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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고차 월든

봉고차 월든

켄 일구나스

(주)문학동네·2015-06-22

  • 문학
  • KDC 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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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프롤로그 듀크대, 2009년 봄학기 말 빚: 0달러 2009년의 어느 봄밤, 나는 행여 밖에서 보일세라 듀크대 캠퍼스 주차장에 세워둔 봉고차 바닥에 납작 누워 있었다. ‘이제 끝인가, 들켜버렸어’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사각팬티만 입은 채 바람에 쓰러진 허수아비처럼 사지를 쭉 펴고 양탄자에 누워 있었다. 주된 생활공간이라고 해봐야 봉고차 앞쪽의 운전석 및 조수석과 맨 뒤에 놓인 침대 사이의 공간 정도라 팔다리를 쭉 뻗으면 꽉 찼다. 머리 옆에는 서랍이 세 개 달린 플라스틱 수납함이 놓여 있었다. 이 수납함은 조리대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시리얼 상자, 쌀이나 콩이 들어 있는 봉지, 바느질 도구, 조리 기구, 접착 테이프, 헌 지퍼락 봉지 등 내가 가진 거의 모든 잡동사니가 들어 있다. 날씨는 화창했다. 맑은 날이면 늘 그렇듯 바깥보다 봉고차 안이 훨씬 더웠다. 정말 참을 수 없이 더웠다. 온몸이 델 것같이 뜨거워서 아프리카에라도 와 있는 기분이었다. 봉고차 안은 36.5도의 축축한 자궁 같았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태아 같은 나는 꼼지락거리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었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열기와 사람들이 내 비밀을 알지도 모른다는 상당히 현실적인 가능성 앞에서 내 몸의 모든 땀샘이 그동안 비축해둔 땀을 일제히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한 게 틀림없었다. 속옷은 땀에 흥건하게 젖어 짙은 색으로 변했고 카펫 위에는 축축한 몸의 윤곽이 새겨졌으며 온몸이 땀으로 번들거렸다. 조금 전, 수납함 위에 올려놓은 캠핑용 이소부탄 가스버너로 저녁식사 준비를 하던 차에 내 봉고차 옆에 차 한 대가 주차했다. 창문 너머로 그 차를 보자마자 나는 블라인드를 내리고 버너를 끈 다음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것은 다름아닌 경비원 순찰차였다.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도대체 왜 저 차가 여기 섰지? 내가 봉고차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누군가 본 건가? 아니면 누가 나에 대해 일러바쳤나?’ ‘제발 봉고차 문을 두드리지 마. 제발! 노크하지 마!’ 경비원이 자동차 시동을 끄는 사이, 나는 숨죽이고 있었다. 순찰차의 문이 끼익 열렸다가 쾅 하며 닫혔다. 경비원의 구두 소리는 마치 게슈타포의 군화 소리처럼 아스팔트 길에 울려퍼졌다. 내 생각대로 경비원이 봉고차를 조사하려 한다면 정황상 분명 상당히 미심쩍어 보일 것이었다. 창문마다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고 운전석과 조수석 뒤에는 커다란 검은색 천이 드리워져 있어, 경비원을 비롯한 모든 행인이 봉고차의 뒤쪽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비록 블라인드와 천 때문에 내 모습은 안 보이겠지만 경비원은 틀림없이 봉고차의 앞쪽을 마음껏 둘러보면서 조수석에 놓인 바지와 땀투성이 흰색 티셔츠가 비죽 튀어나와 있는 빨래 바구니를 확인했을 것이다. 아니면 봉고차 앞 유리에 뿌옇게 서린 김이(냄비에서 나온 수증기 때문에) 수상쩍어 잠시 차를 세웠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살짝 열어둔 창문 사이로 브로콜리와 양파 냄새가 새어나갔거나. 지금이라도 경비원이 창문을 두드린다면, 그의 질문에 대답하고, 왜 내가 봉고차 안에서 반쯤 벗은 채 음식 준비중이었는지, 왜 지난 4개월간 캠퍼스 주차장에서 몰래 살아왔는지 설명해야만 했다. 그러면 그다음 상황은 불 보듯 뻔했다. 대학 행정처는 내 주차증을 박탈할 테고, 나는 캠퍼스 내의 모든 주차장에 출입이 금지될 것이다. 봉고차에서 살 수가 없으니 보다 일반적이고 비용이 많이 드는 생활방식을 택해 남들처럼 아파트를 빌리고 예쁜 커튼을 달고 방 분위기에 어울리는 러그를 사러 다녀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넉 달 전에 나 자신과 한 약속을 깰 수밖에 없다. 다시 빚더미로 빠져드는 것이다. 듀크대 인문교양 프로그램 대학원생인 나는 2009년 봄학기 내내 남몰래 봉고차에서 지냈다.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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