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진실 보도’로 연결되지 않는 자기반성, 자위행위일 뿐! ‘세월호 1주기’… “언론, 바뀐 것 없어 부끄럽다” 〈기자협회보〉 2015년 4월 8일자 1면 기사 제목이다. 진도 팽목항과 안산 단원 고, 서울 광화문에서 세월호 문제를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그 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언론은 변 한 게 없다.” 나의 생각은 다르다. 언론은 변하지 않은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나빠졌다. 1년 전 대다수 언론은 ‘기레기 언론’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후 언론은 사실관계 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정부 발표를 받아쓰기 바빴다. 그 결과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육해공 구조작업 총출동’과 같은 오보 퍼레이드 를 이어갔다. 국민들의 언론 신뢰도는 바닥까지 추락했다. 1년 전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 때문에 최소한 눈치라도 살폈다. 하지만 여론의 관심이 사그라진 요즈음, 그들은 대놓고 세월호 유가족을 조롱하 고 멸시한다. 1년 동안 책임자 처벌은커녕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언론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해양수산부가 2015년 4월 1일 발표한 세월호 피해자 배·보상금 보도가 대표 적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에 선체 인양과 진상규명이 최 우선이라며 이와 관련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해왔다. 배·보상 문제 는 꺼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해양수산부가 배·보상금 문제를 발표하자마자 언론 은 이를 대문짝만하게 받아썼다. 유가족들은 “돈은 중요하지 않다. 진상규명과 선 체 인양에 초점을 맞춰 보도해달라”고 호소했지만, 그들의 호소는 정부가 발표한 “정확하지 않은 숫자”에 파묻혀 주목받지 못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가 대표적이다. 두 신문은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세월 호 피해자 배·보상금 규모를 다음 날인 4월 2일 1면 우측 상단에 배치했다. 특히 〈중앙일보〉는 별도 기사 없이 세월호 희생자 배상·보험·위로금 평균 금액만 편집 해서 보도했다. 서울 광화문에서 농성 중인 유가족들이 이 문제에 얼마나 분노하 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면 절대 해서는 안 될 ‘편집 행태’였다. 세월호 문제에 적극 적인 JTBC 보도 태도와 비교하면 ‘자매지’ 성격인 〈중앙일보〉의 이 같은 보도 태 도는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같은 날 〈경향신문〉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정부가 진상조사나 인양 계획에 대한 언급 없이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에 대한 배상액부터 서둘러 발표했 다고 비판했다. 사실 진상조사 요구를 정부가 돈으로 무마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 적은 특별한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상식적인 언론이라면 당연히(!) 질타해 야 할 부분이지만, 현재 한국에서 이런 상식적인 언론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한국 언론의 비극이다. 1년 전에도 언론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사과했다. 〈기자협회보〉 2014년 4월 30일자 1면에는 당시 기자들이 실명으로 사과문을 게재한 기사가 나온다. “부끄 럽고 죄송합니다…”라는 제목의 사과문 쓰기에 진보와 보수, 공영방송과 종편 기 자들까지 모두 동참했다. 그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사과했다. 무책임한 오보 와 제대로 된 언론 역할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성이었다. 당시 한 종편사 간부 는 “우리는 2014년 4월 16일의 메시지를 두고두고 기억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안전 후진국’에서 벗어나라는 지상 명령을, 그것이 우리 모두 눈 벌겋게 뜨고 바다 속에 수장시킨 단원고 꽃다운 청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썼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해당 종편사가 세월호 유가족에 대해 보인 자세는 비난 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해당 종편사와 특별한 관계의 ‘자매지’인 자칭 ‘1등 신문’도 비슷한 보도 태도를 보였다. 