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민족이란 무엇인가│차례 들어가는 말 6 제1장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 13 제2장 민족이란 무엇인가 53 해제―에르네스트 르낭 읽기 85 1. 에르네스트 르낭은 어떤 인물인가 85 2. 에르네스트 르낭의 생애 90 3.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에 대해서 94 4. 민족과 조국 99 5. 민족과 인종 107 6. 르낭과 인종, 그리고 유럽 112 주 118 더 읽어야 할 자료들 132 옮긴이에 대하여 139 들·어·가·는·말 오늘날 프랑스 국민 중에서 에르네스트 르낭`Ernest Renan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르낭이라는 말은 거리 이름에 붙을 정도로 매우 흔하게 찾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프랑스인 모두가 르낭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전문적인 역사서 수준의 꽤 두툼한 문고류가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의 독자층을 자랑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도 르낭의 글을 실제로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 르낭의 대작들은 분량이 너무 많다.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비판적 역사`Histoire critique des origines du christianisme》는 모두 일곱 권에 이르고,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Histoire du peuple d?sral》는 다섯 권이나 되니 말이다. 내용도 쉽지 않아서 일반 독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편이다. 물론 르낭이 《예수의 생애Vie de J�sus》의 저자라는 것, 그가 ‘민족이란 무엇인가`Qu?st-ce qu?ne nation?’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었다는 것, 그리고 인종주의와 관련하여 고비노`Joseph-Arthur Gobineau와 함께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한다는 것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르낭의 이름을 세계를 한 바퀴 돌 정도로 많이 알린 작품 《예수의 생애》조차도 완독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개인사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르낭은 분명 성공적인 삶을 살다 간 사람이다. 그는 열렬히 원하던 대로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일원이 되었으며, 콜레주 드 프랑스에도 몸담았었다. 학자로서는 최고의 영광을 누린 셈이다. 그러나 생전에 르낭은 존경과 야유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를 가장 격렬하게 비난했던 이들은 주교와 사제 같은 가톨릭계 인사들이고, 그들이 르낭에게 부여한 죄는 예수를 부정하고 신성을 모독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약간 과장해서 말한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르낭의 《예수의 생애》는 읽을 가치가 없는 책으로 낙인 찍혀 다락방이나 서재 한 구석에서 먼지만 쌓인 채 잊혀졌던 것이 사실이다. 쇼뱅`Charles Chauvin이 최근에 펴낸 르낭의 짤막한 전기에서 이제 그만 르낭에 대한 편견을 버릴 때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러한 풍토에 대한 안타까움을 절실하게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르낭의 는 분량이 매우 적고 강연을 한 것이어서 단편적이나마 많이 알려진 편이다. 사실 이것도 《예수의 생애》 못지않게 전 세계적으로 읽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애국심, 민족, 민족주의와 관련된 거의 모든 책에 이 글이 실려 있거나 르낭이 인용되고 거론되니 말이다. 이 책은 르낭의 를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문학에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 르낭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는 몇몇을 제외하면, 르낭은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편이다. 내가 르낭을 처음 접한 것은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이다. 에 관한 연구를 하다 자연스럽게 당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조국에 대한 인식과 감정, 민족 의식, 특히 독일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감정과 독일에 대한 인식, 태도 등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프랑스인의 민족주의에 대한 자료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번번이 르낭을 만나게 되었다. 