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머리말 서적이란 것은 한 나라 인심,풍속,정치,산업,문화,무력을 산출하는 생식기이며, 역대 성현,영웅,고인,지사,충신,의협을 본떠 전하는 사진첩이다. 서적이 없으면 그 나라도 없을 것이다. (, , 1908년 12월 18일자) 일찍이 개화기 사상가이자 역사학자였던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가 책의 가치를 논파한 글의 일부다. 단재는 책이야말로 한 나라의 문화, 정치, 풍속을 만들어내는 자궁과 같고, 선인과 지사의 뜻과 정신을 오롯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앨범과 같다고 했다. 더욱이 책이 없으면 나라 또한 없다고 보았다. 당시 서적 출판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렇게 강변한 것이었다. 그렇다. 꺼져 가던 대한제국의 현실을 직시한 단재는 단순히 책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책의 역할을 민족과 국가 담론으로 연결, 확장시켜 나간 것이다. 이렇듯 단재가 고서 간행의 의미를 적극 피력한 것은 당시 19세기 말~20세기 초 서점과 출판사에서 서양 서적의 간행과 수입에 맞서 국내 기존 서적(고서)을 출판하고자 한 이유와 관점을 단적으로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때 그는 그 논리를 두 가지 키워드, 즉 고서(古書)와 출판에서 찾고자 했다. 서양 문물이 들어오고 신서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새삼 책의 가치와 존재 의의 자체를 부연코자 함이 아니라 ‘옛 것’과 ‘고유한 것’을 현재의 문제로 환치시켜 적용시키는 문제, 곧 고서 출판과 보급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실천적 행동을 출판업자에게 주문코자 했던 것이다. 당대에 이런 단재의 주장과 문제의식을 실천하며 살았던 이들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한남서림(翰南書林)의 주인 백두용(白斗鏞)이다. 한남서림은 신서와 고서의 간행과 매매, 유통이 활발하게 나타나면서 그 체계를 조금씩 갖춰 나가던 시기에 서점업과 출판업을 겸했던 초창기 대표 서점 중 하나였다. 회동서관과 신구서림 등 일부 서점이 한남서림보다 다소 앞서 나타났지만, 한남서림은 여느 서점과 달리 고서만을 취급했으며, 후에 출판업을 추가하면서도 고서 출판만을 고집했던 유일무이한 서점이었다. 한남서림은 당시 다른 서점과 달리 출판업보다 서점업에 중심을 두었고, 출판업의 경우에도 고서 간행에 초점을 두는 등 시류와 다른 영업 노선을 취함으로써 개업 후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시대 흐름에 따라 돈 벌이가 되는 잡지, 교과서, 문방구, 신서 간행으로 출판 대상을 바꿔 서점 경영을 했던 대다수의 서점과 달리 한남서림은 고서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며 그 정체성을 고수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왜 백두용은 시류를 좇지 않고 고서만 고집했던 것일까? 1930년대에 한남서림을 팔게 되었을 때, 왜 하필 문화재 수집가로 유명한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에게 넘게 주게 된 것일까? 아니 간송은 당시 그 많던 서점 겸 출판사 중에서 왜 하필 한남서림을 인수해 서점을 운영하려 한 것일까? 이 책은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해 답하고 있다. 여러 대에 걸쳐 화원(畵員)으로 활동한 백두용 집안 내력과 선친 대의 장서(藏書), 그리고 백두용의 서점 경영이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나타났음을 여기서 밝히고자 했다. 이는 백두용이 한남서림을 설립하고 서점 문을 열었을 때, 서점 개업이 당시에 커다란 사회적 관심을 끌고 내노라 하던 당대 유명 인사들과 관료들이 앞 다투어 한남서림의 등장을 축하하고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이유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남서림 개업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일대 사건과도 같았다. 그 구체적 증거를 한남서림에서 편찬한 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은 1913년~1916년에 당시 사회 각계 인사들이 한남서림 개업을 축하하기 위해 써준 시문을 모아 펴낸 첩을 말한다. 여기에 참여한 이들은 총 325명에 이르고 당대 내노라 하던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시문의 내용을 보더라도 서점 개업을 축하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남서림이 세워지게 된 이유와 백두용 집안의 내력, 백두용과 일가친척에 대한 인물평, 그리고 한남서림 등장을 바라보던 당대 지식인의 평가와 사회 인식의 문제까지 담겨 있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더욱이 참여자와 그들의 글은 백두용의 대인관계와 한남서림의 초창기 성격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이를 위해 참여자 325명의 면면을 일일이 살피고, 그들이 에 남긴 글 중 의미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은 그 내용까지 함께 소개하고자 했다. 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파악함으로써 백두용의 대인관계는 물론, 초기 서점 설립과 운영의 실체, 그리고 사회의식을 고구할 수 있다. 또한 내용을 토대로 한남서림의 설립 시기가 1910년 이후의 일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한남서림과 백두용, 그리고 한남서림 간행물 등 제반 사항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최초의 성과물에 해당한다. 외에도 한남서림 소장 도서 장부인 등 여타 자료를 가급적 많이 모아 백두용의 생애와 평가를 보완해 내는 한편, 전국에 흩어져 소장되어 있는 한남서림 간행물의 총 목록을 작성해 그 실체를 보여주게 된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또한 한남서림이 근대 서적 출판 유통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고구하고 서점경영자,출판인으로서 백두용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탐구했을 뿐만 아니라, 간행물을 통해 근대 서적 출판문화의 일 풍경을 엿볼 수 있었던 것도 적지 않은 소득이라 자부한다. 그동안 백두용과 한남서림에 관해 가려져 있던 면모가 본 연구를 통해 좀 더 다채롭게 드러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또한 향후 한남서림 간행도서 연구와 출판문화의 양상 파악에도 적잖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초 한남서림의 형성과 경영, 그리고 그 간행물에 대한 이해는 결국 20세기 초 근대서점의 형성과 성장, 출판 및 유통사의 한 단면을 조명하는 것의 다름 아니다. 백두용이란 서적상의 활동상과 출판,유통사에서의 한남서림의 역할을 다면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일제강점기 서적상의 활동과 출판,유통의 제도적, 사회적 풍경을 이해하는 첩경으로 삼을 수 있으리라 자평한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만 4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나 자신과의 싸움뿐 아니라, 자료와의 싸움이기도 했다. 강원대 국어교육과 학부생들과 대학원생이 일부 나를 도와주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학부생 중에는 이미 졸업한 지 3년이나 지난 이들도 있다. 어현동, 김미희, 이정호, 이단비, 박지선, 남진화, 그리고 박사과정생 김미정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어려운 출판 여건에서도 흔쾌히 출간을 허락해 주신 역락 출판사 사장님께도 고마운 마음을 표하고 싶다. 근대 서적과 출판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후원해 주시는 멋진 출판인이시기에 더욱 고마울 따름이다. 예쁘게 책을 편집해 주신 박선주님께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초고는 가족이 사는 캐나다의 작은 도시 키치너에서 끝마칠 수 있었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한 겨울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맺은 결실이라 더욱 행복하고 소중하다. 옆에서 늘 응원해 주는 아내와 두 딸은 언제나 내 연구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기쁨 그 자체이다.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6월에야 드디어 탈고를 했다. 이제야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달았을까? 자문해 본다. 2013년 6월 파란(波蘭) 이민희(李民熙)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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