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언어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늘 수업 자료를 선정하고 진행하는 데 고민하였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크고 한국어 학습자 또한 대중매체에 흥미가 큰 만큼, 언어 수업을 위한 교육용 자료를 매체에서 선택한 경험이 많다. 교실 현장을 지키는 여러 선생님들도 그러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학습자의 적극적 참여를 기대하며 준비한 ‘매체 활용 수업’의 성공률은 얼마나 되던가? 한국어 교사는 매체를 접목한 교실에서 암초를 만난다. 먼저 학습자에게 생소한 단어들이 교사의 발목을 휘감는다. 설령 문장을 이해했더라도 한국 사회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해석이 되는, 함축성이 높은 문구들이 교사의 말수를 늘린다. 그렇게 어렵게 해석을 마쳐도 학습자가 공감을 못한 표정이면 결국 교사는 좌절한다. 그 투명한 유리벽에 부딪힐 때마다 교사가 새로운 설명을 해야 하므로 점차 수업 시간이 부족해진다. 학습자의 흥미와 기대로 들떴던 수업 분위기는 부담감으로 무거워져 있고, 교사는 적절한 선에서 계획을 접어 버린다. 수업을 준비한 교사가 이렇게 힘든 과정을 겪는다면, 하물며 학습자의 심정이야 어떠하랴? 교사도 학습자도 지치는 이런 일은 왜 생긴 것일까? 매체 활용 수업의 성공률은 매체언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다. 한국어 교수·학습에서 교사는 매체를 주로 학습자의 흥미를 높이는 데 쓴다고 한다. 그리고 매체 속 어휘와 문법 표현으로 교육 자료를 가공하여 이를 활용한다. 그런데 사실 한국어 의사소통에 익숙하지 않고 어휘력이 부족한 한국어 학습자에게 사회생활의 언어를 포함한 매체 속 언어는 무척 어렵다. 교사가 교수·학습 설계 시 언어적 표현을 쉽게 제공하려 하면 할수록, 듣기나 읽기 등 이해 과정에서 교사의 설명은 더 늘어나고 적용 표현을 연습할 기회는 줄어든다. 이해가 부족한 학습자가 이해를 위한 설명을 듣다가 더욱 수동적인 존재가 되는 악순환이 연속되는 것이다. 사실 모어로 된 매체언어도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 이해가 완벽히 끝난 다음에야 적용을 시작하는 모어 화자는 없다. 어떤 원어민 화자가 대중매체를 보면서 모르는 단어와 이해 못하는 문구가 끝날 때까지 화면을 정지시키던가? 완벽한 이해를 원하는 수신자들은 거의 없고, 완전한 이해가 필수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불완전한 이해 과정에서 수용된 내용을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적절히 적용하는 것이 매체 수신자들에게 더욱 유의미하다. 한국어 학습자들도 의사소통력이 부족한 초급 단계에서부터 매체언어를 접한다. 그리고 언어적 메시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이를 일상생활에서 경험을 통해 해석하고 활용한다. 숙달도가 중요한 언어학습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또한 학습자가 듣기와 읽기의 완성도가 높아진 후에 말하기와 쓰기를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언어생활에서 이해 영역은 표현 영역과 통합되어 있다. 외국어 학습 시 초급 학습자는 자신의 수준에서 가능한 만큼 이해하고, 표현이 가능한 언어로 개작하면서 언어생활을 영위해 간다. 매체언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매체언어교육은 완전히 달라진다. 매체언어는 매체와 언어의 합이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매체언어교육도 매체, 언어, 교육의 합이 아니다. 매체 자체에 집중하면 매체언어는 기계 이해에 치우치고, 매체에 쓰인 언어에 집중하면 언어 사용의 맞고 틀림을 판단하는 데 기운다. 매체언어교육은 매체를 다루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도, 매체에 쓰인 언어의 진위와 모범을 알려주는 교육도 아니다. 매체의 언어를 매체언어로 보면, 문자도 말도 영상과 그림도 모두 함께 매체의 표현 도구 중 하나로 다가온다. 