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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예수 보수의 예수 - 인간은 예수를 어떻게 읽어왔는가

진보의 예수 보수의 예수 - 인간은 예수를 어떻게 읽어왔는가

주원규

바다출판사·2015-03-16

  • 종교
  • KDC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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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서론 예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예수는 복잡한 해설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그 당시 유대인의 전통과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살아온 시대의 산물이다. 따라서 그의 모든 말씀과 행위, 이른바 언행은 당시 유대 지역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파악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는 신성의 담지자인 우주적 존재이기도 하다. 우주적 존재라 함은 예수가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서뿐만 아니고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이고도 신비스러운 영혼의 울림을 일으키는 존재임을 뜻한다. 두 측면 모두 예수를 말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놀라운 것은 예수의 존재에서 역사적 배경만으로는 해명될 길 없는 신비가 추출된다는 점이다. 어디 그뿐인가. 우주적인, 이른바 신앙 대상으로 예수를 종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의외로 예수의 인문학적 진면목이 노출되기도 한다. 하여, 예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가 살았던 정치, 사회, 경제, 종교적 배경을 살펴봐야 함은 물론, 인간이 어떻게 예수를 해석해왔는지 대략의 관점을 살펴보아야 한다. 어느 한 관점에 얽매이지 않고 포괄적으로 살피면 예수를 더욱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를 보는 두 가지 관점 2천 년의 세월 동안 그리스도교에 대한 관심은 그야말로 강하고도 또렷하게 지속되어 왔다.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적 위세는 전 세계 30퍼센트가 넘는 신자를 양산했고, 그리스도교의 경전인 성서는 2,4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 보급되었다. 이렇게 널리 전파된 만큼, 그리스도교의 종파도 세분화되었다. 알려진 종파만 해도 수천 개에 이를 정도이며, 예수라는 종교 대상을 자신들의 교리에 맞게 재구성한 이른바 유사 기독교로 알려진 신흥 종교 숫자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아진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입장이 있음에도 예수를 보는 신학적 관점은 크게 두 줄기로 나뉘는 양상을 보인다. 그 하나는 우주론적 시선으로 예수를 바라보는 보수적 관점이며, 또 하나는 인문학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진보적 관점이다. 이를 두고 흔히 보수 신학과 진보 신학이라 부른다. 물론 성서의 모든 대목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두 가지 관점이 명확하게 대립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경향이 있음은 분명히 부정할 수 없다.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이렇듯 정치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종교 분야에서도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이는 경제, 문화, 역사 인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보수 신학이라 부르는 우주론적 관점의 핵심은 예수를 신으로 보는 것이다. 우주론적 시각에서 바라본 신은 인간과 끝없는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는 저 높은 곳에 존재하는 초월자이다. 신은 영원히 존재하고 인간은 유한하고 사멸한다. 신은 변화하지 않으며, 인간은 변화한다. 인간은 하늘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 땅에 속한 존재이며, 신은 고통을 당하지 않지만 인간은 고통을 당하며 살 수밖에 없는 허무한 존재이다. 신과 인간의 완벽한 차이 속에서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죽음의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바로 신적 존재에 참여하는 길이다. 고대 희랍 철학에서부터 근대 서양 철학에 이르기까지 종교, 철학의 주된 주제는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해 영원한 이데아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명상과 관조, 고행을 통해, 또는 철학적 고상함을 부단히 연마함으로써 인간은 영원성과 불멸성의 편린을 넘어서는 생명을 얻게 되는데, 이를 곧 구원이라 말한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다. 우주론적 관점에서 예수는 인간이 신의 존재에 참여하여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 인간의 본성을 취한 신으로 인식된다.#1 예수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었으며, 그는 하나님과 영원 전부터 함께 존재한 영원하고 불멸한 말씀, 곧 로고스다. 