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이 책을 펴내면서 이 책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남현 선생님의 정년 퇴임을 기념하고, 나아가 선생님이 쌓으신 학문적 업적을 바탕으로 해방 이후 한국현대문학에 대한 향후 연구의 방향을 가늠해보기 위하여 기획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제자들이 기획하여 만든 이 책이 선생님의 크나큰 업적과 은덕에 작으나마 뜻있는 갚음이 되기를 감히 바랍니다. 이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조남현 선생님께서 제자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스승과 제자의 깊은 연이 아니었다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선생님께서는 저희 제자들에게 두 가지 모습으로 다가오셨습니다. 먼저 치열하게 연구에 정진하는 큰 학자의 모습입니다. 사시사철 불이 켜진 연구실, 책장 가득 선생님의 손때가 묻은 서적들, 빼곡하게 쌓인 자료 사이의 좁은 틈으로 겨우 왕래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제자들에게 학자란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귀감으로 다가왔습니다. 1973년 문학평론가로 데뷔하시고, 1974년 석사논문 「1920년대 한국 경향소설 연구」를 발표하신 이후 40년 동안 선생님께서 20여 권의 연구서를 비롯한 수많은 업적을 상재하셨던 것도 이처럼 학문 연구에 전력을 기울이셨기에 가능하였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언제나 다정하고 온화한 태도로 저희를 대하셨던 스승의 모습입니다. 저희들이 찾아뵐 때면 환한 웃음으로 편안하게 대해 주시고, 당장의 해결책은 없을지언정 저희의 고달픈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은 본받아야 할 스승의 상으로 항상 기억될 것입니다. 선생님 아래에서 대학원 공부를 한 제자들이 무려 50여 명이 넘게 된 것, 그리고 제자들 사이에도 돈독한 우정이 가득하게 된 것도 모두 선생님의 인간적인 감화가 있었던 덕분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무엇보다 학문적인 면에서 저희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치셨습니다. 선생님의 학문적 업적을 살펴보면, 한 가지 큰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문학 이론을 폭넓게 원용하면서도 실증성에 든든한 바탕을 두고 작품적 의미와 문학사적 의의를 밝혀낸다는 데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선생님께서 평생을 주력하셨던 지식인 문학과 현대문학 사상에 대한 연구를 보면, 작품 외적인 사항이나 비평적 언급을 잣대 삼아 작품을 평가하지 않고, 작품 내에 실제로 나타나 있는 현실성과 사상성을 드러내는 데 중점이 두어져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경향문학이나 북한문학과 같이 이데올로기가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작품이나 작가에 대해서도 많은 업적을 이루셨지만,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태도로 엄정하게 다루려는 지향이 두드러진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이처럼 견고한 실증적 태도는, 저희에게 학자로서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알려주는 큰 교훈이 되었습니다. 문학은 작품으로 말하지 문학 외적인 언급이나 행위로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선생님의 가르침과 업적으로부터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선생님의 제자들이 왜 이 책을 기획했는지 말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작품으로 보는 한국현대소설사”라고 이 책의 큰 주제를 정했던 것은, 위에서 언급했던 선생님의 학문적 태도를 본받기 위해서입니다. ‘현대소설사’의 기본이자 핵심인 작품들을 실증적으로 분석하면서 현대소설사의 흐름을 가늠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책을 펴낸다면, 근래 본격화된 해방 이후 소설사에 대한 연구도 더욱 풍성해지리라고 기대하였습니다. 이 책을 만들기 위하여 저희는 우선 해방 이후 현대소설사의 시기를 연대순으로 묶고, 각각의 연대가 지니는 소설사적인 흐름을 대변할 수 있는 작품들을 선별하였습니다. 기획 당시에는 각 연대별 소설사의 흐름을 서술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그러한 서술은 오히려 독자들에게 소설사의 흐름에 대한 선입관을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각 연대별로 제시된 작품론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현대소설사의 흐름을 귀납적으로 파악하게끔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도에 따라 이 책의 편집 방향이 정해졌습니다. 이 책의 모든 원고는 제자들이 새롭게 쓴 것입니다. 그것은 기왕에 발표된 글을 정리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해야만 선생님의 은덕에 제대로 보답하는 것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책 전체의 기획 의도인 “작품으로 보는 현대소설사”에 맞추어 집필해야만 책 전체가 통일성을 지닐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책에 실린 작품론들은 대상 작가의 연구사를 간략히 정리하면서 그 작가의 문학사적 위치나 작품 경향을 개괄적으로 제시하고, 이어서 작품에 대한 구체적으로 분석을 바탕으로 해당 작품의 소설사적 의미를 추려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해방 직후의 기간에는 허준, 채만식, 염상섭, 김동리, 이무영, 최정희의 작품들이, 1950년대에는 박영준, 선우휘, 황순원, 손창섭, 장용학, 정한숙, 이범선의 작품들이, 1960년대에는 이호철, 전광용, 박경리, 김정한, 김승옥, 이청준, 최인훈의 작품들이 다루어졌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박완서, 김원일, 오정희, 이문구, 윤흥길, 전상국, 조세희, 최인호, 현기영, 황석영의 작품들이, 1980년대에는 조정래, 이문열, 이인성, 임철우, 윤후명, 현길언, 김주영의 작품들이, 1990년대에는 신경숙, 성석제, 이승우, 김영하, 은희경, 김연수, 김훈의 작품들이 다루어졌습니다. 모두 합하여 44명의 작가가 쓴 작품을 다룬 셈입니다. 이 책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으나 현대소설사에서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하는 작품들이 더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차후에 그러한 작품들을 다룰 기회가 다시 한번 있기를 바랍니다. 모쪼록 이 책이 제자들의 의도대로 선생님의 은덕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계기가 되고, 나아가 해방 이후 한국현대소설사 연구를 보다 풍성하게 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보다 상세한 작품론을 원하는 연구자들이나 우리 소설을 좀 더 깊이 읽으려는 일반 독자들에게 한국현대소설의 다기한 면모에 접근하는 통로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조남현 선생님 제자들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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