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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슬픔

우리 시대의 슬픔

정명중 외 (지은이)

전남대학교출판부·2013-03-25

  • 사회과학
  • KDC 3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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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사물을 꿰뚫어 보는 것을 통찰이라고 한다. 이때 꿰뚫어 본다는 것은 그 사물의 본질을 전체로서 파악하는 것, 곧 막연하고 개별적인 사물을 다른 사물들과의 체계적인 연관 속에서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특정한 사물을 통찰함으로써 그것이 존재하고 움직이는 사태의 구조를 꿰뚫을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한 사물이 그 사태의 구조와 분리되거나 또는 그보다 앞서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하나의 사물을 전체로서 파악한다 함은 궁극적으로 그 사물을 바로 그것이게끔 하는 관계의 총체를 지각함이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혹자는 위의 진술에서 이제는 구닥다리가 돼버린 구조주의의 잔재를 떠올릴 법도 하다. 아니면 사물의 본질 운운하는 모양새에서 이른바 본질주의 형이상학 특유의 현세적이고 감각적인 것에 대한 저주의 낌새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감스럽지만 이러한 의심의 시선들 앞에서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다만 문제는 지배와 억압을 특징으로 하는 동일자의 사유를 따돌리면서 어떻게 관계의 총체를 포착할 수 있는가, 이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말을 빌면 관건은 언제나 “완전한 전체를 포착하려 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버릴 용의”이다. 아무튼 이 대목에서 그리 창의적이지 않은 물음을 마치 새삼스럽다는 듯이 하나 던져볼까 한다. 우리는 우리의 시대를 통찰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포스트모던 담론의 선두 주자였던 리오타르나 보드리야르 등은 이미 오래 전에 총체적 현실에 대한 재현이 불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재현의 중요한 요소로서 인식적 기능에 대해서는 설명을 생략한다. 다만 재현의 불가능성을 그들이 주장했을 때, 더욱이 우리가 그들 주장에 맞장구 쳤을 때, 한 사회를 또는 한 시대를 통찰하겠다는 노력은 과대망상증 환자의 잠꼬대 같은 짓이 돼버린 게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큰 이야기Grand-narrative를 지껄이는 자들을 잘 믿지 않는다. 지난 세기 우리가 큰 이야기의 억압적 횡포와 그 기만을 몸소 겪어온 이상 그러한 불신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해서 큰 이야기를 입에 담는 자들에게 우리는 곧잘 이렇게 쏘아 붙인다. “당신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차이들과 이질성 그리고 다양성을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모조리 동일화해버리는 군요!” 큰 이야기에 입각한 모든 전망은 곧 억압이요 폭력이라는 등식이 만들어졌다. 이어 사소하고 미시적인 것이 곧 윤리적이라는 어딘지 수상한 강박이 지식계를 점령했다. 결국 파편화된 현실을 향한 유희적 욕구를 뭔가 더 급진적이며 훨씬 정치적인 어떤 것으로 여기는 일이 권장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가 조각 가지고 놀기playing with the piece에 심취해 있는 동안 인민들의 통곡은 잦아들지 않았다. 아니 더 깊어졌다. 혹시 차이와 이질성의 정치가 오히려 차이나 이질성 그 자체에 대한 물화나 페티시즘 같은 것으로 귀결돼버린 것은 아닌지 반추해야 한다. 아울러 급진적인 것 또는 정치적인 것의 이름으로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이 갖는 거대한 유사성이나 동일성에 애써 눈감아 버리는 역설이 펼쳐졌던 것은 아닌지도 꼼꼼히 따져야 한다. 우리가 그와 같은 작업을 더 근본적으로 밀고 나가지 않는다면 우리 시대와 사회는 어떻게 해도 불가해하고 모호한 어떤 것, 다른 말로 숭고한 것으로 남게 될 게 분명하다. 시급한 것은 이 세계의 재현 가능성 여부를 왈가왈부하는 동안 우리가 놓쳤던 것을 다시금 포착하는 일이다. 그것은 물론 오늘날 적잖이 낯 뜨거운 것이 돼버리기는 했지만, 사회 변혁의 전망을 재사유하는 것이다. 한편 후기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프레드릭 제임슨은 인지적 지도 그리기cognitive mapping라는 사유의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 특유의 물화와 분열을 극복하고 동시에 차이와 이질성을 말살하지 않으면서 사회를 총체적으로 인식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고안해 낸 것이다. 제임슨은 이 세계의 총체적 재현 불가능성을 결코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비록 그러한 재현이 혹은 인식이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까울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수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테면 제임슨은 재현의 불가능성을 자백하는 것이 자본의 운동에 정치적으로 투항해 버리는 것에 대한 그럴듯한 빌미가 돼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셈이다. 