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머리말 | 세상에 책은 이미 많다. 아니 너무 많다. 그럼에도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또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보탠다. 대중을 모아 놓고 선동하는 목소리로 쓰지 않았다. 각자의 소중한 삶은 선동의 대상이 될 수 없 지 않은가? 선동보다는 삶에 대한 성찰을 권유하는 목소리에 가깝기 를 기대했다. 이 책은 나의 삶과 대화를 나누는 독백이자,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비평적 방백이기도 하다. 독자가 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 독백은 대화로 바뀔 것이다. 언제나 그렇 듯 독백보다는 대화가 좋다.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친구라 한다. 대부분의 작업은 연구실보다는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졌다. 어디 를 가든 태블릿 피시와 함께 했다. 첫 원고는 도쿄에서 썼지만, 방콕 발 깐짜나부리행 기차와 오스트레일리아의 브리즈번에서 골드코스트로 가는 기차에서 쓴 원고도 있다. 어떤 원고는 사람들이 사랑하고 다투기도 하고 심지어 공부까지 하는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 또 다른 원고는 물건 파는 잡상인도 등장하고 노약자 배려석을 두고 언쟁도 벌어지는 지하철 3호선 안에서 썼다. 그렇게 쓴 원고는 잠이 부족한 직장인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잠들거나 이어폰을 끼고 서로에 게 무관심한 채 음악도 듣고 다운받은‘미드’도 보고 팟캐스트도 듣는 일산과 강남을 오가는 M7412번 버스에서, 강남역에서 아주대학교까 지 가는 3001번과 3007번 버스 속에서 수정되었다. 학자가 상아탑 취급을 받는 대학 울타리의 보호 속에서 특별한 삶을 살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1퍼센트에 속하는 특별한 사람과 그에 속하지 못하는 99퍼센트의 삶으로의 양극화가 가속하는 사회의 광풍으로부터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덕택에 대학은 예전에 누리던 특별한 성소聖所의 지위를 박탈당했다. 성소 지위의 박탈은 분명 노스탤지어의 시선으로 보자면 일종의 타락 현상으로 보인다. 이슬만 먹고 사는 듯 보였던 대학 안의 학자가 오물을 뒤집어쓴 것처 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학이 더 이상 사회의 특별구역도 아니 고 학자가 대학이라는 기업화된 조직에 의해 고용된 임금노동자의 처지에 가까워지면서 얻게 된 가능성도 있다. 사회학은 사회를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다. 사회학이라 는 근대 학문의 정당성의 뿌리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 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다. 만약 사회학이 어떤 한 개인의 삶도 설 명할 수 없다면, 혹은 그 연구 대상이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삶으로부터 완벽하게 유리되어 있다면, 사회학은 학자라는 전문가 집단의 호 사스러운 말잔치에 불과할 것이다. 대학과 학자를 둘러싸고 있던‘특 별보호명령’이 해체되었을 때, 호사가들의 허망한 지식 견주기나 사 회조사기법의 현란한 테크닉에 의해 살해당할 지경에 처한 사회학이 라는 학문은 그‘마지막 비상구’를 사회 속에 살고 있는 구체적인 사 람들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의 회복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본래 학자는 사유의 대리인이다. 직접적으로 사회에 유용한 그 어떤 것도 생산해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학자의 존재가 무익하다 고 판단되지 않는 이유는 사유의 기능이 학자라는 전문집단에게 위 임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유의 대리인으로 위임장을 받았기에, 학자 의 전문성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희한한 조어를 만들어 내는 능 력이 아니라 보편적 삶에 대한 성찰을 대리할 수 있는 능력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 사회학이 전문화의 길을 걷는 동안 잃어버린 사람들의 삶에 대 한 해명으로 우리를 이끄는‘아리아드네의 실’을 찾기 위해 사회학의 고전들을, 그리고 사회학의 분과학문적 습관 때문에 사회학적 요소 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책들을 다시 읽기 시 작했다. 