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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역사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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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HD역사스페셜 (원작), 박기현 해저

효형출판·2007-02-10

  • 역사
  • KDC 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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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한 나라의 운명은 어떤 지도자를 만나는가에 달렸다. 간국지기幹國之器라는 말은 국가를 다스릴 기량이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이렇게 중요한 제왕의 기량이 조선 중기를 짊어지고 나가야 할 중종(中宗, 조선 11대 왕, 1488~1544, 재위 1506~1647)에게는 너무도 부족했던 것이 조선의 불행이었다. 준비 안 된 왕을 준비된 제왕으로 바꿔보려던 조광조의 충심은 중종의 친위 쿠데타己卯士禍로 수포가 되어버렸다. 1519년 11월 15일 밤이었다. 중종은 역사상 유래 없는 한밤중의 숙청극을 벌여 사헌부 대사헌大司憲 조광조(趙光祖, 1482~1519)의 체포령을 내렸다. 조선을 이상사회로 만들고자 했던 개혁가 조광조. 조선 최대의 개혁 프로젝트에 제동이 걸려 오랜 공을 들여 추진해 온 개혁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면 과연 조광조의 개혁은 실패한 것일까? 사약이 내려지던 날 1519년 12월 15일 중종은 전남 화순군 능주에 유배되었던 조광조에게 사약을 마시우게 하라는 전교가 떨어졌다.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 유엄柳?이 사사賜死의 명을 가지고 능주에 이르러 조광조와 만나게 되었다. 조광조 : (어이없다는 표정)나는 참으로 죄인이오... 그런데 죽으라는 명만 있고 죽어야 하는 이유는 없소? 유엄 : 그게... 여기 이 쪽지 밖에 없소. 조광조 : (갑갑한 심정으로)그래도 내가 명색이 전에 대사헌까지 지내다가 이제 사사받게 되었는데 어찌 다만 쪽지 한 장을 금부도사에게 부쳐서 죽이려 하는 것이오? 금부도사의 말이 아니었다면 이 사실 자체를 나는 믿을 수 없을 뻔하였소. 유엄 : 거...참...나도 할 말이 없소... 조광조 : 그럼 한 번 물어봅시다. 지금 조정에 누가 정승이 되었소? 그리고 심정沈貞이 지금 어느 벼슬에 있소? 유엄 : 지난 달 20일에 안당을 의정부 좌의정으로, 김전을 우의정으로, 남곤을 좌찬성 겸 이조 판서로, 이장곤을 우찬성 겸 병조 판서로, 심정을 화천군 겸 지의금부사로... 조광조 : 그만 하면 됐소... 그렇다면 내 죽음은 틀림 없소. (긴 한숨을 내쉬고는) 그렇다면 조정에선 우리를 어떻게 말하고 있소? 유엄 : 왕망王莽의 일에 비해서 말하는 것 같습니다. 조광조 : 하하하. 정말 웃기는 구료. 왕망은 사사로운 일을 위해서 한 자요. (하늘을 쳐다보고서는) 죽으라는 명이 계신데도 한참 동안 지체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 아니겠소? 그러나 오늘 안으로만 죽으면 되지 않겠소? 내가 글을 써서 집에 보내려 하며 분부해서 조처할 일도 있으니, 처치가 끝나고 나서 죽는 것이 어떻겠소? 유엄 : (잠시 망설이다가) 그러시오... 조광조가 곧 들어가 조용히 뜻을 죄다 글에 쓰고 마음에 가득한 회포를 지필묵으로 옮겨놓았다. 임금을 어버이처럼 사랑하였고, 愛君如愛父 나라를 내집처럼 근심하였네. 憂國如憂家 해가 아랫세상을 굽어 보니, 自日臨下土 충정을 밝게 비추리. 昭昭照丹衷 조광조는 자신을 거느린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죽거든 관을 얇게 만들고 두껍게 하지 말아라. 먼 길을 가기 어렵다.’ 하였다. 그는 글을 쓰고 분부하는 일을 끝내고, 드디어 거듭 내려서 독하게 만든 술을 가져다가 많이 마시고 죽으니,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다 눈물을 흘렸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개혁의 선도자는 끝까지 왕에게 충성하며 목숨을 끊었다. 그는 과연 사약을 받아야 할 만큼 중죄를 저지른 것일까? 준비 안 된 임금과 준비된 조광조 1506년 9월 2일, 궁궐이 포위되었다. 연산군의 폭정과 탄압에 불만을 품은 대신 성희안(成希顔, 1461~1513), 박원종(朴元宗, 1467~1510), 유순정(柳順汀, 1459 ~ 1512) 등이 무사들을 규합해 왕의 측근을 살해한 후 궁으로 진격했다. 그들은 연산군을 폐위하고 배다른 동생인 진성대군을 새 왕으로 추대했다. 그가 조선 11대 임금 중종이다. 중종은 신하들이 무력으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내세운 반정反正의 수혜자였다. 반정 당시 스물네 살의 조광조는 성리학性理學을 공부하는 선비였다. 개국 공신 조온의 후손이었던 조광조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채 학문에 몰두했다.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유배중이던 김굉필(金宏弼, 1454~1504)에게 성리학을 배운 조광조는 실천을 강조하는 성리학의 도학정치론에 감화된 신진 학자였다. 