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프롤로그 열세 살에 집을 나와 전국을 떠돌기 시작했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중식당 보조부터 한식당 보조까지, 음식을 다루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들어가 일을 했다. 그렇게 한 끼를 먹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누군가의 몸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게 좋았다. 하지만 어디든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요리에에 빠져들면 들수록 내가 찾는 음식, 내가 하고자 하는 요리는 그 어느 주방에도, 책에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식당에서 얼마간 일하다가는 금세 답답해져서 또 뛰쳐나와 전국의 산으로, 강으로 돌아다니곤 했다. 떠돌다가 날이 저물면, 빈집이건 동굴이건 과객질이건 아무렇게나 아무데서나 몸을 뉘였다. 간첩으로 오인받고 신고된 적도 여러 번, 마을사람들에게 쫓겨난 적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길 위에서 온몸으로 뒹굴던 젊은 날의 치기가 음식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었다. 진정한 '맛'은 물 속에, 땅 위에, 바람결에 깃들어 있었다. 우리 땅, 우리 물에서 나는 재료들만 가지고 얼마든지 이 세상 최고의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어느 일류 레스토랑의 주방이 아니라 길이, 자연이 곧 나의 스승이었다. 마흔이 되어서야 비로소 정처 없는 마음을 잡고 내 갈 길, 가야 할 길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사람이 좋아서 음식을 만들었고, 이 강산이 좋아서 요리를 했다. 강산도 자연, 사람도 자연이었다. '그 자체로 그러한 것들(自然)'을 서로 짝지어주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이 강산의 것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접목시켰다.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보고 그냥 지나치지만, 나는 들판에 널려 있는 풀들만 보면 아주 신이 났다. 머릿속에 그림이, 음식이 절로 그려졌다.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새 내게 '자연요리 연구가'라는 별칭이 붙어 있었다. 나의 '자연요리'에 대해 먼저 관심을 보여준 곳은 나라밖이었다. 언제부턴가 해외의 요리대회와 요리방송에서 거듭 초청을 해왔다. 그러다가 국내에서도 '한식의 세계화'라는 컨셉트로 비로소 나를 주목해주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서운하거나 씁쓸하거나 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떠돌아다니던 시절, 이 강산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거두고 먹여주었다. 그 강산과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어떻게 있었을까. 제법 이름을 얻은 '자연요리가 임지호'가 아니라 '인간 임지호'도 아마 오늘날 없었을 것이다. 떠돌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말아준 국수 한 젓가락, 수제비 한 숟가락이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었다. 그때의 고마움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음식을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되살아난다. 누군가로부터의 보시(布施)는 그대로 돌려주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에게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길을 나서며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음식을 해주고, 그런 사연으로 '방랑식객'이라는 또 하나의 별칭을 얻게 되었다. 굶던 시절 나에게 밥 한 끼를 해주던 할머니들, 어머니들처럼, 나는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그들의 몸과 마음에 맞닿은 요리를 해주곤 다시 길을 떠난다. 그것이 내가 덕을 입은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공양(供養)이자 보은(報恩)이다. 자그마한 식당 하나를 운영하고 있는 지금도 나는 틈만 나면 새로운 재료를 찾아, 보은할 대상을 찾아 무작정 길을 떠난다. 이 책은 그 방랑의 기록이자 보은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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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음식은 보은이다 1. 댓돌 위에 내려앉은 산촌의 봄 - 지리산 나물 코스 요리 2. 나그네를 위해 남겨둔 온유한 단맛 - 버들강아지를 곁들인 감떡 3. 생명의 터전에서 영그는 볕과 땀의 결정 - 갯벌 소스를 곁들인 백년초 무침 4. 벽안의 부부를 위한 신토불이 레시피 - 바람꽃 고명을 올린 보리국수 음식은 치유다 1. 올레길 어귀에서 만난 작은 기적 - 하귤조림과 감자범벅 말이 2. 바람과 시간으로 엮은 집 - 좁쌀수제비 3. 들풀의 자유를 비비고 먹다 - 잡초 자장면 4. 노인과 바다 - 다진 문어 숙회와 자리돔 튀김 5. 새를 닮은 이들을 위한 자연주의 식탁 - 복분자밥을 곁들인 풀(草) 코스 요리 6. 시계 위에 올린 치유의 밥상 - 아토피를 위한 녹두죽과 무 부침개 7. 빈집에 남겨둔 마지막 선물 - 청각초밥과 생선 맑은탕 음식은 미래다 1. 솔바람으로 심신의 독을 내린다 - 솔잎녹두찰떡과 개망초 된장국 2. 아토피를 위한 특별식 - 알로에단호박 문어요리 3. 편식을 이해해야 편식을 고친다 - 김치 스테이크와 시금치 경단 4. 나물 한 접시의 자연 - 곰취쌈밥과 나물양갱 음식은 만남이다 1. 잃어버린 고국의 맛을 전하다 - 배추보쌈과 백김치 2. 고토에 피어난 ‘하나됨’의 염원 - 장미냉이 샐러드와 가지버섯 불고기 3. 태고의 산악이 품은 겨울 바다 - 낙엽차 4. 한 세대의 생명을 받아안는 법 - 우엉완자 5. 엄마의 손길을 대신 전하며 - 곶감 찰떡과 무장아찌 음식은 소통이다 1. 달걀 하나에 이야기를 담고 - 가이세키 요리와 달걀 반숙 2. 미친 셰프들의 자연요리 대결 - 곰취쌈밥과 호박잎 곰취찜 3. 이국에 남긴 이방인의 선물 - 가오리회 무침과 콩잎수제비 매운탕 4. 쌀의 나라 술의 나라 - 술지게미 죽과 술지게미 김치 5. 먼 훗날에 만나는 그 시절의 떡국 - 기리탄포 떡볶이 6. 평화와 행복을 기원하는 추석 상차림 - 우토로 추석상차림 에필로그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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