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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에 담은 지구

네모에 담은 지구

손일

(주)푸른길·2014-06-20

  • 역사
  • KDC 98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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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프롤로그 Why Mercator? “에필로그는 있는데 프롤로그는 안 씁니까?” 초고를 대충 읽어 본 후배 교수의 첫 반응이었다. 이 책 400페이지 내내 메르카토르 이야기이고, 서론에서도 장황하게 도입글을 써 놓았으니 프롤로그가 뭐 필요 있겠느냐며 이제 메르카토르로부터 벗어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Why Mercator?” 벨기에 신트니클라스(Sint-Niklaas) 시에 있는 메르카토르 박물관 관장이 필자에게 던진 이 질문이 또다시 부담이 되었다. 물론 그는 “어떤 이유로 메르카토르라는 주제로 책을 쓰게 되었느냐”라고 물은 것이겠지만, “라틴 어도 읽지 못하는 동양인 주제에, 그것도 서양 고지학에 대한 훈련이 전무한 지형학자가 16세기 천재 지도학자의 삶을 쓴다는 것이 가당하기나 하느냐”며 나무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따라서 이렇게 책을 쓰게 된 이야기나 메르카토르를 선택한 배경을 밝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형식에 관계없이 써 보기로 했다. 제법 나이 든 교수들끼리 모이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이러다가는 책 한 권도 못 내고 제대할 것 같아.” 이때 책이란 대학 교재가 아니고 학술서를 말하는데, 쉽게 이야기해서 지도 교수 없이 박사 학위 논문 한 번 더 쓴다고 생각하면 된다. 말이 박사 학위 논문이지, 젊은 시절 인생 걸고 공부하던 시절에도 쉽지 않았던 것을 아무도 5 시키지 않는데 쓰기란 쉽지 않다. 설령 웬만히 잘 썼다 하더라도 시장의 반응은 냉담할 것이 뻔하고, 심지어 가르치는 학생도 동료 교수도 그냥 주지 않으면 결코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사 보지 않는다. 게다가 교수 업적 평가에서 저서에 대한 평가가 어영부영 쓴 논문 한 편 정도에 불과하니,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세월 보내다가 정년 퇴임식장을 향한다. 책을 쓰려면 쓸 만큼 읽어야 한다. 따라서 두꺼운 책을 쓰려면 그만큼 많이 읽어야 한다. 나이 들어 이제 책을 써야지 하면서 컴퓨터를 켜면 막상 쓸 것이 없다. 이전에 읽은 것은 기억이 가물거리고, 기억이 난다 하더라도 구닥다리가 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새로 읽자니 유행을 알 수 없고, 눈은 침침하고 허리도 어깨도 아프니 슬그머니 컴퓨터를 끈다. 논문과 달리 책은 일반 독자도 염두에 두어야 하니 정제된 이야기만 쓸 수 없다. 이것저것 끌어들여 포괄적 배경지식을 독자들과 공감할 수 있도록 가능하다면 암암리에, 하지만 의도적으로 독자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그러니 많이도 읽어야 하지만 읽은 내용을 정밀하게 구조화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교수에게 글 쓰는 훈련을 시켜 주는 곳은 없다. 이나마 책을 쓸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우연히 가담하게 된 연구 용역의 연구비 정산에서 책값 영수증에는 이의를 달지 않았고, 공무원 복지보험 정산을 위해 단과 대학 행정실에 영수증을 제출할 때도 책값 영수증이 가장 당당했다. 그러니 책을 살 수밖에 없었고, 책을 사자니 일간신문 토요일자 책소개 기사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레오폴드왕의 유령』이나 『그레이트 게임』과 같은 내 기호에 맞는 책을 찾아내면서 밤을 새우며 6 네모에 담은 지구 책을 읽을 수 있는 인내력이 생겨났다. 정말 우연한 기회로 40대 후반 들어 책 읽는 교수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좋다고 생각되는 문장을 옮겨 쓰기 시작했고, 조금씩 고쳐 쓰면서 점차 내 스타일의 문체를 만들어 갔다. 이러한 습작은 무려 5년이나 지속되었는데 책장 한쪽 구석에는 그때 썼던 노트들이 제법 된다. 두 번째는 40대 후반 들어 대학을 옮길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막상 옮겨 가니 입사 동기들과는 나이 차가 너무 나서 같이 놀 수 없었고, 같은 또래의 고참들은 학내 정치에 문외한인 필자와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러니 외톨뱅이가 되어 연구실 고독을 즐기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긴긴 시간을 메우고 그나마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은 독서밖에 없었다. 그러다 50 초반이 되면서 처음으로 풀타임 대학원생 둘을 받는데, 그들에게 보여 줄 것이라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 읽는 모습뿐이었다. 