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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신의 나라

만들어진 신의 나라

정창석

(주식회사)이학사·2014-02-28

  • 역사
  • KDC 9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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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머리말 굴절된 침략의 순환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변방의 섬나라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많은 문화를 받아들였다. 동아시아의 문화적 흐름에서 일본은 항상 한국과 중국을 향한 지향 의식을 나타냈다. 이것은 일본인에게 긍정적으로는 향일성의 문화 지향으로 나타났고, 부정적으로는 침략 야욕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대륙을 동경하던 일본은 격변하는 근대를 맞이하여 그들의 대외 지향주의를 침략 전쟁으로 풀어버림으로써 아시아의 교란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근대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는 전쟁으로 시작하여 전쟁으로 끝난 대외 침략의 역사가 되고 말았다. 1853년 군함을 앞세운 페리의 내항 이래 근대 문명의 사다리를 타려고 몸부림쳐온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절대주의 천황제를 확립함으로써 천황을 신격화하고 모든 가치를 천황에 귀일시키는 근대국가를 이루었다. 그러나 근대화를 먼저 이룬 제국주의 국가 일본이 서양 열강으로부터 수많은 압박을 받고 서양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면서도 문명개화에 뒤늦은 한국 및 중국 나아가서 동양에 대해 우월감을 키운 것은 일본인에게는 숙명적인 것이었다. 열등감과 우월감이라는 이 이중성은 제국주의 조류를 타고 일본인의 의식을 좀먹어 들어가 일본인에게 아시아는 야만이라는, 서양을 모방한 일본적 오리엔탈리즘의 심상지리를 가지게 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 서양으로부터 받은 억압을 아시아로 돌리는 억압 이양의 침략 전쟁을 되풀이했다. 근대 일본이 한국 및 중국을 침략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논의는 정한론에서부터 그 막이 열렸다. 1868년 조선이 메이지 정부가 보낸 외교 문서를 거부한 사건을 문제 삼아 일본은 메이지 정권의 기초가 채 다져지기도 전에 조선 정벌의 침략 야욕을 드러냈던 것이다. 이러한 정한론은 내부적으로는 유신 전쟁에서 저마다 공을 세웠다고 생각하는 번군들의 갈등과, 메이지 정부에 대한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민심을 밖으로 돌려 정부의 기반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또한 서양 각국으로부터 압박에 시달리고 있던 당시 일본이 국제적으로 유리한 지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내부 문제를 외부에서 해결하는 일본식 위기 극복 방법이다. 정한론은 이후 일본 제국주의의 방향타가 되어 주권선(主權線)과 이익선(利益線)의 개념으로 굳어지게 된다. 이 주권선과 이익선의 연장으로 한국 및 아시아에 대한 침략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 첫 출발이 1876년 한국과 맺은 강화도조약이었다. 이 조약에서 일본은 서양으로부터 강요받았던 불평등조약을 조선에 그대로 되돌려주면서 아직 독립국가가 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에 대해서는 그럴듯한 제국주의 국가로 행세했다. 이후 조선을 둘러싼 동아시아의 풍운이 급변하고, 일본은 그들이 선언한 조선이라는 이름의 이익선을 지키려 중국, 러시아와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에서 일본은 조선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허울 좋은 동양 평화를 내세우며 전쟁을 시혜 의식으로 합리화했다. 1910년 한일병합으로 일본은 주권선을 한국에까지 연장하여 중국 대륙 침략의 교두보를 확보했고 이익선을 만주 및 중국으로 확장했다. 이러한 일본 제국주의의 동양에 대한 우월감은 서양 제국주의로부터 아시아를 해방시킨다는 대동아공영권 구상과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제국주의는 군국주의 파시즘을 구축했고, 팔굉일우와 황도주의의 실현이라는 무한 전쟁의 성전 논리에 빠져 단말마의 사투를 계속하다가 1945년 미국의 원자폭탄 세례를 받고 패망했다. 전후 미국은 천황의 전범 소추를 면제하였으며 일본인이 그토록 노심초사했던 국체도 상징 천황제로 유지시켰다. 이러한 미국의 시혜는 냉전 초기 미국의 이익을 위한 세계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를 기회로 일본인은 침략 전쟁의 당사자로서 전쟁범죄의 책임을 자율적 준엄성이 아닌 타율적 요식 행위(극동국제군사재판)로 끝내버리는 부끄러운 민족이 된다. 그리하여 전후 일본인은 가해자의 원죄 의식을 부정하고, 시대 상황에 순응했을 뿐이라는 현실 순응주의와 전쟁의 비참함과 비극성만을 강조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결국 원자폭탄의 피폭과 미국의 시혜는 일본인의 의식 속에 침략 전쟁에 대한 죄의식보다 전쟁에 대한 피해 의식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죄의식이 피해 의식으로 가치 전도됨으로써 전후 일본인은 전쟁범죄의 책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망각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1952년에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미국의 군사 점령을 마감하고 국제사회에 복귀한 일본은 한국전쟁의 특수로 전후 복구를 완료하고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이러한 일본의 경제 발전은 세계의 부러움을 사 일본 예찬론과 모방론 및 학습론을 부채질함으로써 일본의 전쟁 책임을 더욱 희석시켰다. 이러한 ‘잘살면 그만’이라는 일본식 천민자본주의와, 침략국이 오히려 더 잘살더라는 역사의 모순에 대한 주변국의 패배주의와 허무주의가 일본인의 자성 없는 전후 인식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오늘날 일본은 경제 대국이 되었으나 날로 우경화되어가고 있다. 또한 일본은 막대한 방위비를 지출하며 군사 대국이 되어가고 있으며,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 자위대가 전수 방위의 범위를 넓혀 국제평화유지군으로 해외에 파견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나아가 일본은 미국의 용인 아래 아시아 안보의 일익을 담당할 준비를 착착 갖추어나가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일본은 경제력에 걸맞은 지위와 발언권을 획득하기 위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며 세계 지도국의 야심을 불태우고 있다. 이와 더불어 평화헌법의 개정이 공론화되어 자위대의 합법화나 야스쿠니신사의 국립묘지 승격이 언제라도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에 맞추어 우익들이 아시아 침략을 예찬하고 있는가 하면, 보수 진영의 정치가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과거를 정당화하는 망언을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인의 이러한 작태는 일본이 아직도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며, 이는 일본이 군국주의의 부활을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변국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천황제는 일본인이 천황에게 향일성의 가치 의존을 계속하는 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의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은 비록 정치적 권력이 없는 상징 천황제하의 천황이지만 상황에 따라 천황이 상징의 허울을 벗고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지 모르기 때문에 주변국들은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천황제의 향방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이다. 한국에게 일본은 항상 가까이 다가와 있다. 새로운 역사 앞에서 한국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면에서 식민지적 잔재를 청산하고 주체적인 입지를 마련하여 이웃 국가로서 당당하게 일본과 마주 설 때 일본은 얌전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옳은 것은 언제 어디서나 옳은 것이다. 한국에게 일본은 이웃 국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날로 급변하는 국제사회에서 역사의 교훈으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민족은 언제나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어제의 한일 관계는 오늘의 한일 관계의 시금석인 것이다. 터부를 가지고 있는 민족과 사회는 불행하다. 그것이 사고의 경직화를 가져와 사상의 자유와 창의성을 박탈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래서 불행하다. 출판을 흔쾌히 수락한 이학사와 세세한 교정에 수고를 아끼지 않은 편집부에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2014년 2월 정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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