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내 고향, 와리에서 벌어진 100년 동안의 비밀을 추적하면서 1980년 광주는 내 삶의 뿌리를 뒤흔들었다. 진압군들의 학살과 광주시민들의 저항을 지켜보면서 나는 외세를 등에 업고 동족을 참살하는 역사의 반복성을 깨닫고 몹시 고통스러웠다. 더구나 서구 제국주의처럼 군사정권이 지역을 분열시켜 통치하는 것을 통찰하고 내가 자각한 것은 백제의 멸망이었다. 그와 동시에 동학농민전쟁에 참여하여 몰락한 외가의 불행이 몸서리쳐 왔다. 나의 외가는 후기 백제의 별궁인 전북 익산의 미륵사 근처이다. 나는 외가에서 어렸을 때부터 집안내력을 듣고 자랐다. 열두 명의 하인을 거느리고 백말을 탄 외고조부가 동학농민전쟁 때 봉기하였으나 왜놈의 총에 맞아 부상당하고, 장수에서 결국 처형당하고 말았다는 영웅담이었다. 외고조모는 밤에 남편의 시신을 봉황산에 암매장하고 친정동네로 피신하여 아들 하나를 양자로 보내는 등 구차하게 살다가 그곳에 묻혔다. 그 후손인 외할아버지는 익산으로 흘러들어가 신형 쟁기를 개발하여 부자가 되었지만, 6·25 때 행방불명된 장남의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중풍으로 쓰러져 집안은 풍비박산이 되어 버렸다. 따져 보면 불행의 원인은 두 번에 걸친 연좌제, 바로 역적으로 몰린 동학군, 그리고 악당으로 낙인찍힌 사회주의였다. 1980년 5·18 광주항쟁 뒤에 나는 오지영의 『동학사』에서 외고조부를 찾았으나 허사였다. 추적을 단념하고 부여와 공주에서 백제의 흔적을 더듬다가 어느 겨울 외가에 내려가 미륵사 부근을 헤매어 다니면서 1986년에『궁뜰 외할머니네 이야기』라는 서사적인 장시를 썼다. 내가 무당이 되어 멸망한 백제, 참혹하게 학살당한 광주시민, 그리고 망한 외가의 한을 풀어주는 열두거리 굿을 벌였던 것이다. 1 그런데 뜻밖에 동학농민혁명의 유족 신청 사실을 알고 어안이 벙벙했다. 100여 년간 동학란에 가담한 자들을 역적 취급했는데, 2006년 국회가 을 제정하여 2차로 증손과 고손까지 혁명군의 유족으로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외가에 전해오는 전설과 족보를 근거로 유족 신청을 한 외숙과 함께 나는 근거자료를 찾으려고 외고조부의 무덤이 있다는 장수로 떠났다. 하지만 나주임씨 종친들을 만나 수소문하였으나 옛 땅을 찾으러왔다는 오해를 받았고, 유림의 후손들은 족보나 벼슬을 앞세우거나 의병 활동에만 치중할 뿐 동학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외고조부의 무덤이 있다는 봉황산, 진압군이 불 지른 마을, 진안과 나주까지 방문하였으나 별다른 소득이 없었으며,『장수군지』의 동학군 활동상에도 외고조부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외고조부의 이름에 있었다. 유림인 외고조부가 동학농민전쟁에 참여했다면 법명이나 가명을 사용했을 것이다. 나는 동학과 관련된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어 나가면서 그동안 학문적 성과가 적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역사 교과서에는 동학농민운동이라고 서술했지만, 진보적인 역사학자들은 동학농민혁명을 중국의 태평천국혁명이나 프랑스혁명과 그 위상을 비슷하게 보고 심도 있는 작업을 해내고 있었다. 특히 동학농민혁명 봉기지역에선 기념 조형물 조성, 각종 기념행사, 자료발굴과 함께 학술세미나를 개최하면서 전국적인 기념일 제정까지 논의하고 있었으며, 고향 완주군도 그 활동이 만만치 않았다. 마침내 동학농민혁명 명예회복 관련 심의위원들은 외고조부의 명예를 회복시켜 외가를 유족으로 인정하였다. “임병천, 당시 연령 47세, 참여일자 1894년, 장수지역 동학농민혁명군 주동자로 활동하였으며 진압군에게 처형당함.”이라는 전문으로 명예회복을 해주었다. 내가 제출한 시집이 발간 시기로 보아 명예회복의 결정적 근거 자료로 타당했다니 참으로 내가 문학을 전공한 것이 무슨 운명, 아니면 업장이 작용한 듯싶다. 설상가상으로 비슷한 시기에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을 다녀온 친척을 통하여 6·25 때 의용군으로 출전한 친삼촌의 생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 놀라운 일은 고향에 감춰진 비밀이었다. 오랫동안 항일 민족주의자를 흉악한 사회주의자로 왜곡하고, 소작쟁의와 통일운동을 벌인 고향의 저항운동을 불순하다고 낙인찍었던 것이다. 억울하게 연좌제로 피해를 당한 친척들의 증언을 듣고 나는 역적으로 몰린 동학군의 가족들이 후손들에게 자기 선조의 행적을 숨긴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강요된 침묵이었다. 원래 내 고향은 갑오년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의 집결지였던 전북 완주군 삼례의 농촌마을로 전주이씨 회안대군파의 집성촌이다. 회안대군 이방간은 동생인 태종 이방원과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패한 뒤에 내 고향 근처로 유배당하였다. 