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畵圖緣』은 『花天荷傳』, 『畵圖緣 平夷全傳』, 『花田金玉緣』이라고도 하며 전체 4권 16회로 이루어진 재자가인소설이다. 내용은 浙江 溫州 秀才 花天荷가 天台山을 지나다가 만난 신선에게 두 폭의 그림을 받게 되는데 한 폭은 園林圖로 花天荷와 柳藍玉의 인연을 암시하는 그림이고, 다른 한 폭은 兩廣 지역의 산천지형도이다. 花天荷는 이 그림으로 인해 兩廣 지역의 반란을 잠재우고 공을 세워 결국에는 柳藍玉과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畵圖緣』이란 서명은 바로 부부의 연을 맺어주는 매개체 畵圖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존하는 판본은 淸初 寫刻本과 本衙藏板本, 益知堂板本, 積經堂刊本, 正祖會賢堂刊本, 石印本 등이다. 淸初 寫刻本에는 서문 말미에 ‘天花藏主人題於素政堂’라 적혀 있어 작자가 天花藏主人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서문만으로 저자를 확언하기는 어렵다. 또한 그에 대해서도 張邵라는 설, 張勻이라는 설, 烟水散人(徐震)이라는 설, 墨浪主人이라는 설 등 다양하다. 어찌되었든 天花藏主人은 명말 청초 소설 작품들과 상당한 연관성을 지니는 사람으로서 작자뿐만 아니라 출판 간행도 겸하였던 사람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畵圖緣』에 대한 유입 기록은 먼저 尹德熙(1685~1766)의 「字學歲月」(1744)과 「小說經覽者」(1762)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노론가 명문 출신인 兪晩柱(1775~1778)가 썼던 일기 『欽英』에도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있다. 1778년 5월 1일자 일기에 “東宅見杏.滸.畵.燈四種小說, 參祖廟朔香.”이라고 쓰여 있다. 거기에 언급된 ‘畵’가 『畵圖緣』으로 유만주가 읽었던 중국소설과 희곡은 四大奇書를 비롯하여 문언소설, 재자가인소설, 백화단편소설집, 『西廂記』 등과 같은 희곡류까지 약 40여 종에 이른다. 위와 같은 관련 기록들에 근거하면 『畵圖緣』은 적어도 1744년 이전에 이미 유입되어 향유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 중국판본이 전하지 않고 있어 어떠한 판본들이 유입.유통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번역필사본 『화도연』은 선문대 중한번역문헌연구소 소장(文友書林 구장본)으로 전체 3권 3책 가운데 권지이 1책만 현존하는 낙질이지만 유일본이다. 線裝本으로 五針眼訂法으로 제책되었다. 표지 우측 하단 노끈으로 묶는 자리에 ‘共三’이라 쓰여 있다. 상단 왼쪽에는 ‘花道演’이라 서명이 쓰여 있고 그 아래에는 ‘卷之二’라 하여 冊次를 표시하였다. 겉표지에 쓰인 ‘畵道演’은 원서명 ‘畵圖緣’을 잘못 적은 것이다. 후에 장정하는 과정에서 제목을 한자로 옮겨 쓰면서 원전의 서명과 다르게 표기하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겉표지는 격자문이 새겨진 菱花紋 壯紙를 사용하였다. 본문은 四周雙邊 匡廓 有界이다. 전체 책의 크기는 26.7×19.2㎝이고, 반곽은 22.4×17.3㎝이다. 매면 10행, 매 행 폭은 1.6㎝이다. 한 행은 대개 22자 내외로 이루어져 있다. 판심은 백구로 上下 內向 二葉 花紋魚尾이다. 판심 서명과 장차는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서체를 유지하고 있는데 필사자는 한 명이며 투박하고 고졸한 민체가 아닌 미려한 서체로 미루어 보건대 사대부가 이상의 지체 높은 가문에서 필사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번역소설 필사본 가운데 연세대 소장『옥지긔』가 『화도연』과 매우 유사한 서지적 형태를 보인다. 전체 88면이나 앞부분과 뒷부분이 떨어져나간 불완전한 1책이다. 표지 첫면이 “? 고로 담당?노라 ……”라며 내용이 이어지지 않은 채 중간부분부터 시작하는데 앞부분 몇 장이 낙장으로 판단된다. 중국 원전 『畵圖緣』과 비교해 보면 제7회 중간부분부터 내용이 일치한다. 마지막 제88면 역시 “…… 급급히 셔당의 도라와 화간을 블러 모든 냥?의게 젼녕?”라 하여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채 제책되어 있다. 해당 부분은 제7회 중반부부터 제12회 중반부분까지이다. 비록 권지일과 권지삼 두 책이 현존하지 않으나 권지일은 제1회부터 제6회까지, 권지삼은 제12회 중반부터 제16회까지 수록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권지이를 현존하는 중국 판본들과 대조하여 살펴보면 체재상이나 내용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다른 판본의 번역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근거는 첫째, 전체 5회의 회목이 제시되어 있는데 중국판본의 회목들과 일치하지 않는다. 