영원한 로고스가 인간의 몸을 취하여 인간과 똑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인간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인식조차 할 수 없던 신, 하나님을 말씀이 몸이 된 존재를 통해 인식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되었다. 구원이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는 신적 본질과 광채를 인식하고, 그 인식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신격화되는 데 있다.#2 곧 자신의 본래적 신적 본성을 회복하는 데 구원이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출발한 보수 신학은 인간의 참여를 믿음으로 대신한다. 우주론적 관점에서 한 가지 결여되어 있는 건 인간의 죄성이다. 인간의 죄성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가 바로 십자가다. 예수의 십자가는 하나님인 인간을, 그 신적 본성을 인간의 생각과 의지로는 도저히 깨우칠 수 없음에 대한 역사적 종언이다. 그러므로 이제 인간은 자기 지식이나 지혜, 명상과 관조를 통해 신적 본성을 회복하는 참여의 행위가 교만이며, 허위임을 고백하게 된다. 그와 함께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선포하는 믿음의 참여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보수 신학의 구원론이다. 이러한 접근을 무슨 이유로 ‘보수’라 부르는 것인가. 여기에 쓰이는 ‘보수’란 단어엔 어떤 편견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관점의 성질을 묘사한 것뿐이다. 우주론적 관점에서 나타난 예수의 가르침은 신약성서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예수 가르침에 대한 역사적 토대는 흔히 알려진 대로 구약성서다. 이 가르침들은 신적 가르침, 신적 영감으로 에워싸여 있다. 그러므로 성서엔 인간이 생각하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신의 가르침이 이해 가능한 언어로 주어진 상태. 그 상태의 신비만이 있을 뿐이다.#3 이러한 신학적 관점이 ‘보수’인 이유는 경전으로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록을 신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절대무오의 기록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파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보수라 부르는 것이다. 보수의 최대 가치는 주어진 것을 보존하여 후대에 계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 신학의 주장을 가장 타당성 있게 뒷받침해 주는 명제는 바로 다음 문장이다. “인간은 변할 수 있으나 신은 변하지 않는다.” 모순적이게도 보수의 가치를 말하면 필연적으로 그 반대 지점의 가치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진보의 가치, 진보 신학의 관점이다. ‘진보’의 관점은 ‘보수’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진보’가 ‘보수’의 종속변수란 뜻은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발견하고 참여하는 것이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주어진 몫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보수’는 그것의 가치를 신적 가치로 보는 것이며, ‘진보’는 인간의 가치에 주목하는 데 있어서 행동양식, 인식의 층위가 나뉜다. 진보 신학은 인문학적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읽고자 한다. 진보 신학은 근대의 세계관에서 태동했다. 근대에 들어서 인간의 의지로 운명을 극복하고 인간 자신이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이 대두되었다. 자신을 인식한 인간은 자기 바깥에 있는 모든 것을 대상화시키고 그들에 대해 자기를 주체로 인식한다. 이것이 이른바 ‘인간 주체성의 원리’ ‘대물화의 원리’이다.#4 이러한 근대적 세계관이 유입되어 예수를 하나님의 신적 본성을 담은 신으로만 보던 관점에서 벗어나 예수를 인간적 존재로 파악하는 관점을 얻을 수 있었다. 예수를 신성과 인성을 가진 영원한 로고스,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 생각하기보다 모든 인류가 지향해야 할 완전한 인간의 모범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를 풍미한 칸트와 헤겔 철학의 주장들, 그 주장들을 신학적 원리에 흡수한 신학의 흐름은 바로 예수를 인간으로서 바라보고, 그로써 인류의 원초적 근원을 발견하려는 시도와 맞물려 있으며, 그런 맥락에서 성서를 인식함으로써 보수 신학과 결정적인 차이를 낳았다. 진보의 관점에서 본 성서는 인간의 책, 인간의 기록이다. 수많은 저자가 여러 시대에 걸쳐 기록한 결과물로, 이는 유한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시대적, 언어적, 사상적 한계를 안고 있는 편집의 결과물이라고 보는 것이 진보의 관점이다. 그래서 문맥, 문장, 이야기를 각 시대에 맞춰 새롭게 읽어야 하고, 역사적 사실 여부도 의심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성서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다시금 그 의미를 재구성해야 한다. 더 이상 성서는 신의 영감으로 기록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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