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너드(NERDS) -안경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완전 특이해! 서문 “너드? 너드라면 모피로 유명한 그 불쌍한 동물 아니냐?(독일어의 너드(nerd)와 밍크(nerz)가 발음이 비슷한데서 비롯된 문장입니다- 옮긴이)” 우리 어머니는 아들이 새로 쓴 책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세대 차이일거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벌써 80세가 넘었으니까. 나는 다시 한 번 설명하기 시작했고, 이번엔 발음에 좀 더 신경을 썼다. “아뇨, 엄마, 네르츠가 아니라, 네르즈(너드의 복수 nerds의 독일어식 발음-옮긴이) 라고요! (나는 r 발음을 가볍게 굴렸다.) 더부룩한 머리에 두꺼운 안경을 쓰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별난 주제로 족히 한 시간은 썰을 풀 수 있는 녀석들 있잖아요. 어머니가 학교 다닐 때도 그런 녀석들이 있었을텐데.” 어머니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아니다, 얘. 우리 때는 그런 애들 없었어.” 어머니의 말이 옳을 것이다. 어머니는 제 3제국 때 학교를 다녔고, 당시는 너드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너드는 한데 뭉쳐 단결하는 군대적 인간상에는 전혀 부응하지 못하니까 말이다. 히틀러 소년단원이 되어 바이에른 숲을 타박타박 구보하며 큰 소리로 “북치는 소리가 들리는가”라고 노래하는 너드를 상상할 수 있을까? 거의 상상이 안된다. 나치 시대에 너드는 학교에서 가능하면 눈에 안 띄게 행동해야 했고, 그 후 그 어디, 무기나 화학 공장의 연구 개발 센터로 숨어들어가지 않으면 망명을 해야 했다. 너드는 독특함을 참아줄 수 있고, 억지로 싸잡아 똑같이 만들려고 하지 않는 곳에서만 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드는 의견의 자유와 자아 실현 가능성의 정도를 판가름하는 지표로 작용할 수 있다. 너드가 곳곳에서 등장하는 사회일수록 리버럴한 사회인 것이다. 따라서 너드의 역사는 자유의 역사 만큼 굴곡이 심하며 정확히 그만큼 흥미롭다. 이로써 우리는 이 책의 핵심 명제에 이르렀다. 너드의 역사는 장구하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너드는 그저 위키피디아와 해커가 활개를 치는 컴퓨터 시대에 나타난 단순한 현상이 아니다. 1950년대 “flake(얼간이)”, “dork(도르크)”, “Fachidiot(전문가 바보)”라는 말이 세상에 나오고서야 비로소 너드가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다. 너드는 훨씬 오래 전부터 있었다. 너드의 존재는 호모 사피엔스만큼이나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너드는 인간이 생명 유지와 종족 보존만을 목적으로 원시적인 사냥과 수렵 생활만 영위하던 데에서 벗어나, 무리의 독특한 구성원들이 -언뜻 보기에는 별 의미 없어 보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도록 충분한 기회를 허락했던 때에야 비로소 스스로의 기질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너드는 세계사에서 비교적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대에 특히 자주 등장한다. 너드의 첫 전성기는 개인이 최초로 개성을 표현할 수 있었고 펼칠 수 있었던 고대 그리스 시대였다. 아테네, 이오니아, 마케도니아 사람들이 탈레스, 헤라클리트, 아르키메데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너드들이 하는 말을 다 이해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너드들을 용인해 주었으며, 응원하기 까지 했다. 그렇게 디오게네스는 살아서 이미 -약간 특이한- 영웅으로 추앙되었다. 시대의 권력자들과 맞장 뜨는데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디오게네스가 알렉산더 대왕에게 자신을 비추는 햇빛을 가리지 말고 좀 물러서라고 요구했다던 일화는 전설적이다. 약골이었지만 영리한 너드 디오게네스와 땅딸막한 키에 강하고 다부졌던 마케도니아 출신 테스토스테론의 화신 알렉산더 대왕의 용감한 대결은 오늘날까지 인구에 회자되는 드라마적 소재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 나오는 페이스북 창시자 마크 저커버그와 적대적인 변호사들과의 대치 장면만 해도 그렇다. 변호사 한 사람이 장황한 상황 설명을 읊고 있는 동안 저커버그는 무심하게 창밖을 내어 보다 이렇게 말한다. “비가 오네요.” 이에 당황한 변호사가 물었다. “저커버그씨, 제 말을 주의 깊게 듣고 계신 겁니까?” “아니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아니요.” 너드는 권력자들과 기득권자들 앞에 굴하지 않는다. 너드는 그런 사람들과의 쩨쩨한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 차라리 멍하니 비구경을 하거나 일광욕을 할지언정 그들과 공연한 신경전을 펴지 않는다. 