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옮긴이의 말 | 아직도 겨드랑이가 축축이 젖은 느낌이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미국의 이야기들은 뉴욕을 중심으로 한 동북부 지방의 깔끔함 속에 추악함을 감춘 도시나 서부 지역의 화려한 바닷가와 야경을 배경으로 한 것이 많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앞서 말한 여러 곳보다 훨씬 더 미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남부 플로리다 주의 변두리 지역을 무대로 삼고 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덥고 습도가 높아 잠시라도 바깥에 나갔다 들어오면 금세 맺힌 땀방울이 등을 타고 흐르는 곳. 한참을 걸어도 자동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한적한 도로변에 띄엄띄엄 들어선 집들. 그런 곳에서 쏘는 듯한 햇빛에 눈을 제대로 뜨기도 어려운 한낮에 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가는 한 소년이 있다. 먼지가 풀썩거리고 뜨겁게 타들어가는 길 위에서 몸을 피할 방법은 일면식도 없는 남의 집 문을 두드린 다음 집주인을 잘 구슬려 집안으로 들어가 에어컨 바람을 쐬는 것뿐이다. 그마저도 쉽지는 않지만. 주인공 소년은 대학 등록금을 벌려고 집집이 찾아가 책을 파는 직업을 임시로 택했다. 막상 시작해보니 생각보다 적성에도 맞는 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는 해도 남의 집에 찾아가 떠벌리며 사기 아닌 사기를 쳐야 하는 게 왠지 내키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아무 생각 없이, 돈을 위해 살던 소년에게 생각지도 않은 사랑과 살인 사건 그리고 살인 사건을 주도한 ‘암살자’가 동시에 나타난다. 살인범으로 몰릴지, 자신이 다음번 시체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먹고살기 위해서도 아니고, 일류 대학에 합격한 죄로 등록금을 벌려고 길거리로 나온 주인공은 이제 언제든 포기하면 그만인 외판원이 아니다. 얽히고설킨 살인사건에서 빠져나와야 하고, 적인지 동지인지 친구인지 배신자인지 모를 암살자와의 관계도 정리하는 동시에 사랑도 이루어야만 한다. 이 작품은 몇 백 년 전의 역사 속에서 숨 쉬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던 데이비드 리스가 처음으로 쓴 현대 소설이다. 그는 어려서 플로리다에서 자랐고, 한때 백과사전 영업을 했으며, 매우 엄격한 채식주의를 고집하는 사람이라고 하니 다분히 자신의 경험을 살린 작품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덥고 짜증나는 플로리다를 답답해하며 떠나고 싶어 하는 주인공 소년의 간절한 마음이 진정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암살자 말고도 작품에 등장하는 기묘한 사람들도 온갖 인종이 섞여 사는 미국 남부를 잘 보여준다. 마약과 섬 생활에 대한 동경에 미쳐 가족을 버리고 떠나버린 아버지,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받아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는 사내, 한몸이던 동생을 잃고 주위의 놀림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으며 성장한 여인, 가족 하나 없이 이동주택에서 개를 벗 삼아 외롭게 사는 사람들. 또 이 이야기는 성장 소설의 느낌을 준다. 물론 기본은 흥미로운 스릴러지만 여러 가지 노력을 통해 세상을 헤쳐 나가려는 어린 청년이 엉뚱한 사람을 만나 며칠 만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자라면서 다른 사람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재미나게 그려져 있다. 소심하고 겁 많고 여자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모르던 소년은 조금씩 자신만의 생각이 있는 사내로 변해 간다. 그리고 자신이 안에 품고 있던 여러 가지 능력도 발견한다. 소년을 이끄는 암살자는 나름대로 주관이 뚜렷하며 소신 있게 세상을 사는 사람이다. 주인공 소년에게 이런저런 충고를 하는 것은 물론, 주입식 교육도 주저하지 않는다. 숙제를 내주고 소년이 스스로 풀 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일반인이 보기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는 기인처럼 보이지만, 단지 소수라는 이유로 그들을 비정상으로 취급해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인물이다. 일부 내용이 지나치게 교훈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따라가다 보면 보통 사람이 평상시 깊이 생각지 못하던 분야를 들여다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읽은 뒤 한 가지 흠이라면 좋아하던 삼겹살 안주를 한참 동안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비위가 좋고 성격이 낙천적인 분들은 아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무방하다. 남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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