그 뒤 선조 때 정여립의 난으로 지식인 1천여 명이 처형된 후 전라도는 반역의 지방이라고 차별대우를 당했고, 조선말엔 그 후손들이 동학농민전쟁에 참여하여 또 역적으로 몰려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더구나 해방 후 6년간에 걸친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친삼촌 셋이 희생되었다. 큰 삼촌은 민족자주 열사, 둘째 삼촌은 의용군 군관, 셋째 삼촌은 학도병 전사자였다. 포항 전투에서 인민군 군관인 형과 학도병 아우가 총부리를 맞대고 싸웠을지도 모른다는 민족적 비극과 가계사적 불행 앞에서 나는 몹시 슬프고 괴로웠다. 고향 마을 친척들의 뼈아픈 증언들을 들으면서 나는 동학과 사회주의로 망한 외가와 친가의 이야기를 소설로 집필한 계획을 세웠다. 헌데 고향을 드나들면서 자료를 수집해 나가자 친척들의 증언은 엄청났고, 진안과 장수, 봉동과 고산, 빨치산이 활약한 동상면과 운장산 등 현장답사는 놀라운 사실들로 넘쳐났다. 그리고 각종 서적과 인터넷은 홍수처럼 다양한 정보를 내게 알려주었다. 그처럼 고향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상을 깊숙하게 알려준 서적들이 적지 않았다. 일제의 토지 약탈 과정, 만경강 유역의 일본인 농장, 군산선 철도와 식량 수탈, 일제치하 빈민에 관한 연구는 내 눈을 크게 열어 주었다. 무엇보다 나를 흥분시킨 책은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라는 6권짜리 책이었다. 이 책은 전북의 만경, 이서와 함께 내 고향 와리가 좌익과 농민이 공고하게 결합된 소비에트였고, 이승만 테러단체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을 뒤져 옛 신문에서 ‘1930년대 초 고향의 소작쟁의 기사’를 찾아냈고,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독립운동 관련 일제시대 법원의 판결문’을 발견한 것은 횡재였다. 그곳에는 조선공산당 재건사건의 주동자들의 활약상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 결과 일제 때 내 고향이 전북 완주군의 농민운동의 본거지였으며 해방 후엔 민족자주 통일운동의 선봉에 섰다가 극심한 탄압을 받았지만, 6·25 때 가해자들에게 보복하지 않았을 뿐더러 창고에 임시로 가두었던 우익 인사들을 50여 명을 처형 직전의 상황에서 석방했음을 알고 나는 무척이나 감동을 받았다. 더구나 고향의 논 수백 마지기가 당시 지배층의 호주머니에 흘러들어 갔는데, 그것은 동학농민군이 참살당하면서 재산까지 철저하게 빼앗기고, 혹은 목숨을 구명하려고 진압군에게 뒷돈까지 바친 일과 비슷하여 끝없이 반복되는 역사의 추악함에 나는 몹시 참담했다. 나는 허구적인 상상보다는 사실에 충실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 왜냐하면 100여 년 간에 걸친 가족사를 서술하는 소설이라면 그것은 분명 역사 추리소설이기 때문이다. 역사학자가 문헌사료, 물질사료, 전승사료로 역사를 기술하듯 나도 서적 탐구, 현장 답사, 증언의 방법을 동원하기로 작정했다. 서사시『일리아드』를 토대로 터키에서 트로이 문명을 발굴한 고고학자 쉴리이만처럼, 구약성경의 니느웨, 시날이란 지명이나 노아의 홍수, 바벨탑의 전설을 근거로 이라크에서 바빌로니아와 수메르의 고대문명을 발굴한 고고학자들과 비슷한 방법이다. 그때 나의 관심을 끈 소설이 흑인 작가 알렉스 헤일리가 쓴 『뿌리』였다. 헤일리는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사실로 믿고 직접 서아프리카 감비아 주프레 마을을 찾아가 천신만고 끝에 17살 때 사냥꾼에게 사로잡혀 미국에 노예로 팔린 쿤타 킨테가 7대조 할아버지임을 확인하였다. 부족의 원로는 놀랍게도 자기들의 역사를 대대로 전승하여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 돌아온 헤일리는 모계의 200년에 걸친 고달프고 파란만장한 삶을 르포르타주, 즉 기록문학적인 소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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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4 1 아버지의 하모니카 2 어떤 아나키스트 2 훈장과 물귀신 2 수상한 무덤 2 망우리 고개 너머 파란 새 2 2 어머니가 점을 치는 사연 2 여우의 변신 2 영원한 청년 2 동학농민혁명군의 횃불 2 3 늙은 느티나무의 시름 2 상현달, 파도, 여자 2 완산 칠봉의 태극기 2 총검을 물리친 돌멩이 2 4 우물 속의 참붕어 2 잃어버린 무덤을 찾아 2 아름다운 핏줄 2 방울만신의 한풀이 굿 2 5 카빈총과 십자가 2 소년 엿장수의 비애 2 루갈다, 두 동정녀 2 군산항의 오사카 화물선 2 6 비밀결사 CS당 2 배고픈 자운영꽃 2 혁명적 농민조합운동- 전주 2 두 개의 회초리 2 소년 빨치산의 모험 2 7 진눈개비 내리는 날의 총성 2 돼지 빨치산 2 동지들의 약속과 배신 2 오랜 묵은 원한 2 8 백기의 징표 2 피어린 산, 그리운 얼굴 2 누님의 사진첩 2 아버지의 침묵 2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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