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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윤리

교회윤리

새세대 교회윤리연구소, 문시영, 김형민, 이장형, 이지성, 오지석

북코리아,·2011-10-20

  • 종교
  • KDC 23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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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프롤로그 값비싼 은혜의, 교회윤리 New-generation Institute of Church and Ethics 값비싼 은혜, 교회의 윤리 명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해외 유명 브랜 드 제품일수록 더 그렇다고 한다. 이상한 것은 유독 우리나라에 들 어온 명품의 가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비싸다는 점이다. 더 이상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품의 인기가 식지 않는다는 점 이다. 더더욱 이상한 것은 값이 비싼 것일수록 인기가 높다는 점 이다. 극히 드문 경우에, 가격을 인하하는 경우에도 명품은 여전히 인기를 누린다. 소유하고픈 욕망, 과시하고픈 마음이 뒤엉켜서 빚 어낸 명품소비의 한국적 풍경이 아닐까 싶다. 수 없이 들어온 명품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명품을 가진 그 사람의 삶 또한 명품이기를 기대해보면서, 그리스도인의 현주 소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자는 뜻이다. 값없이 주신 은혜로 구원 받은 우리의 모습이 싸구려 취급을 당할 정도로 어긋나고 빗나가 버린다면, 이것처럼 안타까운 일도 없을 듯싶다. 우리를 피 값으로 사신 주의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것인 동시 에 값비싼 희생을 통해 주어진 은혜임을 늘 잊지 말아야 하겠다. 말하자면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값없이 주신 것이지만, 우 리의 공로나 자격을 따라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지, 그 자체로 싸구려 은혜인 것은 결코 아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신 사 건은 값을 매길 수 없는 위대한 사랑이요 은혜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은혜의 무한한 값어치를 망각하고 그 은혜를 헛되이 사용하는 경우들이 없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은혜를 은혜 로 깨닫지 못하고,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하는 경우들이 너무도 많다. 주께서 주신 엄청난 은혜를 싸구려 은혜로 쏟아버리고 남용 하는 경우들 말이다. 이 점을 안타까워했던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주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싸구려 은혜 가 아니라, 값비싼 은혜(costly grace)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 것이다. 그 의 논지를 응용하여 풀이하자면, 값비싼 은혜를 헛되이 사용하고 진실한 실천을 보여주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은혜를 싸구려로 전락시키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교회를 윤리적으로 문제시하는 경우들을 만날 때, 마음이 우 울해지는 경험들은 우리에게 진정 값비싼 은혜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어떤 이들은 교회의 윤리적 자 정능력이 바닥났기 때문에 시민의 이름으로 비판해야 한다고 말 하기도 한다. 과연 교회의 윤리수준이 바닥에 있는 것일까? 필자 의 생각에는 이것부터 더 깊은 성찰과 논의가 필요할 듯싶다. 어쨌 거나, 교회의 윤리를 말하는 주된 목적이 일방적 비난 그 자체가 아니기를 기대해본다. 은혜중심의 교회윤리를 향하여 어느 방송에서 착각에 관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긍정적 착 각’이라는 것이 주제였다. 작은 선행을 베풀거나 나눔을 통해 누군 가 나와 더불어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 그것은 착각이기는 하지만 큰 힘을 발휘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보내는 단돈 몇 천 원이 아프리카의 난민들을 위해 얼마나 큰일을 하겠는가만, 그런 착각들이 모여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꽤나 마음에 와 닿았다. 솔직히, 긍정의 착각이라도 하고픈 일이 하나 있다. 한 사람의 기독교윤리학자로서, 교회를 향하여 비난과 정죄와 심판의 목소 리를 높이기보다 교회의 윤리적 가능성을 말하고 싶은 마음을 그 렇게 표현하고 싶은 셈이다. 한 마디로, 교회에 희망을 걸고 싶은 것이다. 철없는 소리, 비현실적이고 어리석은 착각이라고 해도, 그 렇게 하고 싶다. 윤리학자답지 않은 순진한(naive) 소리를 한다는 말 을 듣더라도 마찬가지이다. 현실적으로, 갈등하는 교회, 쌈박질하는 교회, 분열되는 교회, 이웃에게 실망과 불신을 안겨주는 그리스도인들이 넘쳐나는데 무 슨 그따위 소리를 하는 거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필자에게도 그 정도의 현실감각은 있다. 다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음을 말 하고 싶다. 