그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무덤 밑에 초당을 짓고 삼년상을 치르면서 그곳에서 학문을 닦았다. 많은 백성들이 성리학을 멀리하고 있었지만 조광조는 ‘미친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성리학 연구에 매진했다. 그리고 스물아홉 되던 해 조광조는 마침내 초시初試에 급제하면서 성균관成均館에 입학한다. 그리고 5년 후, 그는 임금이 직접 시행하던 문과 시험인 알성시謁聖試에 응시한다. 이 자리에서 조광조는 준비된 학식과 경륜을 임금 앞에 마음껏 쏟아냈다. 중종은 옛 성인이 보여준 이상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고, 정답을 외우고 들어온 학생처럼 조광조는 일사천리로 해법을 제시했다. “임금이 마음으로 백성을 감화해야 하며 대신을 믿고 함께 국사를 처리할 때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른바 군신협력론이랄까. 조광조의 답안은 중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재위 5년, 아무런 준비 없이 왕위에 오른 중종은 밤낮없이 아는 체하며 자신을 무시하던 공신들에게 질릴 만큼 질려있었다. 중종은 새로운 대안으로 임금의 마음을 알아주고 공신들을 견제해줄 인물을 찾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는 알성 문과에 급제한 조광조를 언관言官인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에 임명했다. 조광조의 입신 조광조를 사간원에 임명한 일이 장차 조정에 평지풍파를 일으킬 것이라고 짐작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런 와중에 사간원 관리 조광조의 출셋길이 활짝 열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중종 6년, 순창군수 김정金淨과 담양부사 박상朴祥, 무안현감 유옥柳沃이 모여 목숨을 걸고 왕에게 상소를 올렸다. 김정은 중종 2년 문과에서 장원을 하여 신임을 얻은 인재였고 박상도 같은 시험에서 급제하여 임금에게 사슴가죽을 한 장씩 선물 받은 사연이 있어, 서로 뜻을 모으기 쉬운 동지들이었다. 세 사람의 사림士林은 왕에게 상소를 올려 억울하게 폐위된 중종의 원비, 단경왕후端敬王后 신씨를 복위할 것을 청했다. 신씨에 대한 논란은 중종이 왕위에 등극한 직후 시작됐다. 중종을 왕위에 추대한 반정 공신들은 왕에게 왕비를 폐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는데, 왕비가 폐위된 연산군의 처남인 신수근愼守勤의 딸이므로 국모로 마땅치 않다는 이유였다. 신수근은 반정에 가담하라는 박원종의 제안을 거절했다가 반정 직후 살해되었으니, 단경왕후는 비록 중종의 비였지만, 반정공신들에게는 언젠가 아버지를 죽인 자신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그러니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중종으로서는 지아비가 아무 잘못 없는 아내를 내쫓아야 할 형편이었다. 결국 반정이 일어난 지 1주일 만에 단경왕후는 폐위되고 말았다. 1510년 반정 일등공신 박원종이 세상을 떠나자 김정과 박상이 이 문제를 재차 거론한 것이다. 죄도 없이 조강지처를 내쫓는 것은 유교 윤리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신하가 임금을 위협해 왕비를 강제로 쫓아낸 사건은 있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임금의 가려운 데를 긁어준 이 사건은 유교 윤리의 문제를 넘어서 사림과 훈구 세력의 대결구도로 번져갔다. 이들은 왕비의 폐출을 주도했던 반정 공신의 행동을 비판함으로써 그들의 정당성을 깎아내리는 한편, 사림들의 세력을 결집해서 훈구들에게 대항하는 정치적인 힘을 길러나가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러나 공신들로 가득 찬 조정은 훈구 세력의 손을 들어주고 대간大諫들은 상소를 올린 두 사람을 심문한 뒤, 유배한다. 조광조는 이에 반발하여 대간 전원을 파직하라는 상소를 올린다. 대간이 된 자는 언로를 잘 열어놓은 뒤에야 그 직분을 다해낸다고 할 수 있사옵니다. 김정 등에 대하여 재상宰相이 혹 죄주기를 청하더라도 대간은 그들을 구제하여 풀어주어서 언로를 넓혀야 할 터인데, 도리어 스스로 언로를 훼손하여 그 본분을 잃었으니, 신臣이 정언正言의 한 사람으로서 어찌 도리를 잃은 대간과 일을 같이하겠나이까? 서로 용납할 수 없으니 대사간과 대사헌을 파직하여 다시 언로를 여옵소서.” ―중종실록》23권, 중종 10년 11월 22일 목숨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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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01 개혁의 횃불 조광조, 불꽃으로 지다 02 임꺽정, 조선의 로빈 후드인가 03 16만 왜군에 온 나라가 맞서다 04 교린과 침략의 두 얼굴, 초량왜관 05 간도의 미스터리, 백두산정계비 06 박지원의 《열하일기》 4000리를 가다 07 열하에서 황제를 만나다 08 누가 계몽 군주 정조를 죽이려 하는가? 09 흥선대워군, 그는 진정 개혁가인가 10 근대 유학생 1호, 유길준의 꿈과 좌절 11 100년 만의 귀향, 북관대첩비와 《조선왕조실록》 연표 찾아보기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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