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책머리에 아마 2002년 가을이지 싶다, 연암산문 강독을 시작한 건. 이후 나는 박사 과정에 있거나 박사 과정을 마친 나의 학우들 몇 명과 매주 수요일마다 연암산문을 읽고 음미하는 일을 해 오고 있다. 이 책은 이렇게 공부한 우리가 내놓는 첫 성과다. 공부란 궁극적으로 혼자 하는 것이지만, 경우에 따라선, 그리고 공부의 단계에 따라선, 같이 어울려 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나는 연암산문 강독 같은 것이 그런 공부라고 생각한다. 이 공부를 제 혼자서 할 수 있었겠는가? 같이 어울려 공부하는 바람에 연암 글의 이본(異本)들을 면밀히 검토할 수 있었고, 난해한 구절이나 미묘한 구절에 대해 많은 의심을 품은 채 요리조리 그 의미를 샅샅이 따져볼 수 있었으며, 논란이 될 수 있는 구절에 대하여는 기왕에 이루어진 연암 글의 번역을 일일이 확인해 그 동이(同異)를 밝혀 줄 수 있었다. 특히 번역의 동이를 밝혀 주는 일은 몹시 성가시고 품이 드는 일이었는데, 한국학술사에서 처음 시도되는 이 작업이 과연 적절하고 필요한가 하는 회의도 없지 않았으나, 다른 글도 아니고 우리나라 최고의 산문가(散文家)라 할 연암의 글인 만큼, 그리고 연암의 일부 글들에 대해서는 꽤 다양한 번역이 나와 있고 그 중에는 오역도 적지 않은 만큼, ‘번역’을 엄정한 ‘학문’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이 작업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독자들은 이 책에 제시된 번역의 동이를 대조해 가며 읽음으로써 하나의 구절이 이렇게 다양한 뉘앙스로 번역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연암산문을 좀더 풍부하게 이해함과 더불어, 이 책의 번역까지 포함해 연암산문의 모든 번역을 좀더 비판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읽어 낼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적어도 이 책의 독자들은 필시 연암산문의 애호가(愛好家)가 아니면 전문연구자일 터인데, 이런 비판적이고 주체적인 ‘음미’가 한국학의 수준과 연암 연구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굳이 환기시키고 싶다. 여기서 잠시 독자들의 양해를 구할 일이 하나 있다. 지난해 간행된 나의 책 『연암을 읽는다』와 본서에 실린 연암산문은 그 대상 작품도 같을 뿐 아니라, 번역문에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연암을 읽는다』의 서문에서 밝힌 대로 이 두 책은 같은 손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하겠다. 이 두 책은, 비록 이런 공통점을 갖고 있기는 하나, 전혀 다른 성격의 책이다. 『연암을 읽는다』가 일반 독자를 상대로 연암의 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하는 데 주안을 둔 책이라면, 이 책은 전문 연구자나 한문을 읽을 수 있는 독자를 염두에 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연암산문의 원문에 표점을 붙여 번역문과 나란히 수록함으로써 서로 대조해 가며 읽을 수 있게 했고, 이본들을 자세히 교감하여 그 결과를 각주로 제시했으며, 번역의 동이(同異)를 밝혔고, 고사나 전거(典據)가 있을 경우 학문적인 견지에서 그 내용을 최대한 자세히 밝혀 주었다. 연암은 자신의 작품을 몇 번이고 퇴고하면서 글의 완성도를 높여 간 작가였다. 이 책에서 수행한 면밀한 이본 교감은 연암의 이런 퇴고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므로 눈이 밝은 독자라면 이를 통해 연암이 글의 어떤 대목에서 이리저리 주저하며 생각에 골똘히 잠겨 글을 다듬고 표현을 고쳤는지, 어떤 대목에서 특히 마음이 흔들리고 고심을 했는지 알아보고는 입가에 잠시 미소를 띨지도 모를 일이다. 요컨대, 얼핏 보면 지리하고 쓸데없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이 책의 이본 교감은 기실 연암의 창작 심리와 창작 방법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한 편의 완성작을 퇴고의 ‘전 과정 속에서’ 동태적으로 그리고 입체적으로 읽어 내게 해 줌으로써 작품 분석과 이해에 새로운 방법론적 지평을 열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 기존의 연암 번역서와 이 책 사이에는 비단 이런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연암산문에 대한 ‘평점 비평’(評點批評)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그 어떤 번역과도 다르다. ‘평점 비평’(評點批評)이란, 동아시아의 전근대 시기에 전개되어 온 문학비평 방식으로, 그 형태가 자못 다양하다. 극히 개략적으로 말해, 평점 비평의 존재방식에는 다음의 몇 가지가 있다. 문두평(文頭評), 미평(眉評), 후평(後評), 미비(眉批), 행비(行批), 원권(圓圈), 첨권(尖圈), 방점(傍點). 이들에 대한 풀이는 이 책의 ‘읽어두기’를 참고하기 바란다. 