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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유학자들

호남의 유학자들

안진오ㆍ오종일ㆍ최대우ㆍ김성환ㆍ백은기ㆍ류근성ㆍ류재윤ㆍ류풍연ㆍ이향준ㆍ장복동ㆍ조우진

전남대학교출판부·2016-01-11

  • 856쪽
  • 신국판
  • 철학
  • KDC 15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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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은 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에서 편찬 중인 ‘호남유학총서’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이다. 이 시리즈는 고(故) 현암(玄庵) 이을호(李乙浩) 선생의 정신적 유산을 이어받아 지역학으로서 호남학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철학, 사상적 기초를 제공하려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시리즈의 첫 권인 『19세기 호남유학의 재구성』(전남대출판부, 2015)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을 중심으로 하는 노사학파의 개괄적 양상을 탐구한 것이었다. 이 책은 『호남의 유학자들』이란 제목으로 호남 지역을 대표하는 유학자들을 총괄적으로 소개하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다양한 학자들을 호남의 유학자라고 명명(命名)할 때 연관된 몇 가지 전제들이 문제시된다. 첫째, 호남 유학사상의 상한선은 어디까지인가? 또한 호남이라는 명칭과 그 명칭이 가리키는 지역적 한계를 어디까지 적용할 것인가? 이를테면 삼국시대에 진한의 지역에서 흥기하였던 초기 백제의 문화와 오늘의 호남이라는 지역의 연관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초기 백제 문화는 역사적, 지역적으로 오늘날의 호남과 일치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백제의 문화와 사상을 떠나서는 호남의 사상적 모태를 설정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점을 어떻게 고려해야 할 것인가? 둘째, 유학사상의 개념을 어떻게 볼 것인가? 유학과 유교는 같다고 할 수 없고 원시유학과 신유학(新儒學)으로서 정주학(程朱學)의 사상적 성격이 다르며, 또한 실학적 사유는 신유학적 사유와 차별적이다. 이런 다양한 유학의 개념들과 호남유학이란 지역학적 용어는 또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가? 한편, 유교라고 할 때는 의식이나 정신적 형태까지를 포함한 종교적 성격을 가지는데, 이러한 요소를 호남의 유학으로 포함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나아가 문헌적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원시유학사상의 전래와 도교ㆍ불교와의 교섭관계는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필연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다. 셋째, 호남 유학사상의 지역적 한계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호남이라고 할 때의 지역적 한계는 행정구역으로 볼 때 오늘날의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논의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행정구역으로서 호남이 성립되기 이전에 호남의 사상은 이미 존재했다. 이에 대한 한계 설정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것 또한 문제 가운데 하나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고려해서 이 책을 서술해나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 한계에 대한 잠정적인 기준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준을 임시로 설정하고자 한다. 호남 유학사상의 기점은 유학사상가들의 저술이 문헌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시기로 설정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대체적으로 독자적 저술이 문헌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기는 고려 말엽부터라 할 수 있고 그 이전의 저술들은 손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여러 사서(史書)에 부분적인 기록들이 남아있지만 독자적인 저서로 보기에는 힘들다. 유학이란 하나의 학문적 이론이며 사상적 형태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나 의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논리와 사상을 담고 있을 때 학문으로서의 성격을 부여할 수가 있다. 그러한 점에서 유학자의 사상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그 사상이 유학이라고 인정되어질 때 유학사상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호남 유학사상의 기점은 독자적 저술이 이루어진 시기를 그 기점으로 한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이전의 유학사상, 즉 다른 기록에 나타난 유학정신은 어떻게 취급되어져야 할 것인가? 