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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가난하지 않았다

공자는 가난하지 않았다

리카이저우 (지은이), 박영인 (옮긴이)

글항아리·2012-09-03

  • 역사
  • KDC 9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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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들어가며 우리는 물질만능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사람이 돈을 버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이 필요해서, 그리고 돈이 있는 사람은 더 많은 돈을 가지려고 동분서주한다. 좋은 차나 멋진 집, 값비싼 보석과 명품 가방 따위로 자기과시를 함으로써 이웃을 주눅 들게 해 보상 심리를 얻고자 한다. 우리는 이 보상 심리가 바로 행복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이 세상에 예술적인 승화라든가 정신적 수양, 자연의 아름다움, 가족의 단란함 등의 또 다른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그저 하찮은 것으로 여긴다. 이렇듯 물질적 탐욕만을 좇다보니 영혼은 점점 더 멀찍이 내팽개쳐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속에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간 옛사람들의 모습이 여전히 살아 있다. 이들 중에는 철인哲人과 시인을 비롯해 은둔자, 변론가, 예술가, 정치가가 있다. 이들은 신분이야 어떻든 하나같이 고결하고 청빈하며 정신적 가치를 추구한 반면 물질을 한낱 배설물로 여긴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유가의 시조인 공자를 생각하면 돈이 없어 배를 곯으며 진陣나라와 채蔡나라를 주유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중국에서 은사隱士로 유명한 도연명의 경우를 보자. 그 역시 과감하게 현령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매일 시냇물을 벗 삼아 한가로이 거문고나 뜯으며 부와 시를 썼으리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은 비록 세속적인 삶을 살지만 옛사람들은 고상하게 살았을 것이고, 자신은 돈 몇 푼에 연연하는 속물이지만 옛사람들은 속세의 음식조차 먹지 않는 신선처럼 생각한다. 마치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분열 상태에 빠진 ‘반 쪼가리 자작’과 다를 바 없다. 반은 더없이 선하고 반은 더없이 악하다. 하나 속에 완전히 대립된 두 면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우리의 ‘반 쪼가리’ 모습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물욕이라는 함정에 빠져 진정한 행복과는 배치되는 삶을 살면서도 옛사람들이 물질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사적인 왜곡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철인 공자도 경제적 풍요를 누리며 열국을 주유했다는 사실을 알려줄 것이다. 관직을 내놓고 은둔의 삶을 산 도연명도 실은 가난에 허덕였으며, 시인 백거이 역시 내 집 마련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줄 것이다. 또 포공이 중국에서 청렴결백한 관리의 대명사가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월급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잘 아는 대로 중국과 한국은 오랫동안 유가 사상의 영향을 받아 왔다. 유가 경전 속의 ‘군자는 어려울수록 단단해진다君子固窮’ ‘군자는 정의를 밝히고 소인은 이익을 밝힌다君子?於義, 小人?於利’ 등과 같은 유명한 경구는 이미 두 나라의 국민, 특히 배운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전통적 가치관에서는 돈을 버느라 정신없이 바쁜 사람은 ‘군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격이 고매한 사람은 그야말로 경제생활과 완전히 동떨어진 사람인줄 알고 있다. 사실 이 같은 생각은 유가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는 “어진 사람은 재물로 몸을 일으키고 어질지 못한 사람은 몸으로 재물을 일으킨다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라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유가에서는 물질을 결코 경시하지 않으며, 다만 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것을 경시한다. 중국 이학파의 대가인 정이程? 역시 이에 대해 분명하게 말했다. “군자는 물질을 부리고 소인은 물질의 노예가 된다君子役物, 小人役於物.” 이 말은 유학자는 물질을 배척한 것이 아니라 물질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의 1000원짜리와 5000원짜리 지폐에는 이학자가 그려져 있다. 바로 유학의 쌍벽을 이루는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다. 더욱이 이들은 전적으로 “진정한 현인은 내적으로 의리義理를 수양하고 외적으로 실리實利를 추구해야 한다. 의리는 실리와 동떨어진 공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실리를 추구할 때 역시 의리에 위배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대승 불교에서 추구하는 ‘복과 지혜가 함께 성장해가기를 바라는 복혜쌍수福慧雙修’나 중국에서 줄곧 주장해온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을 함께 이룩해야 한다’는 주장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 본질은 서로 같으며,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최고의 지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치란 결코 단순하고 새로운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것을 행하고 있지는 않다. 이 책에서는 14명의 역사 속 인물을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 의리와 실리를 함께 추구한 사람은 공자, 맹자, 백거이, 악비 등 네다섯뿐이다. 그 밖에 욕심이 앞서 의를 저버리고 물질의 노예가 된 사람도 있고(예를 들면 엄숭이다. 그는 명나라의 악명 높은 탐관오리다), 그림과 글에는 뛰어나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는 데에는 젬병인 사람도 있다(청나라의 유명한 문학가인 조설근이 바로 이렇다). 따라서 우리는 공자와 맹자는 본받아야 하지만 엄숭과 조설근을 따라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공자와 맹자에게서 그들의 재테크 수단을 배우라는 것이 아니라 (이 두 성인은 주식, 선물, 부동산 등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른다. 두 사람에게 재테크를 배우느니 차라리 재테크 전문가와 만나는 편이 훨씬 낫다.) 이들의 삶의 태도를 배우라는 말이다. 이들의 삶의 태도는 과연 어떠했는가? 이 중요한 대목은 책을 읽으면서 직접 찾아보기 바란다. 행여 저자가 책을 선전한다는 식의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목차펼치기