학생들도 오로지 책만 읽으니 그것이 오히려 족쇄가 되어 늘 감시당하는 기분이었다. 40대 초반, 당시 전공이라며 내걸고 있던 지형학으로는 20년도 더 남은 정년까지 버틸 자신이 없었다. 유럽, 미국, 호주를 구경한 후라 코딱지만한 나라에서 지형학에 인생을 거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대학에 강의도 개설되어 있고, 상업용 지도 수요도 만만치 않으며, 국가 기관에서 지도를 제작해 보급하고 있지만, 정식으로 지도학을 전공한 학자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지도학이라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논문을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주제로 통계 지도를 선정했고, 스스로 지도학자임을 선언한다는 명분으로 지도학 책 하나를 번역하자고 선택한 것이 바로 마크 몬모니어7 (Mark Monmonier) 교수의 『지도와 거짓말(How To Lie with Maps)』이었다. 책을 낸 뒤 그 책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메르카토르 도법에 대한 페터스(Peters)의 논쟁을 주제로 논문을 한 편 썼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메르카토르에 관한 책을 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대학을 옮겨 새로운 강의에 전전긍긍하고 있던 어느 날 출판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지도와 거짓말』 번역자가 맞는지 확인하더니 몬모니어 교수의 또 다른 책 하나를 번역해 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렇게 해서 번역되어 나온 책이 바로 『지도전쟁: 메르카토르 도법의 사회사』이다. 마침 이즈음 크레인(Crane)과 테일러(Taylor)의 메르카토르 평전이 나와 내친김에 그중에서 비교적 번역이 용이했던 테일러의 책을 번역했는데, 『메르카토르의 세계』가 그 책이다. 하지만 테일러 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너무 냉담해서 지금도 출판사 창고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후 메르카토르보다는 카를 5세의 신성로마제국, 헨리 8세에서 엘리자베스 1세로 이어지는 잉글랜드, 술레이만 1세의 오스만튀르크, 인물로는 존 디, 로버트 더들리, 오라녀 공 빌럼, 프랜시스 드레이크 등등 16세기 유럽 역사와 인물들에 대해 마구 읽었다. 내가 16세기 유럽을 만나는 방식은 유럽 지도를 넓게 펼쳐 놓고 오늘은 잉글랜드에서 프랜시스 월싱엄을 만나고, 내일은 오스만튀르크에서 술레이만 1세를 만나는 식이었다. 역사학자 입장에서는 이런 식의 독서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더군다나 그런 주제로 논문을 쓸 필요도 없다. 16세기 유럽사에 관한 책들이 한 권 한 권 책장에 쌓이기 시작했고, 다국적·다층적·다면적 사실들이 실타래처럼 얽혀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의 8 네모에 담은 지구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는 백두대간과 산맥 논쟁에 끼어들어 논문 쓰고 발표하면서 동분서주할 때라 낮에는 지킬 박사, 밤에는 하이드로 살면서 16세기 이야기의 끝을 놓지 않았다. 산맥 논쟁이 끝나 책장을 정리하면서 16세기 책들도 함께 정리했는데, 그동안 읽은 내용을 그냥 묻어 버리기에는 본전 생각이 났다. 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엄두도 나지 않아 안타까운 시간만 흘러가고 있는데, 한국연구재단에 인문 저술 지원 사업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동안 읽었던 것을 정리해 신청을 했다. 그 이후 더 많은 책을 찾고 읽었다. 그중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16세기 문화혁명』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너무 내용이 방대해 독파할 수는 없었지만 월러스틴(Wallerstein)의 『근대세계체제』도 도움이 되었다. 올해 초 번역된 제리 브로턴(Jerry Brotton)의 『욕망하는 지도』도 원고를 수정하고 보완하는 데 많이 참고했다. 이 책에 전념하여 메르카토르 탄생 500주년이 되던 해인 2012년에 발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이 책 집필의 중압감에 못 이겨 잠시잠시 다른 책으로 외도하면서 한숨 돌리느라 그랬을 뿐이다. 지난 5년 동안 이 책을 집필하면서 도중에 우리나라 산맥 체계를 처음으로 정리한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의 『조선기행록』(2010)을 번역했고, 그동안 찍은 사진을 모아 설명을 붙인 『앵글 속 지리학 상·하』(2011) 2권을 펴냈으며, 남들 몰래몰래 읽고 있던 마리우스 잰슨(Marius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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