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시인의 말 아지랑이의 다림줄 내 나이 이제 갓 쉰이니 무릇 백세시대의 반을 산 셈이다. ??논어??의 위정편에 따르면 ‘지천명地天命’에 이르러야만 하는 나이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앞선 사십대에 ‘불혹不惑’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굳이 발달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선행先行의 과업을 이루지 못한 것이 이후의 삶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되리라는 것을 쉽게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신년新年의 초두初頭부터 긴장감이 몸서리치도록 엄습掩襲함을 각별하게 자각하고 있다. 그런데 내 평생에 가장 춥고 눈이 많이 내렸던 겨울이 찾아왔다. 걸음을 재촉하는 빙판길 위로 오므리는 자화상이 스쳐갔다. 하지만 산행에서 바라보았던 눈꽃과 강을 건널 때마다 햇빛에 반사되는 결빙의 영롱함에 나는 넋을 놓은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어쩌면 겨울의 몸과 영혼과 같아서 나는 그 자연의 힘 앞에 경이로운 변화를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에도 또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 눈은 과거의 상처받은 기억을 지우고 있었고, 나는 이제 남은 반평생을 위한 웅숭깊은 출발지에서 깊고도 느린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나는 인생의 겨울을 바라보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계절의 순환도 한결같이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음력 새해를 넘기면서 다시 세시歲時가 일상 속에서 새롭고도 풍성하게 운용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불시에 찾아온 봄날 햇빛이 대지에 강하게 내리쬘수록 공기가 공중에서 아른아른 움직이면서 환상을 자아내는 착시를 가져오게 한다. 그것이 지난 나의 반백년 동안의 지지리도 못난 해묵은 ‘자아’였다면, 이제 나는 그 자아로부터 탈각하는 또 다른 미래의 생애를 꾸려나가고 싶다. 나의 장년長年이 ‘신생新生’의 자아가 되기 위해서는 다림줄이 필요할 것이다. 그 다림줄로 아지랑이의 꼬불거리는 자아의 줄을 수평과 수직으로 다려내려고 한다. 그 수평의 씨줄로 나의 일그러진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수직의 날줄로 하나님의 형상 속에서 온전히 자유롭게 될 것이다. 7장 7절에는 “다림줄을 가지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 계신 거룩한 장면이 나온다. 나도 바로 그 다림줄로 나의 인생을 숭고하게 평정해볼 요량이다. 이 9번째 시ㆍ평론집 ??아지랑이의 다림줄??이 나올 수 있 도록 항상 격려해준 내 주변의 사랑하는 벗님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특히 나는 원주의 토지문화관에서 3개월(2013年 6月 1日~8月 30日)동안 질박한 자연생활을 만끽하면서 이 책을 행복한 마음으로 끝낼 수 있었다. 여태껏 무슨 이유에서건 원고를 많이 쓰지 못한 까닭은 나의 어리석음과 게으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자리 수의 책들을 펴냈음으로 한편으로 부끄럽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다만 앞으로도 더 알찬 글들로 서로 만나서 대화할 수 있기를 소망할 따름이다. 2013年 8月 1日 잠실 여울목에서 祥雲 李炳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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