차례 들어가며 7 제1장 공자는 돈이 모자라지 않았다 13 공자의 성은 공孔이 아니다 | 선조 역시 광활한 곳을 떠돌았다 | 숙량흘과 공자 부자는 야오밍처럼 키가 컸다 |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 |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어린 공자 | 개인 학교를 운영해서 낸 수익금 | 관학에서 벌어들인 수입 | 교사의 월급은 공무원보다 적지 않았다 | 개인의 시찰에 나라에서 자금을 대다 | 나라의 보조가 없었다면 전파될 수 없었을 것 | 공자도 자신의 집을 소유했다 | 공자는 인색한 사람이 아니었다 제2장 맹자는 금이 많았다 49 맹자는 관직에 있을 때 엄청난 연봉을 받았다 | 맹자의 교사 연봉도 많았다 | 언제나 돈을 보내오는 사람이 있었다 | 황금의 가치 | 맹자는 순위에 들 만큼 부자였다 | 맹자의 학교는 문턱이 높았다 | 경제적으로 독립해야만 고매한 인격을 지킬 수 있다 제3장 묵자의 평화 유지비 77 묵자야말로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 평화유지 활동에도 여비가 필요하다 | 묵자가 짚신을 신었다고 누가 말했나 | 묵자는 부자가 될 뻔했다 | 묵자는 가난한 편이 아니었다 | 높은 취업률과 역설의 진리 | ‘공산주의’를 지향하다 제4장 허리띠를 졸라맨 조조 111 할아버지는 태감이었다 | 관직을 사기 위해 1억을 들였다 | 조조의 경력 | 승상의 연봉 | 채읍의 조세 | 액수가 만만치 않았던 연말 보너스 | 조조는 유산을 많이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 그 많은 돈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 허리띠를 졸라맨 조조 제5장 도연명의 수둔瘦遯 135 관직은 물려받았지만 재산은 물려받지 못했다 | 작은아버지가 버팀목이 되다 | 은둔에 필요한 돈 | 쌀 5말은 얼마인가 | 쌀 5말 외에 밭 3경이 있었다 | 앞당겨 사직할 때 감수해야 하는 위험 | 비둔과 수둔 제6장 이백의 유랑을 위한 수입과 지출 165 아버지가 부자라는 소문 | 선단을 만들려면 큰돈이 든다 | 부인도 부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 한림에서 받은 월급 | 현종의 하사품 | 원고료 수입 | 여러 가지 선물을 받았다 | 양저우에서 1년 동안 쓴 돈 | 유랑할 때의 공짜 점심 제7장 백거이, 녹록지 않은 내 집 마련 201 관리 집안의 자제 | 왜 가난했을까? | 개미족이 된 백거이 | 살 곳이 있으면 충분했지 내 집에 집착하지 않았다 | 내 집 마련은 시 외곽에서 | 규모가 큰 관사에서 생활하다 | 셋방살이 18년 | 루산 초당은 어떤 모습인가 | 평생 다섯 채의 집을 소유하다 | 당나라 중기와 말기의 집값 제8장 청렴결백한 포공의 고수입 235 아버지는 부부장이었다 | 가족과 가정 형편 | 10년 동안의 은둔형 외톨이 | 전설 속 판결의 귀재 | 융통성을 발휘한 청렴결백 | 1000만 위안이 넘는 연봉 제9장 악비의 부동산 시련 263 가족은 어디에서 살았을까? | 방 498칸짜리 집 | 항저우 별장 | 월급이 48만 위안 | 거액의 상금 | 장군들은 모두 부동산을 소유했다 제10장 당백호의 풍류 빚 281 일생과 팔자 | 가벼운 로큰롤과 연화락 | 그림을 팔고 책을 썼다 | 도화암 건설 비용 | 지조라는 것 제11장 엄숭의 어마어마한 부동산 315 엄숭이 탐한 돈은 얼마였을까 | 3대에 걸친 연봉 | 고금 이래 가장 많은 주택을 보유한 탐관오리 | 부동산의 시가를 셈할 때 거짓으로 보고하다 제12장 조설근의 생계비 출처 327 씀씀이가 큰 조씨 집안 | 급료는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 소금으로 먹고살았다 | 백성들은 혈압이 높았다 | 왜 가산을 몰수당했을까 | 가산을 몰수당한 후의 나날들 | 조설근의 봉급 | 매해의 학비 보조금 | 예술가인가 고급 기술자인가 | 손재주로 가족을 먹여 살리다 제13장 장제스와 리쭝런의 수입 공개 357 장제스는 4만8000위안의 월급을 받았다 | 리쭝런은 월급을 3만4000위안 받았다 | 시장은 월급이 얼마였을까? | 민국 때 광저우 일반 교사의 수입 주 369 옮긴이의 말 405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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