프랑스의 민족주의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1870∼1871년의 프랑스와 독일(프로이센)의 전쟁과 1914∼1918년의 1차 세계대전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이 두 전쟁으로 인하여 모든 계층의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의 민족 감정을 결정적으로 표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보불전쟁’으로 많이 알려진 1870년의 프랑스와 프로이센 간의 전쟁은 전쟁 발발 후 두 달여 만에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가 스당에서 잡히면서 프로이센이 승리하게 되었으며, 이듬해인 1871년 1월에는 베르사유 궁전 안에 있는 거울의 방에서 빌헬름 1세가 통일 독일의 황제로서 대관식을 가졌다. 이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는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알자스, 로렌 지역을 빼앗겼다. 이것은 프랑스인들에게는 커다란 수치심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이 쓰라린 경험이 프랑스인들로 하여금 독일에 대한 복수심을 키우게 했다는 것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실 독일이나 독일인들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감정은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 전쟁을 겪었던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들 간에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1860~1870년대에 태어나서 1890년대에 20~30대를 거쳤던 사람들, 이른바 ‘공화국’의 첫 세대였던 1890년대 지식인들은 1870년 전쟁이 이제 더 이상 실제로 그들 자신이 체험한 시련이 아니라 역사적인 것이자 연장자들의 지나간 경험에 불과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1차 세계대전 직전에 이른바 프랑스 우파, 좌파 세력의 기저를 이루고 있던 것도 바로 이들 1890년대 세대들이다. 후자가 과거의 일에 대한 복수보다는 오히려 앞으로 일어나게 될지도 모르는 전쟁의 가능성을 더 우려하여 이른바 평화주의 및 국제주의를 주창했다면, 우파 세력은 독일에 대한 복수심이 점차 망각되고 있는 것에 대한 반발과 우려로 애국자연맹La ligue des patriotes과 같은 조직을 결성하여 독일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르낭은 1820년대에 태어나서 나폴레옹 3세의 권력 탈취와 제2제정의 성립을 지켜보았으며, 불혹의 나이에 1870년 전쟁의 패배와 공화국이 대두하는 것을 지켜보았으니 분명 이들 1890년대 세대들과는 뚜렷하게 다른 세대에 속한다. 그러나 그의 과 는 이후 세대에서 나타나는 좌파와 우파 세력의 경계를 초월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인상적이고 흥미롭다. 르낭은 우선 독일과 프로이센을 구별하고 있다. 일관되게 독일을 비판하면서 무조건적으로 응징해야 한다고 유도하기보다는 프로이센의 편협한 군국주의와 봉건성이 독일의 발전을 저해함으로써 그것이 프랑스는 물론이고 유럽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유럽의 평화와 발전을 위하여 유럽 강대국들의 공동체로 구성된 유럽연맹을 구상한다. 또한 르낭은 민족성의 기본 원칙을 인종과 언어에 두고 거의 1세기 이전에 이미 프랑스에 흡수, 동화되어버린 알자스, 로렌 지역의 독일 병합이 정당하다는 독일식 민족주의의 원리가 틀렸음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르낭이 민족성의 원칙으로 강조하고 있는 ‘지역 구성원들의 소속 의지’는, 민족주의와 민족국가 개념의 기본 원리 가운데 하나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결국 르낭이 민족주의자로서 프랑스인이면서 동시에 유럽인임을 잊지 않고 있는 19세기의 전형적인 유럽인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부분은 르낭이 1870년 프랑스와 프로이센 간에 전쟁이 일어나자 그 전쟁으로 인하여 일어나게 될 상황에 대한 그의 우려와 독일에 대한 감정 등을 보여주는 이고, 두 번째 부분이 바로 르낭이 1882년 소르본 대학교에서 강연했던 이다. 여기서는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 이후 르낭이 독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의 변화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또한 이것은 혈통, 언어, 점유하고 있는 땅과 같은 유전적이고 인종적인 경향을 강조하는 ‘독일식’ 민족주의를 비판하면서, 한편으로는 ‘함께 살려는 의지’를 강조하는 ‘프랑스식’ 민족주의 개념에다 문제의 독일식 개념을 잘 융화시킴으로써 프랑스식 민족주의 개념을 한층 더 타당한 것으로 승화시킨 ‘르낭식’ 민족주의 개념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르낭식 민족주의는 과거(공통의 유산, 추억)와 현재(세습적으로 이어져온 공통의 유산을 계속해서 간직하며 함께 살려는 의지)를 모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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