연암산문 중에는 연암 당대에, 그리고 그 이후에, 평점 비평의 대상이 된 작품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이들 평점 비평은 그 자체로서도 읽거나 보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연암산문이 이전에 미학적으로 어떻게 수용되고 읽혔는지를 알게 해 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고, 더 나아가 연암산문을 정당하게 이해하고자 고심하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좋은 길잡이가 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왜냐면 이들 비평은 이덕무, 이재성(李在誠), 김택영(金澤榮) 등등 문학에 대한 탁월한 식견과 교양은 물론이려니와 높은 비평적 통찰력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수행된 것으로서, 연암산문의 묘의(妙意)와 정수(精髓)를 한두 마디 말로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얕은 식견에다 눈까지 어두운 오늘날의 연구자들이 종종 발하는 망발(妄發)이나 너절한 소리와는 그 유(類)가 다르다. 그러므로 이들 비평은 우리가 연암산문을 읽다가 혹 길을 잃거나 미로를 헤맬 때 나침반 구실을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입수한 모든 평점 비평을 이 책에 수록하였다. 연암산문에 대해서 한 것처럼 이들 평점 비평에 대해서도 그 번역문과 원문을 함께 제시했으며, 주석이 필요한 경우 일일이 주석을 달아 주었다. 앞으로 새로운 평점 비평 자료가 입수되면 책에 추가로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기존의 연암 관련 서적들과 구별되는 이 책의 특징들에 대해 간단히 언급했지만, 이 책의 부제(副題)에 ‘고이’(考異)라든가 ‘집평’(輯評)이라는 별로 익숙하지 않은 말을 사용한 것도 이 책이 갖는 이런 특징의 일단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고이’(考異)란, ‘차이를 상고(詳考)했다’는 뜻이니, 이본의 교감 및 번역의 동이를 가리키는 말이요, ‘집평’(輯評)은 ‘평점(評點)을 수집했다’는 뜻이니, 평점 비평을 모아 놓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무쪼록, 이 책이 국내외 연암학(燕巖學)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연암을 애호하는 독자들이 좀더 정세(精細)하게 연암의 글을 감상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그보다 더 큰 다행이 없겠다. ‘연암산문 정독’은 총 다섯 권을 계획하고 있는바, 이 책에 이어 곧 두 번째 책이 간행될 예정이다. 이 책을 내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임형택 선생께서는 당신이 소장하고 계신, 지금까지 누구도 열람한 적이 없던 망창창재본(莽蒼蒼齋本) 갑본(甲本)과 을본(乙本) 두 종(種)의 『연암집』의 복사를 허락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며, 연암 후손가에 전해져 온 자료들의 복사본과 사진판을 이용할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리고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의 학예과장이신 최은주 씨와 학예사인 전영철 씨는 귀중본인 자연경실본(自然經室本) 『연암집』의 복사를 허락해 주셨다. 이밖에도 영남대학교 임완혁 교수는 영남대에 소장된 『연암집』을 복사해 보내 주었고, 계명대학교 김영진 교수는 단국대 퇴계기념도서관에 소장된 연민기증본(淵民寄贈本) 자료인 『엄계집』(?溪集)의 복사본을 보내 주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신익철 교수는 장서각 소장의 『백척오동각집』(百尺梧桐閣集)을, 경성대학교의 김철범 교수는 경상도 함양의 모씨가 소장한 『운산만첩당집』(雲山萬疊堂集)의 복사본을 각각 보내 주었다. 이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책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이분들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끝으로, 이 작업에 연구비 지원을 해 준 서울대학교 한국학연구원(지금의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사의를 표한다. 2007년 6월 박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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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책머리에 일러두기 찾아보기 큰누님 박씨 묘지명 말 머리에 무지개가 뜬 광경을 적은 글 ‘죽오’(竹塢)라는 집의 기문 ‘주영염수재’(晝永簾垂齋)라는 집의 기문 술에 취해 운종교(雲從橋)를 밟았던 일을 적은 글 소완정(素玩亭)이 쓴 ?여름밤 벗을 방문하고 와?에 답한 글 한여름 밤에 모여 노닌 일을 적은 글 ?중국인 벗들과의 우정?에 써 준 서문 홍덕보 묘지명 발승암 기문 기린협(麒麟峽)으로 들어가는 백영숙(白永叔)에게 주는 서(序) 형수님 이씨 묘지명 정석치(鄭石癡) 제문(祭文) 안의(安義)에서 어떤 사람에게 보낸 편지 ‘관재’(觀齋)라는 집의 기문 ?초정집? 서문 소완정 기문 ?공작관(孔雀?) 글 모음? 자서 ?말똥구슬? 서문 경지(京之)에게 보낸 답장 1 경지에게 보낸 답장 2 경지에게 보낸 답장 3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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