교회를 비난하고 정죄하고 심판하는 윤리가 기독교윤 리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교회의 윤리적 가능성을 말하 는 관점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교회의 윤리적 가능성’을 다룬 흥미로운 연구가 하나 있다. 영국의 기독교윤리학자 로빈 길(Robin Gill)은 그의 책, 에서 진부해보일 수 있지만 본질적인 이야기 를 꺼낸다. 적극적인 신앙인들(churchgoers)에게 윤리적인 독특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용된 단어, 교회출석(churchgoing)이라 는 것은 흔히 ‘제자 되기’와 대비시켜 사용하는 ‘단순출석자’라는 뜻이 아닌 것 같다. 그가 ‘churchgoer’와 ‘non-churchgoer’라는 용어 를 사용한 데에는 기독교문화를 바탕에 깔고 있는 유럽과 영국의 정황이 반영된 듯싶다. 어쩌면, 교회출석이라는 개념은 일 년에 몇 번 절기가 되면 교회에 ‘가 주는’ 사람들과는 달리 규칙적이고 정 기적인 교회출석자 즉 적극성을 지닌 신앙인을 지칭하는 것 아닐 까 싶다. 로빈 길이 자신의 관점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회과학에서 신 봉해마지않는 통계조사와 분석이라는 방법론을 동원하는 점은 일반적인 기독교윤리학자들과 달라 보이는 대목이다. 그의 조사 와 분석에 따르면, 적극적인 신앙인들에게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 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앙심, 목적론적 가치관, 이타주의가 강하게 나타난다. 일반인도 이러한 가치관을 공유하기는 하지만, 신앙인 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이다(CCE., 22). 로 빈 길은 자신의 이러한 입장이 일부 사회학자들에게 시큰둥한 반 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리라 예상하면서도 나름대로 사회과학적 접근을 통해 조사하고 분석한 충분히 근거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 기도 한다. 그는 특히 교회출석이라는 것이 기독교인의 신념과 가치 및 실천에 밀접히 연관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적극적인 신앙인 들은 자원봉사에 참여하기를 좋아한다. 또한 해외봉사활동에 관 심이 많으며 안락사와 같은 이슈들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한다. 그리고 가정에 대한 관심이 깊고 사회질서를 존중하는 경향이 더 많이 나타난다. 물론, 그들 사이에도 특정한 사안에 대해 의견불일 치가 나타나기는 한다. 다투기도 하고 공동체들 사이에 색다른 의 견들이 오가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빈 길에 따르면, 그들 에게는 독특하게 구별되는 요소가 있다. ‘교회출석’ 혹은 ‘교회공 동체에 소속되어 있음’이라는 것이 하나의 독창적인 문화(a distinctive culture)이며, 도덕적 신념과 행위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교회의 윤리적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로 해석하려는 필자의 시도는 영 잘못된 일일까? 필자는 로빈 길의 조사와 분석 에서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의 통찰이 재해석되고 있음을 충분 히 읽을 수 있었다. 로빈 길 자신도 그런 전제를 숨기지 않는다. 오 히려 하우어워스의 관점을 통계조사와 분석을 통해 입증해보려는 시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필자의 짧은 생각으로, 로빈 길이 보여준 것은 ‘교회의 윤리적 가능성’에 대한 하나의 예가 될 듯싶어서, 일 종의 긍정의 착각이라고 불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면,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관한 성찰은 신학의 중요 한 관심사였으며, 현재와 미래의 교회를 위해 반드시 살펴야 할 주 제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교회는 어떤 의미인가 질문해야 할 시 점이다. 민족사의 중요한 대목마다 영적 지도력을 발휘해온 한국 교회는 교회성장의 걸출한 기록들을 남겼으나, 지금은 대내외적 으로 혹독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기독교신앙을 가진 것이 자랑스 럽고 행복해야 하건만, ‘무언가 잘못된 사람들’로 내몰리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울 정도이다. 이러한 때에 신앙인을 격려하고 우리사회에 희망적 비전을 심어주는 일은 교회공동체가 짊어져야 할 시대적 과제라 하겠다. 이러한 뜻에서, 이 책은 교회로 교회되게 하는 윤리를 모색하는 하 나의 시도이다. 특히 기독교윤리학적 관점에서 교회를 재발견하 고 우리시대의 교회를 위한 윤리적 비전을 제안하는 데 목적이 있 다. 그렇다고 해…

목차펼치기

CONTENTS 프롤로그_값비싼 은혜의, 교회윤리|문시영 Section 1 하우어워스의 교회윤리 하우어워스의 교회윤리, 교회됨을 지향하다|문시영 하우어워스의 교회윤리, ‘예수 내러티브’에 주목하다|이지성 Section 2 바르트의 교회윤리 바르트에게 길을 묻다|김형민 Section 3 교회윤리를 위한 변명 루터에게 다시 돌아가다|이장형 교회다운 해법을 찾아서 | 오지석 에필로그_교회 안팍으로|문시영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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