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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객 책속을 거닐다

만보객 책속을 거닐다

장석주

위즈덤하우스·2007-12-05

  • 문학
  • KDC 0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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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저자서문 책, 그 뿌리치기 힘든 유혹! 살아온 날들의 많은 시간을 책 읽는 데 바치느라 노는 일에 등한했다. 크게 후회하지 않는다. 남은 날들의 많은 시간을 책 읽는 데 바치느라 연애할 틈을 내기 어렵겠지만 억울하다고 떼쓰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경험으로 말하건대, 책의 매혹은 최소경비로 필요한 모든 것을 그 안에서 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책읽기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청정한 취미요, 행복한 삶의 기술이다. 그랬으니 문자를 해독한 이래로 책을 벗 삼아 평온함과 높은 집중 속에서 보낸 시간들은 쾌락과 일과 수행의 시간들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책읽기는 내게 버릴 수 없는 취향이고,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고, 벗어나기 힘든 중독이다. 제자 한 사람이 죽어 장례를 지내는데, 조주 선사도 그 행렬에 끼어들게 되었다. “시체들이 길게 줄지어 서서는 눈 부릅뜨고 깨어 있는, 오직 하나 살아 있는 사람을 따라가고 있구나!” 죽은 자를 따르는 산 자들이 곧 시체들이고, 오로지 죽은 자만이 살아 깨어 있다. 조주 선사의 이 통렬한 반어법이 내 머리를 후려친다. 숨 쉬고 밥 먹고 걷는다고 다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살아 있는 자는 모름지기 살아 있음의 감각과 각성의 중심 속에서 온전할 때만 비로소 살아 있다. 내가 그토록 책에 바치고 책을 탐한 것은 책이 나태하고 우둔한 몸뚱이를 내리치는 죽비인 까닭이다. 죽비가 내리친 뒤 살에 얼얼한 감각으로 남은 그 살아 있음의 각성이 소중해서 나는 손에서 쉽게 책을 놓지 못했다. 책을 읽으면 맥박은 느려지고 흐트러졌던 생의 리듬들은 다시 질서를 찾는다. 들떠 어지러운 기운이 가라앉고 내면은 물속처럼 고요해진다. 고요 속에서 천천히 읽으며 깊이 몰입한다. 혀 밑에 단침이 괴듯 은밀한 기쁨이 저 존재 밑바닥에서 솟아난다. 이윽고 몰입과 충일이 나를 망각의 바다에 뜬 섬으로 데려간다. 외딴 섬에는 온갖 기화요초가 피어 있고 새들이 노래한다. 이 고립된 섬에서는 타인들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바빠지는 일도 없다. 책과 더불어 천천히 사유하는 기쁨을 누리는 동안에는 타고 난 바 신분의 귀천도 다 잊고, 내 무능도 더는 나를 사무친 고통으로 밀어넣지 못하며, 아울러 타인들의 필요와 요구에 따른 불필요한 소모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나는 그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섬에 유배되기를 바란다. 책읽기는 내가 기꺼이 자청한 위리안치(圍籬安置)다. 꽃피고 새가 우짖는 섬에서는 뭍의 번잡과 흥망성쇠, 변해가는 날씨나 소문 따위에 휘둘리지 않아서 좋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자유 속에 방치된다. 그 한가로움과 무위 속에서 때로 놓친 끼니를 찾아먹듯 묵언을 하고 명상을 하면 그게 곧 피정(避靜)이다. 사람들과 일들이 만드는 소란과 번잡을 피해 먼 곳으로 따로 피정을 갈 필요가 없다. 책읽기는 어디에서 이루어지든지 간에 그 장소를 피정의 장소로 정화한다. 피정이 낡고 때 묻은 삶에 맑은 신생의 기운을 불어넣듯 책읽기도 “늘 그러했고 그러할 뿐인 삶”을 돌연 유일무이하고 뜻을 품은 그 무엇으로 탈바꿈시킨다. 여기, 세 번째 차린 조촐한 밥상을 독자 여러분께 바친다. 2007년 초겨울 문턱에서 수졸재 주인 삼가 바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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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객 책속을 거닐다 - 장석주의 느린 책읽기 천 개의 곡조를 다룬 후에야 음악을 알게 되고 천 개의 칼을 본 후에야 명검을 알게 된다. 때문에 편견 없는 감상법을 위해서는 우선 많은 작품을 보아야 한다. ― 유협, 『文心雕龍』, 「知音」篇 차례 ●첫 번째 거리를 거닐다 치욕_ 연륜_ 전위_ 감각_ 공허_ 독설_ 죽음_ 환상_ 고통_ 반反고통 ●두 번째 거리를 거닐다 사랑_ 청춘_ 외로움_ 연애_ 개인_ 낭만주의_ 삼각관계_ 외톨이_ 일상_ 일상성 ●세 번째 거리를 거닐다 한옥_ 예인_ 건축_ 폐사지_ 음식_ 사진_ 달리기_ 수집_ 개_ 활_ 축구_ 지도 대나무_ 밥_ 자연 ●네 번째 거리를 거닐다 황인숙_ 공지영_ 배수아_ 수전 손택_ 이병주_ 송영_ 김추자와 마돈나 ●다섯 번째 거리를 거닐다 책_ 옛글_ 시와 모국어_ 시집들_ 소설_ 추리소설_ 스테디셀러_ 금서 1_ 금서 2_ 금서 3 ●여섯 번째 거리를 거닐다 노동_ 히틀러_ 파시즘_ 다양성_ 군중_ 아파트_ 파리_ 기자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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