때론 적대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4월 16일의 메 시지를 두고두고 기억해야 한다”고 자성했던 언론사 간부가 속한 매체라면 이해 가 가지 않는 처사였다. “바다 속에 수장시킨 단원고 꽃다운 청춘에 대한 최소한 의 예의”를 운운했던 언론사 간부가 속한 매체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보도가 여러 번 나왔다. 언론은 바뀌지 않았다. 아니, 세월호 참사 발생 1년이 된 지금 그 뻔뻔함과 오 만함은 극에 달하고 있다. ‘기레기’라는 비난을 들을 때 세월호 유가족에게 고개 숙였던 그들은 여론의 관심이 줄어들자 숙인 고개를 조용히 올렸다. 지금은? 팔 짱을 낀 채 유가족을 노려보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바뀐 역학관계는 세월호 유가 족들의 태도에서도 확인된다. 1년 전, 유가족들은 진도 팽목항에서 언론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하소연’하는 처지가 됐다. 〈기자협회보〉 에 소개된 기사 가운데 일부를 인용한다. 유가족들의 언론에 대한 태도는 1년 전 질타와 적대감, 비판에서 이제는 하소 연, 부탁과 기대 등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정부도 바뀐 게 없지만 언론도 변한 게 없다. 아니, 정부와 함께 그들은 유가족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등을 돌렸다. 기자들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바뀐 게 없어 부끄 럽다”는 언론의 자성을 냉소적으로 본다. 그들은 1년 전에도 사과했지만 바뀌지 않았다. 물론 개인적으로 각성하고 성찰한 기자들도 있을 것이고, 미약하지만 내 부적으로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 일부 언론인도 있을 것이다. 하 지만 ‘개인적 성찰과 반성’이 제대로 된 언론 보도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성찰과 반성에서 진정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자기반성의 관성화와 그에 따른 도덕적 우월 의식의 발로는 때론 오만함보다 더 무서운 중병이다. 다시 1년 전 모습으로 돌아가보자. 앞서 언급한 〈기자협회보〉 2014년 4월 23일자를 보면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눈물과 성찰이 곳곳에 보인다. “그곳에 서 우리는 기자라고 말할 수 없었다”(1면), “실종자 가족 절규에 무너지는 가슴… 수습도 고참도 눈물”(2면) 등의 기사에서 그들은 “언론을 못 믿겠다”는 가족들의 절규에 부끄러워했고, “가족들 취재할 때는 거의 울면서 한다”며 가슴 아파했다. ‘그랬던’ 언론과 ‘그랬던’ 언론인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전후해 그들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1년 전 유가족들 앞에서 머리를 숙이며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했 던 많은 언론인들은 지금 대부분 자신들의 일상에 갇혔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내부 메커니즘, 악화되는 언론 내부의 의사소통 구조, 언론 노동운동의 약화 등 내세울 핑계거리는 많다. 하지만 그런 핑계와 자기합리화가 정당화된다면 이 세상 에 정당화되지 않는 건 없다. 그런 식이면 박근혜 정부의 실정도 정당화될 수 있 다. 언론인이여, 우리 비판을 달게 받을지언정 비겁해지지는 말자. 나는 요즘 ‘자기반성의 관성화’라는 화두를 자주 떠올린다. 특히 세월호 참사 와 관련한 언론 보도와 언론인의 태도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반성’ 이라는 단어가 ‘관성’이라는 단어와 연결될 경우 얼마나 자기합리화의 정점을 찍 을 수 있는지도 절실히 느낀다. 그래서일까.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 ‘자기반성’보 다는 자신의 속내를 솔직히 ‘커밍아웃’하는 언론인에 더 눈길이 간다. 그들의 주장 은 때론 너무나 직설적이고 선전 선동을 대놓고 주장하는 탓에 눈살이 찌푸려지 기도 하지만, 적어도 독자와 시청자를 기만하지 않고 논점을 흐리지 않는다는 점 에서 솔직하다. 내 말을 곡해하지 말라. ‘직설적인 언론인’이 많아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일상적인 보도 투쟁’은 등한시하고 특정 시기가 올 때마다 ‘반성하는 목소 리’만 내는 언론인이 문제라는 것이다. “세월호 1주기… 언론, 바뀐 것 없어 부끄럽다”는 자기반성은 더 이상 사람들 에게 감동을 주지 않는다. “바뀐 게 없어 부끄럽다”고 할 게 아니라 “미미하지만 이렇게 바뀌었고, 앞으로 이런 부분을 좀 더 바꾸겠다”라는 선언을 해야 한다. 특 정 사건이나 대형 오보가 발생할 때마다 머리를 조아리고 반성만 하는 언론은 이 제 필요 없다. 아니, 시민들은 더 이상 그런 언론에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진실 보도’로 연결되지 않는 자기반성은 자위행위일 뿐이다. 2015년 4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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