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머리말 시인은 누구인가? 시인은 무엇을 하는가? 경계인의 긴장된 비전을 놓치고, 소외되거나 추방된 자의 시각을 지니게 된 현대 시인들에게 주어진 길은 무엇일까? 실존은 외부의 타자와 관계 맺는 가운데 열린다. 시쓰기는 자신의 바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점에서 시적 감각은 시적 지평과 연관된다. 힘든 창조적 반복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지평을 개진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시쓰기를 감각이라고 할 때 이를 오감으로 환원하는 것은 곤란하다. 무엇보다 이것은 존재의 감각이다. 시인의 감각은 생의 감각, 신생의 예감이라고 할 수 있다. 시적 감각은 추상화되어 가는 삶 속에서 구체성을 되찾는 과정이다. 그것은 분리되고 파편화된 개별 감각이 아니라 공감각, 공통감각에 이르려는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시는 주체로부터 대상을 향해 지속적으로 확장되는 의식 현상이다. 주체에서 시작되지만 세계로 열려 간다. 시의 지평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부재와 현전, 자기애와 이타성, 무의식과 원초 공간 등으로 오가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방황과 반복은 시인의 숙명이다. 그는 시를 만나기 위해 길 위에 서 있는 존재이다. 그는 부재와 현전 사이에서 요동하면서 힘겹게 부재의 언어, 침묵의 문장을 얻는다. 오늘날 일상의 내부에 도사린 거대한 구조적 폭력을 이해하려는 성찰의 태도에서 시의 수행 가치는 배가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시인들이 시의 나라를 벗어나지 못한다. 단지 소통 부재의 난해성에 한정된 문제는 아닌 것인데 세계와 맺는 맥락이라는 관점에서 분리주의적 한계를 보인다. 말할 것도 없이 시가 죽어가는 대지를 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인이 자기로 회귀하는 감성의 순환 회로 속에 갇혀있는 동안 외부를 볼 수 있는 지평은 사라지고 만다. 분리 독립이라는 미적 행보가 구조적 폭력을 보지 못하는 귀결이 된다면 진정한 자유의 공간은 결코 열리지 않을 것이다. 좋은 시를 만난다는 것은 시라는 제도와 만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오늘날의 현실에 대한 시적 대응이라는 관점이 중요하며, 이는 주체와 세계가 만나는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생동하는 주체의 감각이 사물과 만나 빛나는 언어는 그 자체로 오늘날 균질화되고 추상화된 삶을 깨우치는 경험이 된다. 시인의 살아있는 감각과 그가 개진하는 시적 지평을 통해 우리는 시를 만나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책의 표제를 “은유를 넘어서”라고 하였다. 시가 은유의 도서관에서 나와 현실 속으로 나아가자는 의도를 품는다. 특히 이것은 이 책에 실려 있는 시인 최영철론의 제목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것에 주목하면서 사물들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사유하는 그의 시적 지향은 애써 은유의 동일성을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이해된다. 이는 또한 내가 고민하고 있는 “제유의 시학”와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은유를 넘어서”라는 표제는 제유를 말하기 위한 가교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평적 글쓰기의 활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학문적인 성과를 내어야 한다는 조바심에 흔들리고 있는 50대 중반 즈음이라 또 하나의 책을 더하는 일이 망설여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내가 읽고 쓴 시인과 작가들에 대한 공적 책무를 다하기로 하였다. 나는 시는 하나의 장르가 아니며 문학의 모든 장르와 인문학의 바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하는 이라면 시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내가 시 공부에 열심이라 자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계기로 시학에 더욱 정진할 것을 다짐해 본다. 내게 시를 읽게 한 시인들과 함께 공부하는 동학들, 또한 학문적 동지로 내 글의 훌륭한 비판자인 사랑하는 아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깊은 심연의 어둠 속에서 나와, 시의 천사가 역사의 천사가 되어, 우리에게 빛나는 희망을 선사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5년 봄 구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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