책을 고른 기준은 학자들의 첨예한 논쟁도 책을 쓴 학자의 저명도도 아니었다. 책은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생각 할 수 있는 실마리의 제공 여부에 따라 선정되었다. 책을 읽고 그 책에서 영감을 받아 글을 쓰는 동안‘삶의 평범성이 학문적 보편성의 근원’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존중하고자 했다. 학문의 보편성이란 자연과학의 법칙처럼 역사적으로 변화하지 않은 초역 사적인 법칙을 의미하지 않는다. 학문의 보편성은 그 사람이 교양 독 자든 전문학자든 교수든 혹은 학생이든 상관없이 누구나 노출되어 있고 공유할 수밖에 없는 삶의 평범성에 있다. 책에 관한 전문적 식 견을 구비하고 있는지 여부에서 학자와 학자가 아닌 사람은 분명 다 르다. 하지만 태어나서 학교를 다니고 성인이 되어 직장을 얻고 아등 바등 살면서 부딪히는 삶의 굴곡과 그 굴곡 속에서 피할 수 없는 희 로애락이라는 감정에 주목한다면, 학자와 학자가 아닌 사람 사이의 직업상 다름이 무색해질 정도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놀랄 만큼 비슷하다. 전문학자의 스펙트럼에서 책의 핵심 개념을 추출하여 설명하고, 한 학자를 분과학문의 역사 속에서 파악하여 평가하는 책 읽기 방식 은 포기했다. 그 대신 삶을 구성하는 키워드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책을 읽었고, 그 키워드에 대한 생각을 이으면 마치 조각보처럼 삶에 대한 생각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누구나 그러하듯 고통·회 의·의심·기대·분노·질투 등등으로 버무려진 삶이라는 맥락을 통 해 책과 만났다. 책을 통해 나의 삶과 만나고 그 흔적을 원고로 써내 려 가면서, 나의 삶이 다른 이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했 다. 이 책은 한 사회학자가 경험한 세상에 대한 자전적 기록이자, 자 기도 모르는 새 사회학자였던 세상 사람들의 경험이 하나로 묶이는 공간이자, ‘자전적 사회학’이라고 조심스럽게 이름 붙일 수 있는 시도 를 위한 첫발자국이다. 어느 책이나 그러하듯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저자들이 없었다면, 이 책 은 불가능했다. 그 책의 어깨 위에 올라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첫 번째 원고를 어린아이가 동화책을 읽듯 낭독하며 즐겁게 읽 으셨던 아버지와 원고에 대한 의견을 알려 주었던 아주대학교 사회 학과 대학원생들의 관심도 힘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이 이 런 형태를 취하는 데 결정적인 조언과 눈에 보이지 않는 수고를 해 준 사계절출판사의 편집자 조건형 씨에게 직접 전하지 못했던 감사 의 말을 전하고 싶다. 대부도에 있는 경기창작센터의 레지던스에 입주해 난생 처음 작 은 텃밭에서 허브 농사를 지으며 원고를 마무리했다. 도시에서 싹만 겨우 틔웠던 메모라는 씨앗이 글 농사를 통해 책으로 완성되는 데, 여름 내내 쑥쑥 잘 자라던 허브가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뜨거운 여 름 원고를 마무리하는 동안 바질은 스파게티의 맛을 완성하는 데 도 움을 줬고, 민트는 기꺼이 모히또의 재료가 되어 주었다. 이 책은‘프롤로그’,‘에필로그’와 더불어 각각 독립된 스물다섯 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분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독자들 은 반드시 편집된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또한 이 책에서 다루 고 있는 저자와 책들에 대한 설명은 끝 부분에‘키워드로 책 읽기’로 별도로 다루었다. 쌀은 누룩을 만나야만 술이 된다 했다. 이 책은 명주는 아닐지라 도 잔치를 위해 정성과 관심으로 빚은 술과 같다. 술을 나누는 자리를 우리는 잔치라 하고 서양에서는 심포지엄이라 한다. 이 책은 우리 가 함께 바쁘다는 핑계로 돌아보지 못했던 자신의 삶과 마주하는 잔 치로의 초대장인 셈이다. 2013년 경기창작센터 레지던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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