그것은 유학사상의 형성기로 취급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형성기를 모체로 하여 호남의 유학사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성립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백제의 유학적 특징이 아무리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백제의 유학이지 호남의 유학사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그러한 점에서 백제의 유학은 호남의 유학사상을 형성하는 밑바탕이 되었으리라고 보는 것이며 백제의 유학 자체가 호남의 유학사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대체적으로 조선조의 유학이 하나의 독자적 사상으로 형성되어진 것은 신유학(新儒學), 이른바 정주학(程朱學)이 수입되고 난 이후부터이다. 물론 정주학의 학문적 성격에 관한 논의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만 어떻거나 조선조의 유학사상은 신유학사상 수입 이전의 원시유학 사상의 완전한 사상적 형태를 찾아보기 어렵다. 흔히 신라의 학제나 고구려의 교육기관이나 백제의 왕인이 『논어』를 일본에 전했다는 기록들은 그 당시의 유학사상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자료는 될 수 있을지라도 하나의 이론과 체제를 이루는 독자적 유학사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호남의 유학사상은 조선조 초기 광주라는 행정구역이 정립되던 시기로부터 광주를 중심으로 하는 호남지역에서 배출한 유학사상가들이 스스로 독자적인 저술을 통하여 유학적 공헌을 남긴 구체적 문집과 문헌들을 통하여 증명할 수 있는 인물로부터 그 기점이 성립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광주의 건치(建置) 연혁에서부터 논의를 전개할 수 있다. 고려 태조 19년에 처음으로 광주로 개칭한 기록이 보이고, 그 후로는 다른 이름으로 불려오다가 공민왕 22년에 다시 광주로 고쳐 불렀고, 조선조에 이르러서도 그대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광주라는 지명이 고려 말부터 조선조 초기에 이르기까지 쓰이기 시작하였다고 본다면, 광주라는 지명의 성립 시기는 정주학의 수입 및 발전기와 대략적으로 어울리게 된다. 다만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광주의 개념을 하나의 사상적 문화권으로 이해한다면 광주권(光州圈)은 광주라는 지역과는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은 사승(師承)의 계승성과 유학사상의 공통적 사고(思考)로 인한 인물군(人物群)을 연상한다면 광주지역의 행정구역과는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본고는 대체적으로 광주권이라 할 때 광주와 인접한 일차적 공간권(空間圈)으로서 광주 주변의 인접지역과 사상적으로 연결되는 이차적 유학사상권을 생각하였다. 이러한 기준은 자칫 애매모호(曖昧模糊)할 수도 있지만 광주권이라고 할 때 그 한계는 유학사상권(儒學思想圈)의 기준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에는 또한 유학사상 자체가 여러 가지 특징을 나타내며 발전하여 왔다는 점에서 본다면 문제가 있게 된다. 이를테면 도학, 성리학, 실학사상의 특징에 따라서 그 사상적 특징과 지역적 구성이 조금씩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 사상권(思想圈)으로 본다면 행정구역상의 광주권을 벗어날 수도 있다는 점을 당연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 호남 유학사상의 전기(前期) 호남 유학사상의 모태를 상기할 때,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백제의 유학정신이다. 삼국시대에 이미 유학이 수입되어 백제는 물론 고구려, 신라의 문화와 사상, 가치관과 풍습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학사상의 정확한 전제나 시원(始源)에 대하여는 확실한 기록이 없다. 다만 중국의 여러 사서(史書)들을 통하여 삼국시대의 유학사상의 한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을 뿐이다. 『북사(北史)』 「백제전(百濟傳)」이라든지 『수사(隋史)』 「백제전」의 기록에 따르면, 서로 만나고 헤어질 때 또는 윗사람을 대할 때 예(禮)를 행한다는 기록이 있고, 또한 그 풍습이 말 타기를 잘하고 글씨를 잘 썼다는 사실들에 의거하면 일찍부터 유학사상이 발전하였을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백제에서 유학사상이 발전하였다는 근거는 구체적으로 왕인(王仁)의 업적과 공헌을 먼저 들어야 할 것이다. 백제는 일찍부터 해상무역이 발전하여 일본과 중국의 교통의 요지가 되었고 산동 반도와 지역적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산동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공자의 가르침인 유학사상이 해상 루트를 통하여 쉽게 백제에 전달되고, 또한 백제에서 쉽게 왜(倭)에 전달되었으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단순한 추리로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라는 물론 백제에서도 수많은 입당 유학생들이 있었고, 백제에서 사신과 문물을 보내 일본의 개화에 이바지하였던 사실이 이를 밑받침하고 있다. 왕인이 『논어』와 『천자문』을 일본에 전달했다는 일본의 사료들은 백제의 유학사상이 먼저 발전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하기에…

목차펼치기

서론 / 9 제1장 도학사상의 발전과 호남의 인물 / 23 제2장 조선전기 성리학과 호남 / 173 제3장 구국 운동과 호남의 절의 / 305 제4장 조선후기 성리학과 호남 / 447 제5장 실학사상과 근대적 자각 / 675 결론 / 813 색인 / 829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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