둘째, 回가 나누어지는 단락 역시 일치하지 않는다. 셋째, 내용적으로 사건전개나 흐름은 같으나 중국 판본에 없는 내용들이 이 번역필사본에 나오기도 하고, 반대로 중국 판본에는 있지만 필사본에는 생략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내용을 의도적으로 변개한 것이 아닌 다른 판본의 번역본일 개연성이 높다. 국어학적 특징 가운데 표기 및 음운 현상을 살펴보면 첫째, 어두 된소리 표기는 ‘ㅂ’계 합용병서인 ‘ㅳ, ㅄ, ㅶ’과 ‘ㅅ’계 합용병서인 ‘ㅺ, ㅼ, ㅽ’이 쓰였고 각자병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둘째, 종성표기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의 7종성법의 체계를 보인다. ‘ㄴ’과 ‘ㄹ’의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ㅂ’이 상대적으로 낮은 빈도를 보인다. 어간말 자음군 표기는 ‘ㄺ’과 ‘ㄼ’이 쓰였다. 셋째, 근대국어 시기의 표기 경향과 유사하게 분철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특히 체언의 분철 경향은 거의 뚜렷하고 용언의 경우 연철과 분철이 함께 보인다. 넷째, 어중의 流音 표기는 ‘ㄹ-ㄹ’과 ‘ㄹ-ㄴ’ 두 가지가 보이나 ‘ㄹ-ㄴ’ 표기가 소극적으로 사용되었다. 다섯째, 순자음 아래에서 원순모음화는 이루어지지 않은 경향을 보이며 ‘ㄷ’구개음화 반영 역시 낮게 실현되고 있다. 다음으로 특징적인 조사와 어미들의 쓰임을 중심으로 문법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주격조사는 선행 체언의 음운론적 조건에 따라 ‘이’와 ‘ㅣ’로 나타나며 ‘가’는 쓰이지 않았다. 둘째, 비교격 조사로는 ‘-예셔’와 ‘-의셔’가 각 1번 사용되었다. 중세국어의 비교격 조사 ‘-도곤/-두곤’은 전혀 확인되지 않은데 반하여 처격조사 ‘-의셔’가 후행의 비교서술어(낫다, 다?다)에 지배되어 비교격 조사로 기능하고 있다. 셋째, 18세기 국어사 자료로서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특이한 종결어미 ‘-롸’가 쓰였다. 넷째, 또 다른 평서형 종결어미로 선어말 어미 ‘-거-’와 ‘-오-’ 통합형인 ‘-과-’가 통합된 ‘-과라’가 보인다. 다섯째, 의문 종결어미로는 ‘-ㄴ고’, ‘-ㄹ다’, 소망 종결어미로는 ‘-디라’, 감동법 어미로는 ‘-닷다’가 사용되었다. ㅎ말음체언이 보이며 ㅎ말음체언이 소멸된 경우도 함께 나타난다. 이상과 같이 18세기 문헌들에서 나타나는 국어학적 특징들을 간직하고 있다. 또 다른 자료 『白圭志』는 『第八才子書』, 『第十才子書』, 『第十才子書白圭志』, 『第一才女傳』, 『第一才女傳白圭志』, 『白圭全傳』이라고도 하며 전체 4권 16회로 이루어진 청대 재자가인소설이다. 작자는 崔象川이나 알려진 바는 전혀 없다. 다만 睛川居士가 쓴 序를 통해 미비하나마 乾隆 嘉慶年間 살았던 博陵사람 정도로 추정할 뿐이다. 창작시기 역시 정확히 알 수 없으며 序에 “戊午之下, 博陵崔子携書一部, 名曰 『白圭志』, 請余爲書.”라 적힌 기록으로 미루어 아마도 嘉慶3년(1789) 즈음에 완성되었으리라 추정할 뿐이다. 청대 재자가인소설은 전기(順治~康熙年間)에 개인의 자의식 표현이 치중되면서 상대적으로 집단적 사회의식이나 勸戒, 교훈주의 등이 희석된 경향을 보여주는 반면 후기 옹정연간 이후에는 인과응보와 소설의 ‘공용론’적 작용인 勸善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비록 애정과 혼인이라는 주제와 재자가인의 형상기준 등은 前期와 같을지라도 인과응보적 도덕 설교가 늘어나는 변화를 보이는데 『白圭志』는 바로 후기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인과응보, 권선징악을 강조하는 교화적 측면을 반영하는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전체 구조는 재자 張庭瑞와 佳人 楊菊英, 劉秀英을 중심으로 한 큰 축과 재자 武建章과 가인 張蘭英을 중심으로 한 작은 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 5명 재자가인들의 애정과 혼인의 결연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백규지』가 우리나라에 언제부터 유입되어 향유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 국내에 중국판본 목판본이 3종, 석인본이 4종이 현존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19세기 이후일 것이라 추정한다. 유일하게 1907~1910년 사이에 작성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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