우리가 낯선 도시생활에서 부딪치게 되는 여러 가지 난관을 피하려면 그 도시의 공간적 지도가 필요하다. 그와 유사한 맥락에서 파편화되고 무질서해 보이는 오늘날의 문화적 상황에 대해 정치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인지적 지도와 같은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인지적 지도 그리기란 전통적 의미의 미메시스나 모사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세계를 역사적으로 조건 지워진 틀을 통해 코드전환trans-code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제임슨의 이론을 면밀히 살펴볼 여유는 없다. 다만 우리 감성인문학연구단의 주요 관심사인 인간의 감성을 제임슨이 말한 바의 ‘역사적으로 조건 지워진 틀’의 일종으로 사유(혹은 전유)하고자 함을 강조하고 싶다. 즉 세계를 통찰할 수 있는, 다른 말로 코드전환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자 매개체로서 감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다시 앞서의 물음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우리 시대를 통찰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우리는 이 물음을 ‘예’ 또는 ‘아니오’를 강요하는 이분법적 선택지의 문제로 생각하기를 멈출 것이다. 대신 그 물음을 하나의 시대적 명령으로 또는 정치적 요청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바로 이 책 ??우리 시대의 슬픔??을 비롯해 향후 특정 감성을 열쇠말로 하여 한국 사회를 통찰해보겠다는 야심찬(경우에 따라서는 허황된) 포부를 가지고 있다. 물론 우리가 말하는 감성은 개인적이거나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감정과는 구별된다. 오히려 그것은 집단적이며 역사적이고 그래서 지속적이고 때로는 객관적으로 구조화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는 감성은 개별적 감성이 아니라 언제나 사회적 감성이다. 이 책의 열쇠말인 슬픔 역시 그렇다. 그것은 특정한 개인이 느끼는 그런 슬픔이 아니라, 집단화되고 구조화된 사회적 슬픔이다. 결국 우리가 감성을 연구한다고 할 때, 그것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 안에서의 그것을 성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됐다. 먼저 제1부 ‘흔적’에는 한국 사회의 저류에 흐르고 있는 슬픔과 그 원인을 근현대사의 역사적 사건이나 한국 사회 특유의 구조적 모순과 연관시킨 글들을 모았다. 이 글들을 통해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감성이 슬픔일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제2부 ‘울음’에는 실존적으로건 관념적으로건 죽음이라는 사건만큼 인간의 상실감을 극대화하는 것은 없을 것이라는 맥락에서 문학을 비롯한 각종 예술 작품에서 표출된 슬픔의 양상과 그 의미를 짚은 글들을 실었다. 고대의 시가에서부터 소설, 회화 그리고 현대의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훑고 있다. 마지막 제3부 ‘공명’에는 집단적인 슬픔의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긍정적이거나 혹은 부정적인 사회적 파급효과를 진단하고 있는 글들을 배치했다. 여기에 포함된 글들은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슬픔의 맥락에서 다양하게 진단함으로써 사회비평으로서도 손색이 없는 것들이다. 오늘날 힐링healing 담론이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것의 호오를 여기서 논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한데 그러한 유행 현상은 결국 한국 사회가 떠안고 있는 상처가 깊다는 증거일 것이고, 아울러 고통 받고 도탄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차고 넘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섣불리 그러한 슬픔을 치유해야한다거나 다른 것으로 치환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러한 슬픔을 응시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냉철하게 통찰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2013년 3월 필자들을 대신해서 정명중 씀

목차펼치기

제1부 흔적 사회적 감성으로서의 슬픔 _정근식 - 15 망각을 일깨우는 낮은 목소리 _류시현 - 37 분단과 전쟁의 상흔 _김창규 - 58 지울 수 없는, 학교 _한순미 - 77 이주의 유령 _문재원 - 95 제2부 울음 설움을 넘어 슬픔으로 _송효섭 - 119 눈물로 그린 그림 _이선옥 - 137 죽음, 그 시공의 초월적 변주 _조태성 - 156 죽음의 세 가지 풍경 _류도향ㆍ강애경ㆍ정유미 - 177 제3부 공명 슬픔의 공동체 _박홍규 - 203 눈물의 교환가치 _최유준 - 223 자살 권하는 사회 _김경호 - 242 저항은 과연 가능한가 _정명중 - 261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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