그제서야 이해가 덜 된 문자와 말에다가 상상력이 ‘맥락의 다리’를 놓는다. 그 상상력은 학습자의 몫이다. 매체 문식력으로 매체별 메시지를 읽어내게 하고, 이를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에서 한국어로 생산하게 하는 활동으로 구상하는 것이 바로 미디어 시대의 수정된 언어교육법이다. 유독 분위기가 좋았던 2012년 봄 학기에, 한국어 매체언어교육에 뜻을 모은 이들이 있다. 당시 박사과정이면서 현직 한국어 강사인 그들은 매체언어의 본뜻에 눈을 크게 뜨고, 매체언어를 읽는 눈을 학습자와 공유하는 수업을 설계하기로 하였다. 저자들의 주 관심분야인 전래동화, 광고, 드라마, 뮤직비디오, 다큐멘터리, 노래에서 매체언어를 알아보고, 이것을 적용한 수업 구상을 해 본 것이다. 만약 대학 학부와 대학원의 한국어 매체언어교육론에서 이 책을 만난다면, 매체언어의 의미와 매체별 언어의 이론과 실제를 저자들과 함께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한국어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이 이 책의 내용을 공유한다면, 교육 현장에 잘 맞는 매체언어 교수·학습 설계를 함께 교실에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관련 이론을 정리하여 소개하고 교육적 적용례를 보여준 각 장은 순서대로 이미향, 엄나영, 곽미라, 김은희, 성은주, 김미경, 손시진이 집필하였다. 먼저 제1장에서 매체언어의 의미와 한국어 매체언어교육을 알아보았다. 저자는 대학에서 매체언어를 15학기간 수업하면서 매체언어를 진지하게 생각해 왔다. 대중매체와 매체언어의 정의와 특성, 매체와 더불어 사는 삶은 그때 고민한 것이다. 또한 한국어 교실에서 매체언어가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 12년간의 한국어 교사 경험에 기반을 두고 하나의 모형으로 예를 살펴 보았다. 제2장부터 제7장까지는 매체별로 매체언어를 이론적으로 살피고 교육적 적용을 해 본 것이다. 각 장의 순서는 시각적 도구에 의존하는 인쇄매체에서 출발하여, 시청각을 겸하는 매체를 거쳐 청각 매체로 옮기는 과정으로 되어 있다. 제2장에서는 전래동화의 보편적 원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언어를 가르치고, 인쇄매체인 전래동화의 언어와 문화교육을 연계하고자 하였다. 제3장에서는 광고를 통해 매체언어의 이론과 실제를 살폈는데, 특히 이 장에서 인쇄 광고·라디오 광고·영상 광고를 대비함으로써 시각·청각·시청각 매체의 특징을 자세히 살피려 한다. 제4장 드라마, 제5장 뮤직비디오, 제6장 다큐멘터리는 영상언어를 주축으로 한 매체이다. 영상을 읽어내는 매체 문식력에 집중하면서, 각 매체를 수업에 어떻게 달리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하였다. 제7장은 노래를 활용하여, 청각을 중심으로 하는 매체 문식력으로 한국어 교수·학습을 설계하고 이를 적용할 방안을 마련하였다. 1867년에 세워진 세계적인 필름회사 아그파(AGFA)가 2005년 5월 28일에 파산을 선언하였다. 한편, 1865년에 설립된 노키아는 21세기에도 시장점유율이 높은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두 기업의 예는 시대의 변화로 부침(浮沈)한 전형적 대조례이다. 이를 두고 비단 기업의 생존 원리에만 적용되는 에피소드로 넘길 수 있을까? 21세기의 언어를 가르치는 21세기의 교사도 같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여러 명이 뜻을 함께 하기로 한 만큼 집필 모임이 잦았다. 각자의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힘든 과정에서도 이 책의 집필 모임을 한결같이 앞세우고, 마무리할 때까지 꾸준히 집중해 준 집필진들에게 무엇보다 감사하다. 열심히 했지만 욕심만큼 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그럼에도 부족한 책을 기꺼이 출판해 주신 역락출판사의 이대현 사장님과, 저자가 여럿인 연유로 제각각이었던 글로 편집하는 데 무척 고생하신 박선주 님께 감사를 표한다. 2013. 7. 여름날에, 여름과 같이 잘 자란 무성한 생각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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