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고이케 마리코는 1996년에 으로 나오키상을 받고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만 해도 이름조차 생소했던 작가였다. 하지만 당시에도 일본에서는 장편, 단편 소설을 비롯하여 에세이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한 매우 역량 있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 그때의 인연으로 기회가 닿는 대로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서 읽다가 제4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1989년)을 받은 라는 깔끔한 단편집을 발견하여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2004년 번역하게 되었고, 그 후로 다시 장편 과 같은 작품을 소개하여 우리 독자들에게 작가의 기량을 보여줄 기회가 있었다. 이 단편집에 실린 네 편의 작품을 보면 하나같이 납량특집 같은 색깔을 띠고 있다. 각각의 작품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반전이 특히 흥미롭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이 바로 그 일상이 자신을 옭죄는 상황을 맞으면서 내면에 감추어져 있던 범죄 심리가 자기도 모르게 촉발되는 모습을 담담하게 펼쳐가다가 어느새 오싹한 결말을 맞게 되는 마무리가 절묘하다. 표제작 은 세상에 약삭빠르게 적응하지 못하고 운명에 순응하는 우직하고 순진한 여자의 이야기다. 간병을 맡았던 노인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동네에서 따돌림을 당하다 자신의 셋방을 엿보던 이웃 아파트에 사는 대학생과 친해지면서 그 우직함이 왜곡된 모습으로 변해가는 한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 에서는 동화 작가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주인공을 등장시켜 평범한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아집과 왜곡된 인격,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 숨어 있는 조용한 공포를 묘사하고 있다. 와 짝을 이루는 분위기이면서 동시에 최근에도 추리와 관능이라는 테마를 즐겨 다루는 작가의 기량이 한껏 농축되어 녹아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는 한마디로 공포소설의 범주에 들어가는 이야기다. 젊어서부터 남달리 개를 좋아했던 주인공이 거품 경제의 위기를 맞아 정리해고의 불안에 휩싸여 있는 상황에서 초등학생 딸이 주워온 낯선 개에게 모든 불행의 원인을 돌리고 집착하다 더 큰 불행을 맞이한다는 이야기. 은 관능과 탐미에 천착하는 작가의 개성이 돋보이는 전형적인 작품이다. 드넓은 저택에 은둔하듯 살면서 은밀한 방탕을 즐기는 재벌가의 외동딸 아이코를 우연히 알게 된 무명 배우 마사미가 그녀의 교묘한 덫에 걸려 서서히 나락으로 추락하는 내용. 고이케의 작품에는 살인이라는 비일상적인 범죄가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그런데 그 무시무시한 범죄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독자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 속의 살인을 은근히 이해하고 납득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이야기 중반까지의 흐름으로 보아 결코 살인으로까지 발전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지만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극적인 반전과 함께 누군가가 죽곤 한다. 정말 오싹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반전이다. 그리고 소설 읽기의 묘미 역시 이처럼 짜릿한 반전이 한몫을 한다는 데는 아무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모단등롱(중국의 옛 소설을 번안한 일본의 괴담 민화. 처녀의 유령이 모단등롱을 든 계집아이와 함께 연인을 찾아가는 줄거리로, 초롱불과 함께 나막신 소리만 들리고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장면 등이 오싹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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