내용을 간략하게 조망하면서 책의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부 ?식민의 잔상, 냉전의 정착?은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기 전인 1960년대 초반까지를 중심으로 탈식민의 과제가 냉전의 역학에 수렴되어가는 국면을 다루고 있다. 1장 ?‘조선학/한국학’의 국교정상화?는 해방 후 한일 간의 첫 번째 공식 학술 교류의 장이었던 일본 ‘조선학회’에 초점을 맞춰 한일 간 탈식민적 관계의 모색과 미국의 안보 전략이 만나는 과정을 그린다. 정종현은 한국 학자들에게 ‘조선학회’ 참가가 과거 동양학의 일환이자, 제국의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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