너드에게는 뭔가 고귀하고 고상한 것이 있다. 이런 특성은 처음 볼 때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두 번 보고 세 번 보다 보면 그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전적인 귀족은 늘 자신이 중요한 사람임을 과시하고자 애쓴다. 옷이나 겉치장, 힘 같은 것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오늘날 경영계나 정치계에도 그런 행동양식을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너드는 그런 게 필요하지 않다. 너드는 약간 특별하다. 자신의 분야에서 -그것이 아직은 좀 생소한 분야일지라도- 보통 사람들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눈에 띄지 않는다. 너드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로부터 오늘날까지 불안하게 등락을 거듭해 왔다. 군국주의적인 로마시대에는 하강했다가, 수도원에서는 다시금 피어났다. 종교 재판 시대에는 종종 투옥되어 박해를 받았다. 계몽시대를 맞아 학문이 꽃피면서 다시금 복귀했다가, 나중에 스탈린과 히틀러 치하에서는 숨어 있거나, 그들의 파괴 프로그램에서 나름의 틈새를 찾아들었다. 요제프 멩겔레와 아돌프 아이히만은 시스템 상으로 악이 이미 만연해 있는 상태에서, 너드가 자신의 소심한 성격과 명확한 정답 및 구조를 추구하는 성격으로 인해 악에게 넘어갈 수도 있음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그 후 미국의 맥카시 시대, 반지성주의 정책이 펼쳐지는 동안, 너드는 다시금 거의 잠수를 탔다. 하지만 그 뒤 컴퓨터 시대가 도래했고, 너드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너드들은 현재에도 아주 잘 나가고 있어, 너드가 과대 선전되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다. 요즘 구글에 “너드”라는 검색어를 치면 약 1억 1천 5백 만 개의 검색 결과가 뜬다(2011년 8월 상태). 언론은 너드라는 개념을 당연한 것처럼 그들의 레퍼토리에 넣었다. 너드 스타일의 티셔츠, 안경, 신발, 벨트, 바지, 액세서리 까지 등장했다. 버락 오바마는 최근에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스티브 잡스(애플), 에릭 슈미트(구글),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와 만났다. 진정으로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컴퓨터와 인터넷 계의 거물들을 더 이상 홀대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국방성은 2010년 초, 컴퓨터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머지(Mudge)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전설적인 해커, 피터 잿코(Peiter Zatko)를 전격 영입하기까지 하였다. 무기, 석유, 자동차 업계의 가무잡잡하게 그을린 로비스트들만이 주름을 잡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오늘날에는 두꺼운 안경에 창백한 얼굴의 ‘방콕’들도 화이트 하우스나 펜타곤을 누비는 시대다. 20년 전만해도 어림도 없었던 일이다. 너드가 권좌로 편입되는데는 물론 위험성이 없지 않다. 너드들이 닳아질 염려가 있고, 원칙적으로 무정부적인 특성을 잃어버릴 염려가 있다. 이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될 것이다. 너드가 권력의 어두운 면과 영합하면 무지막지한 해를 초래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제 3제국에서 처럼- 비인간적인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로 변신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이런 위험성은 그리 높지 않다. 위키리스크(Wiki-Leaks), 오픈리크스(OpenLeaks), 구텐플라그(GuttenPlag) 같은 인터넷 플랫폼에는 아직 체제를 당황케 하는 너드들이 충분하다. 2009년 가을, 중국의 국방부가 새롭게 선보인 웹사이트는 불과 3개월 만에 230만 번 공격당했다. 2010년 11월에는 해커들이 독일의 원자력 포럼 홈페이지를 장악하여, 원자력 로비의 일반적인 화면 대신, 원자력 반대 운동에서 종종 등장하는 손에 성냥을 든 붉은 태양 및 불타는 컴퓨터, 그리고 “핵에너지는 이 웹사이트만큼 안전합니다”라는 슬로건이 뜨게 만들었다. 2011년 3/4월에는 연방 금융 에이전시 홈페이지를 네트워크로부터 삭제해야 했는데, 홈페이지에서 달갑지 않은 데이터 흐름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너드의 소명은 파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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